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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주담대’ 가이드라인에 은행권 ‘혼란’, 왜

입력 2023-09-17 10:03 | 신문게재 2023-09-1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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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이하 연령층 은행 연체율 역대 최고 수준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앞에 붙어 있는 대출상품 관련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말 그대로 혼란입니다. 미래 시점의 퇴직까지 고려해 대출 전(全) 기간의 상환능력을 검토하라는데 은행이 대출자의 미래를 예언하라는 말 아닌가요.” 금융당국의 50년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제한 대책의 예외조항을 놓고 은행권이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차주들의 50년 만기 상환능력을 은행이 자체적으로 판단하라는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애매모호하다며, 사실상 모든 50년 주담대 취급을 막으려는 취지로 해석하거나, 은행 측에 책임을 넘기는 것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주요 은행들이 판매해온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이 최근(7~8월) 가계대출 증가세를 사실상 주도했다고 보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만기를 최장 40년으로 제한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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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대출상환 전 기간 중 상환능력이 ‘명백히’ 입증되면 실제 만기(50년)를 사용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뒀다. 채무상환능력의 입증은 은행이 자체적으로 내부기준을 마련해 소득 등 제반 정보를 토대로 평가하라는 방침이다. 은행은 대출취급 시점의 소득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차주의 기대여명, 은퇴시점 등 상환능력 유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을 감안해 대출만기를 설정해야 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 시점에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이 취직해서 어느 정도로 일한다고 (은행이) 판단했을 때 벌어들이는 소득과 상환기간에 벌어들이는 소득이 일치할 수 있도록 은행이 판단해야 되는 부분”이라며 “은행은 정교하게 내부적으로 차주의 상환능력을 판단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국은 ‘대출기간 내 충분한 상환능력 확인’이라는 원칙 하에서 제도를 유연하게 적용하겠다지만, 은행들은 당국의 가이드라인에 혼란스러운 반응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당국이 차주의 미래 퇴직까지 고려해서 대출 전 기간의 상환능력을 검토하라는 메시지를 줬다”며 “기존처럼 단순히 현 시점에 소득을 확인하는 수준이 아니라 만기를 50년까지 늘리겠다면 50년 전 기간에 걸쳐서 상환능력을 검토하고 대출을 취급하라는 것인데 미래를 예언하라는 말 같다”고 했다.

은행들은 차주가 미래시점에 벌어들이는 소득까지 현시점에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사실상 50년 주담대를 다 막으라는 얘기거나, 차주들의 반발이 있을 것을 감안해 은행 자체 판단에 맡기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A은행 관계자는 “20세에 대출을 받아도 50년 만기면 70세가 되는데 그때까지 차주의 소득이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을 은행이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나”라며 “50년 주담대를 받으려했던 차주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으니 무조건 제한하는 것 보다 상환능력을 입증하면 해주겠다고 우회적으로 거절한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B은행 관계자는 “퇴직 후에 소득이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검증해야 하는데 연금 외에 어떤 소득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정확하지 않을 것”이라며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으려는) 당국의 취지로 미루어 사실상 예외 적용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취지 같다”고 했다.

30대의 한 은행 관계자는 “나도 당장 30년 뒤에는 퇴직한 상태일 텐데 퇴직 후 소득을 증빙하는 것은 본인도 불가능하고 은행도 입증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며 “그래서 혼선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당국은 50년 주담대의 상환능력을 판단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차주의 상환능력을 확인하는 것은 은행의 의무”라며 “상환능력에 따라 심사를 하라고 했는데 세부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은행들은 자체적인 판단으로 50년 주담대를 취급했다가 금융당국이 문제 삼을 경우를 우려하기에, 50년 주담대의 예외적인 취급을 지양할 것으로 관측된다.

C은행 관계자는 “차주의 상환능력을 판단해서 예외적으로 50년 주담대를 취급하더라도 명백히 상환기간에 대출을 계속해서 갚아나갈 수 있을만한 채무상환능력이 있는지 검증하기 어려운데, 당국이 나중에 문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무리해서 50년 주담대를 취급하긴 힘들 것 같다”고 전했다.

현재 주요 은행 가운데 농협은행과 하나은행, 기업은행, 경남은행, 부산은행 등은 50년 주담대 취급을 중단한 상태다. 국민은행 등은 DSR 만기를 최대 40년으로 조정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 교수는 “당국이 50년 주담대를 적용할 수 있는 예외조항을 두면서 은행이 자체적으로 판단하라고 했는데 기준이 좀 모호하다”며 “은행이 알아서 50년 만기를 적용할 수도 있겠지만 책임은 은행에 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예외조항을 남겨둔 것은 당국이 시장에 너무 개입해서 규제한다는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한 것 같다”며 “연령이나 소득 등 50년 만기가 가능한 자격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면 은행들이 혼선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수환 기자 ksh@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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