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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졸속주의 규제의 덫에 빠진 ‘인공지능 기본법’

입력 2024-05-2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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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경북대학교 교수

규제학자들은 국회가 또 신기술, 신산업에 대한 관련 법을 만든다고 하면 덜컥 걱정부터 앞선다. 정치실패와 규제실패는 시장실패보다 더 심각하고, 시장을 규제하는 법이 의도한 효과를 가져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 곧 문을 닫을 21대 국회의 ‘인공지능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인공지능 기본법)이 법안 내용에 대한 논쟁의 대상을 넘어 정쟁의 불씨가 되는 모양이다. 이 법안은 이미 작년 2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하고 상임위에 계류되다가 어쩔 수 없이 다음 국회로 연기된 상태이다.

정부도 기본법을 조속히 제정해 산업 발전을 위한 지원책을 수립하고 인공지능의 공정성, 투명성, 책임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3년마다 ‘인공지능 기본계획’의 수립과 시행을 규정하고 ‘인공지능 위원회’ 등 관련 조직을 신설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인공지능 기본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인공지능 분야에 필요한 기술개발, 데이터 구축, 기업의 인공지능 도입과 활용 지원, 인력양성 등의 근거를 마련하여 산업을 육성하고, 인공지능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제 대상의 사전고지를 의무화하고 사업자의 책무 등 규제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사업자는 위험관리 방안을 수립하고 최종결과 도출 과정을 설명해야 하며, 이용자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원자력을 포함한 에너지, 의료기기 등 ‘고위험 분야’에서 사용하는 인공지능을 특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인공지능 기본법의 골자는 4차 산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산업의 발전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정부가 육성, 조성,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시민단체는 정부의 ‘우선허용, 사후규제’ 원칙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인공지능 산업의 진흥뿐만 아니라 인권과 국민의 안전에 미칠 수 있는 영향과 위험성까지 포함해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부가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인공지능 기본법이 추진되는 과정을 보면서 신기술 규제가 또 다시 ‘졸속주의 덫’에 빠졌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경험적으로 볼 때 각종 육성 및 진흥 등의 명목으로 만들어진 법들의 상당수는 육성이나 진흥의 측면보다 사업자와 기업의 책임과 의무 성격이 강한 또 다른 이름의 규제다. 정필모 의원 등 23명이 공동 발의한 법안을 들여다보면 전반적인 방향과 내용이 육성보다 규제에 방점을 찍고 있다.

법안의 제안 이유를 보면 구글이 개발한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압승한 사건,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가 잘못된 데이터의 학습을 통해 반윤리적 대화를 여과 없이 생산하여 서비스 제공이 중단된 사건, 배달앱 요기요 사례에서 인공지능이 배달기사들의 기본권을 침해한 사건 등 인간에 대한 인공지능의 위협과 공포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원래 정부규제는 사건·사고라는 토대 위에 위협과 공포라는 양분을 먹고 자란다. 그동안 ‘사고기반(accident-based)’ 불합리한 규제 남용으로 시대적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그 부담을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지운 경험이 한둘이 아니다. 타다 금지법 등 공유경제 시대를 이끄는 업종에 대한 비합리적 규제가 결국 해당 산업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둘째,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정부의 ‘우선 허용, 사후 규제’ 원칙에 대한 시민단체의 반발에 대해 정부가 물러나는 모습이다. 이 원칙은 학계의 오랜 목소리와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점진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원칙 허용, 예외 금지’의 소극적(negative) 규제 방식을 현실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는 더 이상 기존의 적극적(positive) 규제 방식이 작동할 수 없는 영역과 분야가 너무 많다. 지금 우리 생활에 스며들고 있는 새로운 기술들과 제품들은 불과 얼마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이제는 더 이상 앞으로 어떤 기술, 어떤 재화와 서비스, 어떤 산업이 우리 앞에 나타날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셋째, 법안의 내용을 보면 앞으로 인공지능 산업의 주체는 기업이 아니라 정부처럼 보인다. 정부가 인공지능산업을 육성하고, 인공지능사회의 정립에 필요한 계획을 세우고 심의하고, 인공지능기술의 기준을 정하고, 표준화를 위한 사업도 추진한다. 나아가 어떤 분야는 허용하고 어떤 분야는 금지하며, 실적을 평가하고 조사할 수 있도록 한다. 한마디로 앞으로 우리나라의 인공지능산업은 정부가 이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는 아직도 정치권이 정부중심주의, 가부장주의, 사회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 같아 입맛이 쓰다.

물론, 인공지능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필요하다. 이와 비슷한 법안이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추진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별, 지역별로 인공지능 산업과 관련된 많은 이슈들이 등장하고 이에 대한 정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향후 “대세”가 될 기술과 산업에 대해 규제의 속성이 강한 법안이 졸속으로 만들어지면 경제발전과 국가 경쟁력에 미칠 영향은 치명적이다.

기술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양날의 칼이다. 개인도 국가도 모두 어느 정도의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새싹이 돋아나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자르려고 하는 태도로는 어떤 성장도 기대할 수 없지 않을까?

 

김성준 경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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