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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고트를 만든 '개와 늑대의 시간'

입력 2024-08-06 14:13 | 신문게재 2024-08-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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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선임기자

드디어 ‘골든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5번째 도전에서야 이룬 업적이었다. 통산 99번의 투어 우승, 4대 메이저대회(호주오픈·프랑스오픈·윔블던·US오픈) 우승으로 일찌감치 그랜드슬래머에 등극했지만 ‘하늘에서 낸다’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만은 유독 쉽지 않았다.

프로 데뷔 후 라이벌을 바꿔가며 승승장구했고 여전히 메이저 대회마다 어린 테니스 천재들과 결승을 치르는 최고령 선수. 이미 고트(GOAT·Greatest Of All Time, 역대 최고 선수)였던 그는 4일(이하 현지시간) 2024 파리올림픽 테니스 단식 결승전이 벌어지는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끝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8년부터 무려 5번째 도전이었고 그 상대는 불과 한달 전 윔블던대회 결승에서 패한 혈기왕성한 라이벌이었다. 그렇게 세르비아의 노박 조코비치는 카를로스 알카라스를 상대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간 젊은 선수들의 혈기왕성한 도전, 어쩔 수 없는 체력의 열세, ‘나이’를 들먹이는 ‘은퇴’ 압박, 오래도 외롭게 한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등에도 그는 ‘핑계’를 찾기보다 ‘방법’을 모색하며 끝내 숙원인 ‘골든 그랜드슬램’을 이뤄냈다.

한국 양궁의 맏형 김우진은 그 어렵다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며 3연속 올림픽 출전, 남자 단체전 3연패, 2024 파리올림픽 2관왕을 달성했음에도 4일 롤랑가르드에서 4.9mm 차이로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고서야 “이제는 ‘고트’라는 단어를 얻었다. 이제는 조금은 고트라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로서 남자양궁 최초 3관왕, 양궁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 올림픽 금메달 5개로 한국 선수로는 최다 기록을 거머쥔 그 역시 ‘은퇴’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잇단 언급에 단호하게 “은퇴는 없다”고 응수한 그는 “(오늘의 금메달도) 내일이면 지나간 메달”이라며 여전히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다졌다.

한편에서는 같은 나라 선수들끼리 치른 결승전에서 일방적인 응원과 야유가 쏟아지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여자탁구 결승전에서 맞붙은 중국의 천멍과 세계랭킹 1위 쑨잉사. 일방적인 응원에도 금메달은 천멍이 목에 걸었다. 국가와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10, 20대에는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다 서른이 다 돼서야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 그는 2021년 도쿄 올림픽에 이어 2024 파리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는 단연 ‘고트’다. 역대 최고 선수. 이는 누군가의 잣대가 아닌 선수 스스로가 세운 기준을 충족해서야 갖게 되는 칭호다. 이 칭호를 얻기까지의 여정에는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불명확함 속에서도 치열하게 노력하고 차근차근 준비하며 고독하게 보낸 저마다의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들이 존재했다.


이는 비단 운동선수들 뿐 아니다. 학교, 직장, 외교, 인간관계 등 사회생활 속에서 늘 겪게 되는 것들이다. 핑계 보다는 방법을 모색하며 저마다가 보낸, 밤의 짙은 푸른색과 낮의 짙은 붉은 색이 만나는 저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적인지 내 편인지 분간이 어려운 시간들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허미선 선임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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