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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OTT 자체등급분류에 대한 자체비판

입력 2024-08-04 14:01 | 신문게재 2024-08-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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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창작과 소통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에는 ‘규제’ 보다 ‘자율’이 주인공이 된다. 독재권력이 서슬 퍼렇던 시절의 영화 등에 대한 사전검열은 ‘등급판정’ 시스템으로 진일보했지만 여전히 2% 자율의 향기가 부족했다. 당국의 규제를 벗어난 자율등급분류를 갖춘 게임산업에 이어 온라인영상물에서도 2023년부터 자율등급분류제도가 시행됐지만 이 역시 2% 부족하다.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는 영화협회, 영화윤리관리위 등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등급분류를 하고 있다. 우리도 넷플릭스, 티빙 등 OTT를 통한 영상물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고있는 상황에서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상 심사 지연을 막고 자율성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자체등급분류제도’가 도입됐다. 

 

2023년 3월 영비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 지정된 자는 영등위 판정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온라인비디오물 등급을 분류해 유통할 수 있는 시대가 시작됐다.

 

2023년 6월 문체부, 영등위가 OTT 자체등급분류 사업자로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애플TV+, 왓챠, 웨이브, 쿠팡플레이, 티빙 등 7개 업체를 1차 지정한 이래 지정사업자는 제한관람가 등급을 제외하고 온라인비디오물의 등급을 자체 분류해 유통할 수 있다. 영등위는 영상미디어 전문모니터 1명과 일반모니터 2명으로 꾸린 15개조로 ‘자체등급분류 모니터링단’을 운영하면서 자체등급분류 콘텐츠 등급 적절성을 실시간 점검하고 있다.

 

이 점검을 통해 청소년과 이용자 보호에 어긋하는 경우 등급 조정을 요구하거나 직권으로 등급을 분류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아울러 영등위는 제도 시행 1년을 맞아 등급분류 기준, 등급분류 책임자 지정, 청소년-이용자 보호 수단 제공 등 의무사항 이행 여부 등의 평가를 실시했고 미흡한 부분의 개선을 권고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자체 비판, 자체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체등급분류제에 대한 자체 비판은 등급분류가 공정하고 객관적인가의 고민으로부터 시작된다. OTT끼리 극심한 경쟁으로 수위 높은 콘텐츠들을 청소년 관람 가능한 등급으로 판정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5년이라는 사업자 지정 기간이 자칫 장기간 불법 방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높다. 사업자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정기간을 달리할 필요도 있다.

 

자율을 부여한 만큼 교육도 중요하다. 하지만 교육 불참에 따른 불이익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장편 또는 시리즈 콘텐츠 일부에서 표현 수위가 높은 경우 하나의 영상물로 취급하는지, 일부 또는 각 에피소드 별 영상물로 취급해야 하는지 여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아울러 영등위의 등급조정요구 또는 직권 재분류 결정에 앞서 사업자가 심의절차를 거치지 않고 등급을 자진 수정하는 경우는 사실상 자율성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므로 자체등급분류제도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 모니터링 비용을 사업자가 아닌 국가 세금으로 부담한다는 점도 지상파 방송의 시청자위원회 등 자체 부담 사례와 비교할 때 형평성에 어긋난다.

 

문체부 장관은 자체등급분류사업자가 준수사항을 위반하거나 영등위의 등급조정 요구, 직권 등급분류 결정 또는 등급분류 결정 취소에 따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경우 자체등급분류사업자의 지정을 취소하거나 6개월 이내의 범위에서 업무의 정지를 명할 수 있다. 규제 권한이 남용돼서도 곤란하지만 자율이라는 미명 아래 불법유통물이 판치거나 부적절한 등급분류로 청소년 및 이용자에게 폐해가 돌아간다면 제도 자체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 

 

자율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아무리 아름다운 제도라도 추악한 민낯을 화려한 화장으로 영원히 숨길 수 없다. 사업자의 단기간 이익보다 산업계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우선이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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