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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셀럽 연좌제

입력 2024-07-01 14:40 | 신문게재 2024-07-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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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아버지 수난시대’다. 아니다. 오히려 딸, 아들의 십자가 행군이 아닐까? 아버지의 위엄, 권위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유명 연예인·운동선수를 딸, 아들로 둔 일반인 부모를 향한 미디어, 대중의 관심 및 비난이 드세졌다.

골프 여제 박세리가 친아버지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소하면서 가족 내부의 갈등을 눈물로 호소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어 세계적 축구선수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 감독이 축구아카데미에서 아동교육생에게 가혹행위를 저지른 의혹이 세간의 도마 위에 올랐다. 또한 인기MC 박수홍이 친형의 횡령 재판에서 아버지와 대립하기도 했다. 이 모든 잡음은 셀럽이 아니라 가족이 저지른 잘못이었다. 하지만 미디어와 대중은 마치 셀럽 본인의 문제처럼 확대 재생산했고 해명이 필요한 상황까지 발생했다. 그들은 온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걸까?

“법은 문지방을 넘지 못한다”는 로마시대 법언에 따른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 마저 헌법불합치로 내몰린 오늘날, 전통적 가족의 개념과 사회적 의미는 꽤 달라졌다. 그만큼 가족 개개인은 독립적 개체로 존중돼야 하며 법률적·도덕적 책임의 공유를 강요할 수 없다.

박세리가 아니었다면 기자회견까지 열어서 아버지의 채무 관계를 해명해야 했을까? 손흥민의 아버지였기에 거액의 합의금 운운하는 녹취록이 미디어에 노출됐다. 박수홍의 재판이 아니라면 아버지의 친족상도례 규정 악용 시비를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결국 이는 연예인이 공인에 해당하는지 여부의 문제다. 정치인, 고위관료 등 공적인 업무 수행자는 공인에 해당하므로 자신의 가족 및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시시비비까지도 세간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다. 미디어의 검증·비판 의무, 국민의 알 권리가 공인과 그 가족의 명예, 프라이버시보다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적 영역과 직접 관련 없는 연예인, 운동선수에게도 그에 버금가는 법률적·도덕적 잣대가 요구되고 있다. 셀럽들 본인에 대한 사생활이 아니라 가족과 그 주변인의 스캔들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사까지 검증하거나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는 관행은 한참 잘못됐다. 자극적·선정적인 콘텐츠로 돈만 벌려는 일부 유튜버들의 무책임한 행태만이 아니다. 이를 비난하고 바로 잡아야 할 정통 미디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언론이 책임감 없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만 부각시키고 있다. 레가시 미디어를 포함해 영향력 높은 미디어가 언론의 사명과 책임을 통감한다면 절제된 취재와 신중하고 균형감을 갖춘 보도 방향으로 공인과 공인이 아닌 사람을 구별해 다뤄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돈이 걸려있다. 셀럽들이 체결한 광고계약 또는 각종 출연계약상 ‘품위유지’ 조항이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자신의 귀책사유 없이도 가족 문제로 인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게 되면 위약금이 발생할 여지가 생기고 향후 광고 또는 대외적 활동을 전개함에 있어 막대한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호부호형을 허하는 주체는 미디어도 아니고 대중도 아니다. 로마 법언처럼 법 뿐 아니라 미디어, 대중도 집안의 문지방을 넘지 말아야 한다. 호부호형 하든 호가호위 하든 이는 셀럽과 그 가족의 선택이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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