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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진료서 빠진 ‘사후피임약’ 처방… 응급상황 고려안한 복지부

복지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 발표
“사후피임약 복용당사자 여성 목소리 어디로”
일반의약품 전환 요구도… 日, 시범사업 시행

입력 2023-12-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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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지난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정부가 비대면진료의 기준을 대폭 완화하면서도 비급여 의약품 중 사후피임약 처방을 제한했다.

일각에서는 사후피임약의 응급성을 고려해 비대면진료 제한조치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코로나19 위기단계가 ‘경계’로 하향되면서 한시적 비대면진료는 종료됐다.

이후 보건의료기본법 제44조에 따른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이번 보완방안은 시범사업 6개월을 맞이한 비대면진료의 현장 의견을 거쳐 종합적으로 마련됐다.



◇초진·재진 구분 없애고 비대면진료 대상자 대폭 확대

복지부는 비대면진료가 대면진료의 보조적 수단으로서만 허용된다는 원칙하에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앞으로 6개월 내 대면진료 경험이 있는 환자는 내원한 의료기관에서 질환에 관계없이 비대면진료가 가능하다.

그동안 정부는 비대면진료를 동일질환으로 의료기관을 다시 방문했을 때 허용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는데 동일질환 조건이 삭제되면서 초진과 재진 구분도 없어졌다.

또 의료 인프라 부족 지역이 많고 의료취약 시간대에 병원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여론을 수용해 의원급 의료기관의 대상환자 범위를 조정했다.

휴일 또는 야간(오후 6시 이후)에는 모든 연령대의 환자가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전면 허용한 것이다.



◇의약품 오·남용 방지책 수립… ‘사후피임약’ 처방 제한

정부는 비대면진료 기준을 대폭 낮추면서도 오남용 위험성이 큰 의약품 관리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현재 비대면진료시 마약류, 오·남용 우려가 큰 의약품은 처방이 불가능하다.

앞서 의학계에선 탈모, 여드름, 사후피임약 등 비급여 의약품에 대한 처방 제한 필요성을 제기했다.

대한약사회가 지난 6~8월 시행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과 관련해 약사 114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의약품 소비량 중 비급여 비율은 15%다.

비대면진료의 경우 처방의 57.2%가 비급여로 집계됐으며 비대면진료의 비급여 의약품 처방 중 사후피임약이 34.6%로 조사됐다.

김대원 약사회 부회장은 지난 9월14일 복지부가 개최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공청회에서 “고위험 비급여 약에 대한 관리는 안전관리 측면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비대면진료 초진 여부와 관계없이 바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또한 약사회의 민원을 수용해 비대면진료에서 사후피임약 처방을 제한하는 방안을 내놨다.

복지부 관계자는 “약사회 등에서 실제 사례를 수집해 안전성 우려를 제기했다”며 “이와 관련해 복지부에서도 의료접근성과 안전성 중 무엇을 높여야 하나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사후피임약은 복지부가 처방관리를 하고 있지 않아 파악하기 어려워 처방 제한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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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응급상황’에 필요한 사후피임약… 대면진료 하라는 복지부

일각에서는 사후피임약 처방 제한이 오히려 응급상황에 놓인 여성 건강권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비대면진료 시 사후피임약 처방을 제한하는 조치에 복용 당사자인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사후피임약이란 성관계 전이 아닌 후에 복용해 수정란의 자궁 착상을 막아 임신 가능성을 낮추는 약을 말한다.

사전피임약을 복용하지 못했거나 원치 않은 성관계를 했을 시 72시간(3일) 안에 사후피임약을 복용해야 한다.

통상 12시간 이내가 권장되며 가능한 한 빨리 복용할수록 효과는 더 크다.

사후피임약에는 사전피임약보다 호르몬제가 10배 이상 많이 들어있어 복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남용 우려가 커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사후피임약을 복용해야 하는 경우는 응급상황일 때다.

일반 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를 보고 의사의 처방전을 얻기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원치 않은 성관계를 하고 난 후 수치심으로 진료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사후피임약이 필요한) 응급상황이면 당연히 병원에 가야 한다. 외국에서도 대면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다”고 견해를 내비쳤다.



◇사후피임약은 여성이 선택해야… 日, 처방전 없이 판매

최근 일본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됐던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판매하는 내용의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일본은 지난달 28일부터 사후피임약 일반의약품 시범판매가 시행됐다. 의사 처방전 없이도 사후피임약을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사후피임약이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의료기관이 저녁 시간대에 문을 닫고, 공휴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아 응급상황에 대비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사후피임약이 낙태 수술 보다 여성의 건강권을 보장한다는 의견에 거세지면서 일본 후생노동성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일본 국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 사후피임약 일반의약품 전환에 97%가 찬성했다.

일본 보건부는 이미 지난 2017년 사후피임약이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될 경우 무분별한 판매 등 오·남용이 우려된다며 반대입장을 밝혔으나 복용 당사자인 여성의 권리를 수용한 결정한 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지난 2012년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생명 경시풍조 심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학자는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에서 사후피임약 처방이 제한된 과정에 여성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됐을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본질적으로 파고들면 사후피임약은 여성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문제다. 지금 한국에서는 여성이 낙태를 하면 죄를 묻고,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기 위해 사후피임약을 복용하려면 의사결정 과정에 의료기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사후피임약 처방은 부작용을 당사자가 알고, 복용에 대한 지도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전 세계 90개국에선 의사 처방전 없이 사후피임약 구매가 가능하다.

세종=이정아 기자 hellofeliz@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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