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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通] 허준과 허임

입력 2024-08-06 10:22 | 신문게재 2024-08-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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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4대 임금이었던 선조는 평생 두통에 시달렸다. 어의 허준은 선조를 치료하기 위해 갖은 약재를 썼지만 잘 낫지 않았다. 허준은 침을 잘 놓는 허임을 왕에게 추천했다. 허임의 침 치료를 받은 선조는 오랜 두통이 호전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 의인(醫人)들은 재주가 달랐다. 약을 잘 쓰는 약사(藥師)가 있는가 하면 침과 뜸으로 치료하는 침구사(鍼灸師)들이 각자 고유 영역에서 활약했다.

한약은 먹고 살기도 힘든 백성들에겐 사치였다. 민초들의 아픈 몸을 치유하는 대표적인 수단은 침과 뜸이었다. 실력 있는 침구사라면 침 한 쌈과 뜸 한 줌으로 웬만한 병은 다 치료할 수 있었다. 수 천년의 세월을 지나며 임상경험이 축적된 동양 의술의 효험은 작지 않았다.

요즘은 한의사들이 약사와 침구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우리나라 침구사 자격은 1953년 한의사 제도가 신설되고 1962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폐지됐다. 현재 침·뜸 행위는 한의사 자격증 소지자만이 시술할 수 있다.

많은 한의사들은 침·뜸보다는 한약 처방 위주로 환자를 치료한다. 침 치료는 수가가 낮고, 한약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것이 많지 않아 가격이 비싼 현실과 무관치 않다.

한의대 교육과정에는 침술이 포함돼 있지만, 한의대생들은 침술보다는 본초학과 방제학 공부에 더 심혈을 기울인다. 침구학에 뜻이 있는 일부 한의사들은 침·뜸술을 배우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실력 있는 민간 침구사들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의료법이 개정된 지 62년 만에 그 많던 침구사들은 의료현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침구사법 제정을 위해 평생을 바치다 2021년 작고한 구당(灸堂) 김남수 옹의 제자들과 소수의 침쟁이들이 음지에서 근근이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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