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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일본추월? 한국역전?

입력 2024-06-07 04:00 | 신문게재 2024-06-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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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교수
전영수 교수
뒤쳐지면 불쾌하나, 뒤따르면 속편하다. 같은 거라도 어떻게 보느냐로 달라지는 법이다. 세상사 많은 게 그렇다. 본질은 하나일지언정 해석은 여럿일 수 있다. 해서 2~3등도 기죽을 일은 없다. 초조한 1등보다 안전한 2~3등도 나쁘잖다. 맨앞에서 없는 길을 만들며 외롭게 걸어가는 1등보다 낫다. 결국 선발자의 고뇌와 후발자의 이득은 겹친다. 추격하며 잘한 건 배우고 못한 건 피하면 뒤따라도 남는 장사다. 경제추격론에서 일컫는 후발자의 이득과 같다. 한국이 일본에게 얻은 시행착오 및 벤치마킹도 그렇다. 일본을 뒤쫓으며 가성비 좋은 성장경로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는 아니다. 이제 일본에게 배울 선행경험은 별로 없을 듯하다. 시차를 좁히며 급기야 일본을 넘어선 추월지표마저 생겨났다. 일본이 주춤하는 새 발빠르게 추격한 결과다. 대표적인 게 인구변화다. 실제 저출생은 일본을 가뿐히 제쳤다. 2023년 0.72명(잠정)은 일본(1.2명·추정)의 절반수준까지 떨어졌다. 2001년 추월한 후 계속해 거리를 넓혔다. 남은 건 고령화다. ‘저출생→고령화’로 늙어가는 속도·범위도 일본추월은 따논당상이다. 출생이 급감하면 고령비중은 내버려둬도 급증한다. 일본은 고령화율(65세 인구/총인구) 29%로 아직은(?) 세계 1위나, 한국에 물려줄 건 확정적이다.

그간 한국은 추격자의 이득을 쏠쏠히 누렸다. 미리 겪은 선행사례를 보며 비싼 수업료를 내지 않고도 효과적인 문제해결이 이뤄졌다. 그대로 갖고와 쓸 수는 없어도 약간의 수고·변형만으로 고가성비의 상황대처가 가능했다. 선발자의 족적이 안겨준 후발자의 수혜였다. 일본분해를 통한 벤치마킹·반면교사로 수용한 인구정책도 그렇다. 먼저 경험한 일본사례에서 상당수를 흡수했다. 심지어 서구사회와 달리 급증한 사회이동이 도농격차와 출산포기를 낳았다는 진단조차 비슷해 일란성 쌍둥이처럼 대응체계도 닮았다. ‘도시→지방’으로의 권한·예산이양을 뜻하는 로컬리즘이 선순위정책으로 채택된 배경이다. 한일 모두 수도권으로의 일극집중 완화를 주요의제로 강조한다.

이제 상황은 반전됐다. 최소한 인구구조의 변화양상은 한국이 일본을 뛰어넘어 더는 추격이득을 누리기 힘들어졌다. 이로써 그간 저출생·고령화의 실상·파장을 맨앞에서 겪으며 문제해결의 시행착오를 반복했던 선행족적이 사라졌다. 한국 앞에 아무도 없는 것이다. 뒤돌아보니 한때 추격했던 선진국이 약속이나 한 듯 신흥선두인 한국을 쳐다보는 모양새다. 물러설 곳이 없을뿐더러 나아갈 곳도 오리무중 신세다. 뛰어온 속도조차 그대로인 판에 아무도 밟은 적이 없는 길앞에 섰다. 선두를 내준 일본은 멀찍이 떨어져 깊은 안도의 한숨 속에 한국의 외로운 선택을 지켜볼 따름이다.

남은 건 보기 좋게 극복해내는 반전스토리다. 추월의 마침표는 역전이다. 넘어섰다고 늘 이기지는 않듯 역전을 완성하는 선발자의 발자욱을 남길 때다. 인구변화의 쓰나미를 도약대로 전환하는 승자다운 능력과 면모를 준비할 타이밍이다. 인구변화의 위기를 기회로 뒤바꾼 ‘퍼스트 펭귄’을 지향하자는 얘기다. 잡아먹힐 위험을 뛰어드는 용기로 전환해 바닷속 생선을 독점하는 전략이 좋다. 머뭇거릴 시간도 없고 되돌아갈 평지도 없기에 페스트 펭귄의 생존전략은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깝다. 지금 필요한 건 저출생·고령화 대처실험의 성공이 가져다줄 기회선점의 확신과 용기다.

일본추월과 한국역전의 유력지점은 초고령화로 정리된다. 2025년 한국의 고령화율 20%는 예고됐다. 늙은 사회로의 변화다. 문제는 속도다. ‘20%→30%’까지 일본은 19년이 걸렸는데, 한국은 11년(2036년)으로 줄어든다. 얼추 ±10년 후면 초고령 1위에 올라설 전망이다. 초고령화의 대응체계가 시급하다는 뜻이다. 아쉽게도 배울 곳은 없다. 강점은 경쟁력으로 약점은 역발상으로 활용해 새로운 생존·성장모델로 구축하고 제안하는 게 바람직하다. 추격자가 된 선진국이 한국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는 이유다. 더 빨리 달려와 제쳐버린 경험과 저력의 재구성이 요구된다.

전영수·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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