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오피니언 > 브릿지칼럼

[브릿지 칼럼] 공감의 문장력

입력 2024-07-15 13:56 | 신문게재 2024-07-16 19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20190326_154040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9년동안 칼럼을 이어왔고 다섯권의 책을 냈다. 요즈음엔 한달에 세곳에 칼럼을 쓰고 이름짓기를 주제로 여섯번째 책을 준비중이다. 마케팅과 대중문화에 관련된 내용이라 시의성있는 소재로 뼈대를 세우고 틀을 잡는다. 정보를 바탕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취지라 비유나 묘사는 지양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대책을 제시하는 기자의 리포트 방식을 취한다. 글쓰기는 늘 버겁다. 수많은 교정을 거쳐 신문사로 보낸뒤에도 매번 찜찜하다. 기록이나 메모와 달리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는 글은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할까?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면 재료 본연의 맛을 해친다. 글도 그렇다. 아마추어는 한 마디를 열 마디로 늘리는 사람이다. 짧고 단순해야 전체의 골격이 뚜렷해져 주제나 관점이 선명해진다. 기름의 엑기스처럼 쥐어짜서 뼈대만 남겨라. 접속사, 형용사와 부사는 쳐내고 동의어는 삭제해라. 사건의 개요나 정황을 묘사하는 부분은 특히 그렇다. ‘엄청나게 우연한 일이었다’라고 하지말고 ‘우연한 일이었다’ 라고 그냥 전해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기쁨과 슬픔, 확신에 찬 수천 개의 종교와 이념, 경제 체제,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시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어머니와 아버지, 희망 가득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스승과 부패한 정치인, 슈퍼스타와 지도자, 성인과 죄인, 군인과 황제, 햇빛에 떠다니는 먼지의 티끌, 우주라는 거대한 극장의 조그만 무대인 지구’가 아니다.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한 마디다.

하지만 짧은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공감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을 오무려 귀에 대고 조곤조곤 전하는 연인의 귀속말 같은 것이다. 독자의 감각과 감정을 끌어내려면 자상하고 농밀한 문장이 필요하다. 소설가 김연수는 ‘우리가 보낸 순간’에서 사랑의 감정은 ‘정말 사랑했었다’라고 개념을 전해선 전달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와 함께 걷던 거리, 그녀와 함께 먹던 음식, 그녀와 함께 나눈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기술해야 이해된다는 것이다. 소설가 정유정도 ‘유퀴즈’라는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완전한 행복’을 쓸 때 ‘시체가 썩어가고 있었다’라고 하지 않고 시체의 냄새, 시체의 모습, 시체의 느낌을 현미경으로 손금보듯 정밀하게 묘사해서 시체를 껴안고 자는 듯한 공포감을 조성했다. 단도직입적 문체의 대가 김훈도 냉이된장국의 맛에 대해 ‘냄비 속에서 끓여 지는 동안, 냉이는 된장의 흡인력의 자장 안으로 끌려들어가면서 또 거기에 저항했던 모양이다. 냉이의 저항 흔적은, 냉이 속에 깊이 숨어 있던 봄의 흙냄새, 황토 속으로 스미는 햇빛의 냄새, 싹터오르는 풋것의 비린내를 된장 국물 속으로 모두 풀어내는 평화를 이룬다’ 라며 문장에 오감을 총동원시켰다.

이들의 작문 비법은 뭘까? 정유정은 자신의 상상력을 현장에 적용시키려고 직접 쓰고 그린 사건 일지와 현장 노트를 공개했다. 범인과 형사의 역할을 번갈아 맡아가며 얼키고 설킨 가상의 시간과 장소와 정황을 빈틈없이 연출해서 실제의 사건을 만든 것이다. 소설가 김훈씨도 한 때 기자였다. 1학기 수업을 마치는 날 스토리텔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하루의 흔적을 블로그에 꾸준히 남기라고 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