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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연극에 닿은 어느 중견기업의 선한 영향력

입력 2024-06-09 14:33 | 신문게재 2024-06-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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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순이 한국메세나협회 경영기획팀장·경영학 박사

며칠 전 본 연극 한편의 여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고(故)윤조병 작가의 1980년작 희곡 ‘윷놀이’를 각색한 연극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다.

윤조병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극작가다. 그의 짧은 희곡 원작을 연출가만의 독특한 색깔로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공포물인가 싶을 정도의 단출하고 어두운 무대, 느리고 추레한 몸짓의 주인공들. 하릴없이 한 곳에 모여 동네 일에 참견하는 사람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윷놀이를 시작한다.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 답답할 정도로 극의 호흡이 느리다가도 말판 위 말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웃다가 울다가 싸우다가를 반복하면서 윷판은 처절하리만큼 긴박해진다. 그깟 윷놀이가 뭐라고 우리네 인생과도 똑 닮은 윷판의 깊은 속내를 알게 되는 마지막에는 가슴이 저릿하다.

이 연극의 연출가는 극단 코너스톤을 이끌고 있는 이철희다. 그는 지난해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과 ‘서울예술상 연극부문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지난달 열린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에서 연극 ‘맹’으로 ‘젊은 연극상’까지 수상하는 등 그야말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배우였던 이철희는 캐스팅을 기다리는 긴 시간 동안 글을 쓰기 시작했고 한 중견기업에서 주최하는 희곡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 수상은 그에게 연극을 계속할 동력과 희망을 주었다. 이후 자신의 수상작을 무대에 올리고자 극단까지 만들었고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철희는 지난 5월 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에서도 자신의 연극인생을 또박또박 이야기하며 자신의 희곡을 뽑아준 기업에 감사인사를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흔치 않게 기업에 감사인사를 전하는 수상소감이 꽤나 진정성있게 느껴졌다. 이런 흐뭇한 장면을 만들어낸 기업은 바로 벽산엔지니어링이다.

벽산엔지니어링 김희근 회장이 설립한 벽산문화재단은 2011년부터 벽산예술상 희곡상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김희근 회장은 “새로운 창작극의 발견을 통해 재능있는 극작가를 양성하고 창작활동과 공연을 지원하여 희곡분야 발전에 작은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상금뿐 아니라 수상작을 연극으로 제작할 때 보조금도 지원한다. 수상작이 연극무대화 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철희는 2014년 제4회 벽산희곡상에서 ‘조치원 해문이’로 대상을 받았다. 셰익스피어 고전 햄릿의 비극성을 묵직한 코미디로 각색한 작품으로 권력에 대한 탐욕과 비열한 인간성을 들추어냈다는 심사평을 들었다.

“벽산희곡상 수상으로 인해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며 겸손과 감사의 말을 전하는 이철희는 희곡작가, 배우, 연출가로서 연극계에서 없어서는 안될 연극인으로 우뚝 섰다. 한 중견기업의 메세나가 만들어낸 기적이다. 더불어 ‘윷놀이’의 원작자 故윤조병 작가의 아들이자 극단 하땅세를 이끄는 연출가 윤시중 또한 벽산문화재단의 또다른 연극상인 윤영선 연극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김 회장은 “세대를 아우르는 이 모든 우연이 참으로 재밌고 마치 인생과 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연극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 미술 등 폭넓게 오랜기간 후원하고 있는 벽산엔지니어링은 초대형 인기 공연 후원과 보여주기식 문화마케팅에 급급한 기업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주순이 한국메세나협회 경영기획팀장·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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