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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친구는 제2의 가족

<시니어 칼럼>

입력 2024-06-06 13:47 | 신문게재 2024-06-0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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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량 명예기자
임병량 명예기자

친구란 말이 나오면 가장 먼저 H와 C가 생각난다. 60년대 보릿고개 시절 겸면 초등학교에서 만났다. 어린 소년에서 팔순이 가까운 지금까지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있다. 몸은 세월의 무게를 비껴갈 수 없어 노인이 되었지만, 만나면 여전히 동심의 세계 속에 빠져든다.


H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늦깎이 중학생 되었다. 남들보다 2년 늦게 입학했다. 그는 1학년 재학 중에 방학을 이용하여 2학년 과정을 공부했다. 영어 선생님을 비롯하여 모두가 그의 향학열에 개인 교사가 되었다. 수업 시간에는 약방에 감초처럼 ‘H’의 주경야독 이야기가 등장한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동적이어서 반에서는 리더 역할을 했다.

C는 이름 있는 건설회사 임원으로 퇴직했다. 은퇴를 앞두고 기술고시 최고령 합격자로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그는 7남매 중 장남이다. 부친은 자녀들이 보내준 용돈으로 적금을 부어 마련한 목돈을 장남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하지만 그는 가장 어려운 동생에게 절반을 떼어주고 나머지는 가족 수에 따라 나눠줬다. 나도 살기 힘든 세상에 먼저 동생을 생각한다는 것은 옛날 초등학교에서 배운 ‘의좋은 형제’ 밖에 없다. 요즘에는 듣기 힘든 이야기다. 이런 훌륭한 사람과 한평생 친구가 되어 살아왔으니 나는 정말 행운아다.

궁합이 맞는 사람과 함께한 여행은 세상을 얻는 기분이다. 젊고 건강하게 살려면 여행을 떠나라고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인생은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다’란 말이 있다. 우리 중에 누구 하나 아프면 여행은 그림의 떡이다. ‘내가 건강해야 친구도 행복하다’는 내용은, 세 가족이 만든 삶의 철학이다.

지난달에는 와인열차, 이번에는 협곡 열차로 구석구석을 누볐다. 협곡 열차의 좌석은 창가에서 자연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배열되어 눈이 호강한다. 연하고 진한 녹색이 어우러진 산야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력이 치유된 느낌이다. 승부역은 강원도와 경상북도 경계를 이룬 경북 봉화에 있는 작은 간이역이다. 퇴임한 역무원이 돌에 새겨 놓은 글귀가 눈길을 끈다. 꽃밭을 가꾸다 하늘을 쳐다보니 산세가 험해서 세평만 보였다는 글이다. 역무원과 승객이 마주하는 세평 쉼터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 옆에 꽃밭은 세평보다 작아 보인다.

양원역은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원곡마을 주민이 직접 세운 역으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최초의 민사 역이다. 이곳에서 영화 ‘기적이’ 만들어졌다. 왕복 5시간 통학길을 오가는 ‘준경’이가 청와대에 기차역을 지어달라고 수십 통의 편지를 보낸 노력으로 만들어진 역이다. 빛바랜 포스터가 세월의 길이를 가늠케 한다.

훌륭한 친구가 옆에 있으니, 마음이 항상 풍요롭다. 세 가족이 만나기로 약속한 날은 기다림의 일상이다. 그날이 오면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어릴 때 소풍 가는 날처럼 행복 호르몬이 절로 넘친다. 세월이 흐를수록 빈틈이 늘어나지만, 친구가 챙겨준다. 매월 맛집에 모여 여행을 계획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오늘따라 석양의 붉은 노을이 우리를 시샘하는지 산 능선 너머로 빠르게 모습을 감췄다.

 

임병량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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