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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2080] 대법원 ‘동성부부’ 법적권리 첫 인정… 부부 경제적 권리 확장 넘어 ‘동성혼’ 허용 여부 주목

입력 2024-07-1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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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혼 관계의 동성(同性) 배우자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나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동성 부부를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동안 민법상으로는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가 인정되지 않던 것을 사실상 처음으로 인정한 판단이라, 이를 계기로 동성부부의 경제적 권리 확장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궁극적으로 동성 간의 결혼이 허용될 수 있을지 관심을 끈다.

◇ 대법원 “사회보장제도에선 동성 부부도 법적 부부로 평가 가능”

동성 부부 중 한 명인 소성욱 씨는 동성 반려자 김용민 씨와 지난 2019년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 2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배우자 김씨의 피부양자로 등록됐다. 하지만 그 해 10월 공단이 ‘피부양자 인정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험료를 내라는 처분을 통보했고, 이에 소 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행정소송을 냈다.

1심은 소씨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2심 서울고법은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에 최종심인 대법원은 18일 전원합의체(주심 김선수 대법관)를 통해 원심의 원고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국민건강보험법령에서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음에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 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해 “피고(건보공단)는 평등원칙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할 책임과 의무를 부담하므로 그 차별 처우의 위법성이 보다 폭 넓게 인정될 수 있다”며 “동성 동반자도 동반자 관계를 형성한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해 스스로 보험료를 납부할 자력이 없는 경우 피부양자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이 ‘동성혼’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민법이나 가족법상 ‘배우자’의 범위를 해석·확정하는 문제와 이번 판결은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동성혼까지는 인정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건강보험 같은 사회보장제도 아래서는 동성 부부를 법적으로 허용되는 부부와 유사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판단이어서 주목된다.

◇ 동성 부부에 대한 ‘경제적 권리’ 확장 가능성 열려

대법원은 이날 민법상 인정되지 않는 동성 부부도 이성 부부가 누리는 권리의 일부라도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 측은 판결 직후 “그동안 피부양자로 인정될 수 없었던 동성 간 결합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행복추구권과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향후 동성 부부에게 부여되는 ‘경제적 권리’가 확장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여 눈길을 끈다. 이성 커플의 추가 권리 확대에 이어 궁극적으로는 동성혼(同性婚)이 인정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동성 동반자’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의미부여하는 분위기다. 단순한 동거 관계를 뛰어넘어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를 바탕으로 부부에 준하는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한다면 사실혼 관계와 차이가 없기 때문에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따라서 다른 동성 커플들도 일정 수준 이상의 동반자 관계를 입증한다면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다만, 이 판례를 계기로 건강보험 이외의 다른 사회보장제도로 동성 부부 인정 범위가 단기간에 확장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우선 국민연금법이나 고용보험법 등은 관련 규정에 ‘사실혼 배우자’를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어 당장 적용은 어려운 실정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현행법상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는 동성 부부의 ‘사실혼 지위’를 인정한 것 까지는 아니라는 점에서, 제한적인 영향을 전망하는 이들도 많다. 그렇지만 최종심 법원이 ‘성’과 ‘부부’에 관련된 기존의 틀을 깨는 판결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앞으로 다른 사회보장제도 뿐만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동성혼 합법화 논의를 가열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 종교계 등 보수적 사회분위기 극복이 관건

문제는 보수적인 종교계의 극심한 반대 등 아직은 사회적으로 동성 관계를 부정시하는 분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유교주의가 공고한 우리 사회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만으로 분위기를 바꾸기는 역부족이라는 전망이 아직은 많이 우세하다. 하지만 이번 판결을 계기로 관련 이슈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이 펼쳐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들이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보다 적극적인 실력행사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이들은 “‘사실혼’ 관계의 동성 커플에게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는 사실이 이번 판결에서 확인됐다”며 “호주제 폐지 등을 이끌었던 동력으로 우리 사회 곳곳의 성차별적 요소들을 깨쳐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동성혼 법제화와 동성커플의 권리 확대가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은 이들에게 추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국가는 네덜란드와 프랑스, 독일. 미국. 대만, 태국 등 37개국이다. 동성 부부가 아동을 직접 입양할 수 있는 나라도 17개국에 이른다.

동성혼이 합법화되지는 않았더라도 이성 커플의 권리에 준해 동성커플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일본도 2015년 ‘파트너십 증명제도’라는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통해 동성커플에게 사실혼 관계 증명서를 발급한 사례가 있으며, 나가사키현이 최근에 남성 동성커플을 주민등록등본상 배우자로 인정한 바 있다.

이의현 기자 yhlee@viva2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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