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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보통의 시어로 삶과 사회에 밀착했던 신경림 시인 별세

입력 2024-05-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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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
신경림 시인(사진=브릿지경제DB)

 

“저는 평생을 을로만 살아온 사람이에요. 돈벌이도 변변치 않았고 직위도 높지 않았으며 학교 성적도 뛰어나지 않았죠. 다만 제가 한 일은 시 몇편 쓴 것 뿐이에요. 다른 욕심 안내고 지금까지 써온 시에 뒤 떨어지지 않는 시를 쓸 수 있기를, 제 시가 세상의 쓰레기 하나 더하는 시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2015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 신경림 시인에게 시는 ‘치열한 삶’ 그 자체였다. 어려서부터 절망적인 상황을 많이도 겪으며 웬만한 절망은 “별 것 아니다”라고 감내했던 그의 “결국 시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삶에 깊이 뿌리박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재미있고 설득력 있고 남에게 감동을 주려면 우리 삶과 동떨어져서는 안된다”는 시론은 그의 글에 고스란히 담겼다.  

 

신경림 시인 인터뷰
신경림 시인(사진=브릿지경제DB)
‘눈물과 통곡도 힘이 되게 하라고’(‘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중),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가난한 사랑’ 중)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갈대’ 중)….

그저 보통의 말로 엮인 한줄만으로도 공감을 일으키는 시로 서민의 고단한 마음을 보듬었던 신경림 시인이 별세했다. 향년 89세. 암투병 중이던 고인은 22일 오전 8시 17분경 경기 고양시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눈을 감았다.

1935년 충북 충주 출생으로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를 수록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해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동국대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만해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시카다상, 만해대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다.

고인은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 저마다의 주장만 난무하는 사회에 대한 고민의 끝은 언제나 ‘소통’과 ‘열린 마음’으로 귀결됐고 이는 고스란히 ‘길’ ‘농무’ ‘귀로’ ‘가난한 사랑’ ‘갈대’ 등 그의 대표 시에 스몄다.

민중시인으로 불렸지만 “목적을 가진 시는 평화롭고 따뜻하게 읽힐 수 없다” 했던 고인은 “그 시가 민족을 위한 자산이 되고 평화로운 세상에 보탬이 되면 좋을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삶에, 사회에 밀착하며 시를 썼던 신경림 시인의 장례는 한국시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평론가협회 등 문인 단체들이 뜻을 모아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장례식장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며 유족으로는 아들 병진·병규씨와 딸 옥진씨 등이 있다. 발인은 25일 오전 5시 30분, 장지는 충북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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