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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전철 밟는 IT 기업] 문어발식 팽창에 묻혀버린 ‘혁신의 눈물’ <상>

입력 2024-07-29 06:43 | 신문게재 2024-07-2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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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리스크

챗GPT4o를 통해 생성한 ‘오너리스크에 직면한 카카오와 한컴’.

 

‘‘오너 경영’의 장점으로는 단연,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과 장기적인 대규모 투자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이렇게 오너의 판단력에 힘입어 성공한 ‘오너프리미엄(owner premium)’ 기업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인 ‘오너리스크(owner risk)’로 홍역을 앓고 있는 기업도 있다. 최근 토종 IT 기업 수장들이 검찰 소환에 오르거나 구속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브릿지경제는 국내 IT기업의 ‘오너리스크’ 사례와 문제점들을 2회에 걸쳐 조망해본다. <편집자 주>


#1. 대학교 앞 PC방 사장은 게임사를 차리더니, 자신의 게임사와 국내 포털이 합병한 한 회사의 공동대표가 됐다. 그리고 홀연히 회사를 떠났다가 국민 메신저를 만들었다.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의 얘기다. ‘벤처 신화’의 주역이었던 김 위원장은 지난 23일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되면서 본인 회사의 ‘리스크’로 전락했다.

#2. 토종 오피스의 힘을 보여줬던 한글과컴퓨터는 2010년, 우여곡절 끝에 아홉 번째 주인을 맞았다. 자본잠식과 전 인수자의 횡령·배임 등 숱한 위기를 딛고 김상철 한글과컴퓨터(한컴) 그룹 회장과 함께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단돈 1원도 한컴 외부로 나가지 않게 하겠다”고 자신했던 김 회장은 현재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에 휩싸였다.

최근 카카오와 한컴 등 국내 IT 업계에서 잇따라 오너리스크가 불거지면서 관련업계 전반이 초긴장 상태다. 전문가들은 IT 기업이 ‘혁신’이란 정체성을 버리고 국내 재벌가의 ‘폐해’를 고스란히 답습한 결과라고 꼬집는다.

김범수 카카오 위원장은 스마트폰 시대를 직감하고 ‘카카오톡’이란 무료 메신저 출시를 통해 폭발적인 흥행을 이끌었다. 점유율 95%에 육박하는 국민 메신저는 숙명이었고, 이를 발판 삼은 카카오는 대기업이 됐다. 하지만 성장은 너무 빨랐고, 속도는 독이 됐다.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과 상장 쪼개기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4월 기준, 계열사는 147개로 재계 2위인 SK그룹(198개) 다음으로 많았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통 재벌 기업들은 50~60년 동안 60개 기업을 만드는데, 카카오는 단기간 내 150개로 무한 팽창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카카오 사태도 SM엔터테인먼트 인수를 통해 몸집을 불리는 과정에서 터졌다. 김 위원장은 경쟁자인 하이브 인수를 방해하기 위해 하이브의 공개 매수가보다 주가를 높게 설정해 시세를 조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김상철 한컴 그룹 회장은 경영난에 허덕이는 (주)한글과컴퓨터를 인수해 중견그룹으로 키운 구원 투수였다. 전문 경영인을 영입했고 회사가 안정된 2013년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한컴은 김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고 연매출 1000억원 돌파 축포를 쐈다. 하지만 현재 김 회장은 아로나와토큰을 통해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아로나와토큰은 한컴 그룹 계열사인 한컴위드가 최대주주로 있는 가상 자산이다. 김 회장의 장녀 김연수 한컴 대표는 이번 사태와 선을 그은 뒤 지배구조 개편부터 단행했다. 김 대표 본인과 변성준 한컴 그룹 부회장이 한컴위드 사내이사를 맡아 독립성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김 대표는 “그룹 전체 지배구조 단순화 및 경영 건전성을 책임지고자 한다”며 메스를 들었다.

전문가들은 재벌 2·3세 등 후계자 오너리스크와 창업자 오너리스크는 결이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초창기 창업가들은 금수저인 전통적 재벌과 달리 혁신적인 사업을 통해 실력과 역량을 증명했다”면서 “문제는 사업규모를 키우고 다각화하는 과정에서 계열사 영향력 확대를 위해 기존 재벌을 흉내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혁신과 기업가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자본력과 지배구조 강화만 남는다는 것이다. 기존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던 한국의 IT 벤처 기업들은 성장과정에서 속속 고꾸라지고 있다.

나유진 기자 yujin@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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