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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텀블러 유목민'에서 벗어났다! 세척, 브랜드, 크기… 당신은?

[이희승 기자의 사적라이프] 피부로 와닿는 텀블러 열풍
'텀꾸' 구경하는 재미 쏠쏠, 크기별 구매 반성 중

입력 2024-06-06 18:00 | 신문게재 2024-06-0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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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
요즘 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스탠리’ 팝업행사 진행중 한 고객이 컵을 들어보고 있다.(사진제공=롯데백화점)

  

지난달 타사 후배에게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원하던 ‘생선’(생일선물의 준말)을 받았다. 카카오톡 선물함 위시리스트에 올려 놓은 한 커피브랜드의 텀블러였다. 아이보리색 외형에 파란색 보틀(Bottle)이 그려진 누구나 아는 브랜드의 작고 앙증맞은 사이즈. 원하던 거라 유난히 감동이 물결쳤다. “그런데 선배 비슷한 거 지난번에 들고 다니시던데…”라는 후배의 말에 나는 감동의 이모티콘과 함께 “하늘 아래 똑같은 텀블러는 없다”는 답변을 보냈다.

사실 같은 브랜드지만 다른 디자인의 텀블러(편의상 A라 부르겠다)를 가지고 있다. 색은 더 하얗고 얼음을 넣을 경우 넘치지 않도록 스테인레스로 마개가 있는 타입이다. 맛과 색을 음료로 비교하자면 베지밀과 아몬드 브리즈 같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물론 크기도, 뚜껑 부분도 다르다.

텀블러 세계에서 용량의 세계 만큼이나 뚜껑 디자인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블루보틀 매장에서 한눈에 반해 구매한 A는 뚜껑에 손잡이가 없다. 대신 안의 거름망(?) 덕분에 티백을 넣어도 편리하고 얼음이 입술에 닿지않아 위생적이다. 하지만 산책을 하거나 뒷산을 올라갈 때 아무 것도 없는 뚜껑은 은근히 불편하다.

멋스럽게 몇번 들고나갔는데 아웃도어 전용 물병에 달린 손잡이 있는 뚜껑의 존재를 수긍할 정도로 은근 ‘짐’이 됐다. 이 참에 손잡이 있는 걸 받았으니 그 기쁨이란. 깜짝 선물도 좋지만 역시 선물은 ‘원하는 것’일수록 만족도가 올라간다는 걸 절감한 순간이었다. 

사적라이프
집에 있는 각종 물병들. 세워놓으면 찾기가 어려워 와인렉에다 보관해 놓고 있다. (사진=이희승기자)

 

사실 텀블러 사랑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추세가 점점 일회용품을 들고 어딘가 입장하거나 구매할 수 없는 분위기다. 종교시설은 물론 스포츠 센터, 세미나에서도 테이크 아웃 컵을 들고 입장하는 건 개념없음의 표본이 됐다. 처음엔 집에 뒹구는 보온병을 들고 다녔다. 귀여운 동물이 그려졌지만 여기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오래된 보온병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고 다녔던 추억이 깃든 물건이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보온병은 곧 트라이탄 물병으로 바뀌었다. 가볍고 투명해서 밀폐용기로 인기를 끄는 제품이다. 판촉용으로 받은 것도 제법 됐는데 문제는 얼리거나 차가운 음료를 넣으면 표면에 물기가 생기는 게 영 귀찮았다.

컵처럼 들고 다니면서 이왕이면 빨대도 있는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다. 가방에 넣을 순 없어도 가까운 거리라면 들고다닐만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올 초 ‘#스탠리 텀블러’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틱톡을 우연히 보게 됐다. 미국 Z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가 된 핑크색 스탠리 텀블러를 받고 오열하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높은 조회수는 물론 품절 대란으로 40달러였던 가격이 400달러에 거래됐다는 뉴스가 눈을 사로 잡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일명 ‘텀꾸’(텀블러 꾸미기)라 불리며 ‘젠지(Generation Z, 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자들) 세대들이 스탠리컵이란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이 직접 꾸민 텀블러를 SNS에 올리며 자랑을 하고 있었다.

‘굳이 왜 그렇게까지 꾸미냐?’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빨대 커버, 씻을 때도 벗겨지지 않는 큐빅 스티커, 전용 가방 등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인기를 간과할 111년 전통의 스탠리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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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만 무려 3개째 구매한 각종 텀블러들. (사진=이희승기자)

 

지난 4일 롯데백화점 잠실월드 1층에서 성황리에 종료된 스탠리 팝업 행사에는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퀜처 H2.0’(887ml)을 12가지 색상으로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로즈쿼츠, 크림 등 인기 색상과 더불어 2024년 새롭게 선보이는 넥타린, 피오니 등의 색상도 오프라인 매장 최초로 선보였는데 오픈런이 이어질 정도였다.

고백하자면 그 현장에서 딸기우유 색깔의 연핑크와 쨍한 분홍인 피오니 중 무려 30분을 고심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1.8리터 페트병 음료수가 거의 다 들어가는 크기를 고른 건 미국에서 한때 단종됐던 ‘퀜처’의 숨겨진 사연을 듣고서다.

그간 군용에 납품하거나 캠핑에 쓰는 투박한 느낌이 강했던 스탠리의 주요고객층이 여성들을 겨냥하게 된 건 2019년 단종 이후다. 미국은 대략 7시 20분 전후에 모든 아이들이 등교를 마친다. 새벽같이 일어나 자녀를 학교에 보낸 뒤 출근길과 근무하면서도 내내 일정한 온도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스탠리 텀블러는 사실 워킹맘들의 필수템이었다. 식기세척기에 넣어도 되고 튼튼하고 질리지 않는 클래식한 디자인도 인기를 거들었다. 이런 고객들의 충성도를 뒤늦게 알게 된 브랜드측은 상품 재생산에 들어갔고 트레이드 마크였던 녹색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상을 출시했다.

하지만 내근직이 아닌 탓에 이 제품은 결국 주말템이 됐다. 환경도 지키고 동시에 의무적으로 이 정도 물을 마실 거란 다짐으로 지갑을 연건데 평일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이 많은 취재기자의 현실에서 뉴요커스런 텀블러는 사치였다. 가지고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500ml는 크기는 적당해도 음료를 넣으면 무겁다. 355ml를 샀더니 뚜껑 디자인에 따라 편의성이 갈렸다. 유행이라는 말에 덜컥 구매한 1.18L는 빨대도 씻어야 하는 귀찮음을 애써 묵인하고 있다.

사실 텀블러를 소유하는 행위로 환경 보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에 따르면 텀블러 생산에 발생되는 온실가스는 일회용 컵보다 30배를 웃돈다. 영국 환경청은 최소 220번을 사용해야 일회용 컵을 대체하는 친환경 효과가 있음을 꼬집었다. 무분별한 생산을 중단해야할 때 되려 텀블러 열풍이 본질을 흐린다는 뜻이다.
LG전자, 텀블러 세척기
신개념 텀블러 세척기 ‘마이컵(myCup)’의 보급을 확대해 일회용컵 대신 다회용컵 사용 문화 확산에 앞장서며 ESG 경영에 나선 LG전자.(사진=연합)

 

요즘 최애는 200ml 짜리 미니 텀블러다. 포털사이트와 각종 쇼핑 앱은 최근 며칠간 텀블러를 검색했음을 AI에 알렸고(?) 관련 배너와 함께 많이 검색한 텀블러 순위를 친절하게 보여줬다. 이 낚시의 승자는 쿠팡이었다. 빠르게 배송된 모슈의 새빨간 텀블러는 색깔만 다를 뿐 주말에 들고 있는 사람만 벌써 세 명은 스친 것 같다. 크기에 비해 입구가 넓어 세척이 쉽고 무엇보다 가볍다. 그걸 본 지인들은 “너무 작은 거 아니냐?” “앙증맞다” “이것만 마시고 되겠니?”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드디어 ‘텀블러 유목민’을 탈출했다. 뭐를 ‘담고’ 다니기 위해서가 아닌, 일회용품이 아닌 곳에 ‘담아’먹기 위해서임을 그들은 알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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