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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베트남 감독이 만든 프랑스 영화, 독일 감독이 만든 일본 영화 '한국 극장가' 점령!

[Culture Board] 영화 '프렌치 수프' '퍼펙트 데이즈'

입력 2024-07-10 18:30 | 신문게재 2024-07-1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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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렌치 수프’.(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

최근 국내 영화계는 ‘국적 불문’의 영화가 조용한 입소문 중이다. 지난달 16일 개봉한 ‘프렌치 수프’는 베트남 출신의 트란 안 홍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10대 시절 정치적 이유로  온 가족이 프랑스로 망명길에 오른 그는 삶이 주는 고단함을 딛고 예술적 혼을 불사른다.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로 제46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던 그는 ‘시클로’를 만들어 연달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장본인이다. 

그의 최신작 ‘프렌치 수프’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1885년 ‘벨 에포크’(좋았던 시절)를 배경으로 한다. 과학과 미식이 교차되며 예술의 다양성이 솟구치던 시절이다. 국내 배급사에서 친절히 안내한 “꼬르륵 소리를 유발할 수 있는 요리와 음식장면이 포함돼 공복인 상태인 관객분들의 양해를 구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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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을에 도달한 도댕은 외제니 만을 위한 요리를 만든다.(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

 

익숙한듯 새벽의 채소밭을 거니는 주인공 외제니(줄리엣 비노쉬)는 그날 수확한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만든다. 그 시대에 ‘요리계의 나폴레옹’으로 불리는 도댕 (브누아 마지멜)이 눈 뜨자마자 찾는 존재다. 하녀에게 목욕물을 재촉하기도 전에 찾는 외제니는 인생의 반려자 이상이다. 늘 버터를 녹인 계란 요리로 아침을 여는 그는 친구들을 초대해 만찬을 즐기며 함께 부엌에서 하루를 보낸다.

세계적인 왕자의 만찬에 초대될 만큼 그의 영향력은 위대하지만 뒤에는 주방을 지키는 외제니가 있었다. ‘프렌치 수프’는 40분 이상의 롱테이크로 기본 3시간 이상의 프랑스 정식과 가정식의 향연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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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요리 안에는 서로에 대한 존경과 배려 그리고 사랑이있다. (사진제공=그린나래 미디어)

 

보는 것 만으로도 눈과 귀가 행복해지는 요리로 ‘프랑스 국민’ 배우라 칭송받는 두 주인공들의 연기가 묻힐 정도다. 먹음직스런 메인 요리인 송아지 구이를 위해선 야채를 삶고 얼음물에 담근 뒤 다시 화덕에 굽는다. 육수를 내는가 싶더니 들어가는 소스에만 몇 시간의 졸임 과정을 거친다. 도댕의 친구들은 외제니의 만찬을 기꺼이 즐긴다. 음식이 나오는 그릇도 예술이지만 음식을 즐기는 프랑스인들의 진심은 ‘프렌치 수프’를 가득 채운다. 정신적 동반자인 두 사람은 부부 이상으로 굳건한 관계지만 결코 결혼하지 않음으로서 더욱 단단해 진다. 사실 도댕은 20년간 청혼을 하지만 외제니는 “부부와 다를 바 없다”는 말로 일축한다.

하지만 요리사의 마음은 요리로 얻는 법. 제철에 담근 서양배 모양을 빼다 박은 줄리엣 비노쉬의 둔부가 강조되며 두 사람이 결국 맺어짐을 가늠한다. 긴 세월 함께 했지만 외제니가 도댕에게 방문을 연건 단 두 번 뿐이다. ‘프렌치 수프’는 남성에게 귀속된 여성의 모습보다 ‘요리’로 연대했던 인간애를 관통한다. 무엇보다 수십 가지 다양한 프랑스 요리를 비롯해 와인에 대한 자세한 재료는 ‘요알못’이어도 코스 요리를 먹고 싶을 정도로 강렬하다.  실제로 1999년 연상연하 커플로 부부의 인연을 맺었던 줄리엣 비노쉬와 브누아 마지멜은 20년만에 ‘프렌치 수프’에서 재회해 남다른 호흡을 자랑하니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애틋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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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펙트 데이즈’.(사진제공= (주)티캐스트)

그에 비해 지난 3일 개봉한 ‘퍼펙트 데이즈’는 지극히 현대적이다. 개봉 6일 만에 전국 2만 관객을 돌파한 이 영화는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야쿠쇼 코지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평일에도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서울 주요 극장가에서는 ‘티켓 전쟁’이 벌이지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퍼펙트 데이즈’는 ‘베를린 천사의 시’ ‘파리, 텍사스’ 등을 연출한 독일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의 최근작이다.  일본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 측으로부터 제안 받고 유명 건축가들이 개축한 도쿄 시부야 지역 공중화장실 17곳을 배경으로 단 2주만에 영화를 완성해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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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야마의 출근길에 나란히 놓인 물품들. 필름 카메라와 지갑, 열쇠와 동전이 정겹다. (사진제공= (주)티캐스트)

 

극 중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도심 번화가의 공중 화장실을 청소하는 게 직업이다. ‘청소중’이라는 안내판을 내걸어도 수시로 들어오는 시민들에게 그저 웃어 보이고 배려할 뿐이다. 대사는 거의 없고 가족은 없다. 퇴근 후 공중 목욕탕을 가고 월급날이면 단골 바에 가서 술을 먹는 게 유일한 낙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서양에서 본 동양의 신비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상하리만치 극 중 주인공은 숲과 자연에 대한 단행본에 집착하며 전날 겪은 일상을 꿈으로 반복하는데 빔 밴더스 감독은 심리학자 융의 이론을 스크린에 옮긴 듯 분석적이다. 

현대인의 비밀스럽고 배설적인 공간을 일본인 특유의 근성으로 근면하게 처리하지만 현지인들의 시선은 배타적이란 게 함정이랄까. 중년의 청소부인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불결하고 불쌍함의 극치지만 히라야마는 그런 단조로운 삶 속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행복을 추구한다. 모두가 잠든 새벽 근처 사찰에서 들려오는 청소 소리에 잠을 깬다. 일주일에 한번 다다미 방을 청소하고 자주 가는 공원의 나무를 찍은 필름 카메라를 현상하는 등 특별함 없이 반복되는 청소부의 삶이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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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화장실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건축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되는 영화의 한 장면. (사진제공= (주)티캐스트)

 

‘퍼펙트 데이즈’의 잔인함은 순전히 인간의 시선이다. 영화 초반 어리고 미숙한 엄마의 잘못으로 공용 화장실에 버려진 아이의 손을 잡고 위로해 주던 그는 자신이 잡은 손을 물티슈로 닦고 경멸하는 시선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사실 대사에는 “전날 먹은 구토물, 온갖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곳”이라는 대사가 나오지만 영화에는 그런 묘사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 너무도 깔끔하고 반듯한 최신식 일본 화장실은 되려 괴리감 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영화로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일본의 국민 배우 야쿠쇼 코지의 엔딩신은 소름 그 자체다. 늘 가던 출근길 일출을 보며 맺히는 그의 눈물이 기쁨일지 슬픔일지는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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