현재위치 : > 뉴스 > 오피니언 > 브릿지칼럼

[브릿지 칼럼] 발상력의 5단계

입력 2024-08-19 14:45 | 신문게재 2024-08-20 19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20190326_154040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카톡에 제자의 안부 문자가 떴다. 올 초 끄라비 여행 때 찍은 사진에 동남아 여행이 필요없을 것 같다고 몇 줄 적어 보냈다. 순간 변덕스런 날씨가 떠올랐던 것이다.


끝도없이 물고뜯는 정쟁과 올림픽의 선전과 환호는 2024년의 공통된 여름이다. 하지만 막상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십인십색이다. 자신만의 상황이나 입장 때문이다.

누구나 세상을 해석하는 자기만의 안경이 있다. 피타고라스에게 물었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수학자답게 ‘직각처럼 반듯합니다’라고 했을거란다. 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다. 데카르트는 ‘잘 지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갈릴레이는 ‘잘 돌아갑니다’, 다윈은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비발디는 ‘계절에 따라 다르지요’, 애거서 크리스티는 ‘맞춰보세요’, 깐트는 ‘비판적인 질문이군요’라고 했을거란다. 발상력은 자신의 안경을 갈고 닦아서 빛을 내는 자신만의 시선이다. 이런 특별한 시선은 어떤 단계를 거치며 얻게 되는걸까?

광고를 촬영하기 위해 뉴욕에 갔을 때다. 일행과 함께 ‘블루노트(Blue note)’라는 재즈 클럽에 들렀다. 무대위에선 백인 제자의 트럼펫과 흑인 스승의 피아노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무대의 피날레 공연으로 제자가 구경 온 스승의 팔을 이끌어 즉흥 협연(Jam)을 벌인 것이다. 당연히 악보는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오랫동안 쌓은 기량과 경험을 바탕으로 눈빛의 교감을 더해 연주를 이어나갔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난 연주는 무정형의 춤사위처럼 무대와 관객 사이를 자유자재로 날아다녔다.

연주가 끝났을 때 땀방울로 얼룩진 얼굴에 만족의 미소가 교차했고 앙코르를 외치는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합의되지 않은 이런 연주 방식이 놀라운 완성도의 결과물을 내놓는 과정은 단계적이면서 동시에 연속적이다.

연주내내 두 사람은 뜨거운 땀방울과 격정적 몸짓으로 근사한 공연을 선사하겠다는 무언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연주를 주고 받다 다시 합치며 온 몸의 감각으로 호흡을 맞추며 서로를 조율했고 상대를 배려했다. 멜로디와 박자의 고저장단이 절정으로 치달으며 주제가 드러났고 말미에 이르며 드라마같은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완성됐다. 스승과 제자는 마지막까지 겸손하고 세련된 매너로 관객의 열띤 호응을 유도했다.

공연에서 보여준 그들의 유연한 발상과 태도는 숙달된 운전자의 자동차 드라이빙 같았다.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연료와 엔진(열정), 시야를 확보해줄 유리창와 와이퍼(관찰), 방향타인 핸들과 헤드라이트(발상), 운전의 편의장치(구성), 동승자를 태울 문과 좌석(참여)이 그것이다. 퍼포먼스의 승부처는 관찰과 연상의 단계다. 대상을 과학자의 렌즈로 분석하고 예술가의 영감으로 해석하는 단계로 자기만의 안경을 작동시키는 순간이다.

다시 돌아가보자. 여름이라고 했었던가? 개그맨 박명수의 여름은 ‘끝말잇기’다. 알다시피 그는 이행시 대가다. 끝말잇기에서 ‘여름’은 승부의 결정구다. 물론 ‘늠늠하다’는 변죽으로 웃음을 끌어올수도 있다겠지만. 가수 싸이의 여름은 ‘인생의 대박’이다. 그는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며 즐기는 야외 공연을 떠올렸다. ‘흠뻑쇼’는 이제 그의 전매특허가 됐다. 제 눈의 안경을 존중해라.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