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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빛바랜 고학력 성공모델

입력 2023-08-27 14:08 | 신문게재 2023-08-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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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시대가 변했건만 유령은 활개친다. 통하지 않는데도 먹힌다 세뇌하며 강권한다. 예전엔 맞았지만 지금은 달라진 게 태반이라 시대를 못 읽는다는 반발과 저항에도 고정관념의 노예로 전락하며 시대변화를 외면·무시한다. 이들에게 상식은 변함 없는 맹목적인 준칙사항이다. 상식이 바뀐다는 건 상상조차 힘들다. 그끝은 뻔하다. 경로이탈 속 불행확정은 피할 수 없다.


고정관념과 시대변화가 어긋난 사례는 많다. 부모세대의 인생모델이던 ‘고학력·대기업’형 입신양명이 대표적이다. 즉 공부만 잘하면 부자가 된다는 성공모델은 갈수록 설명력·정합성이 떨어지는 유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건재했던 왕년의 룰로 기억하는 기성세대는 여전히 ‘행복·성공도=공부·성적순’을 주문처럼 왼다.

예전에는 공부만 잘하면 확률상 양적성공은 보장됐다. 워낙 우수인재가 적어 부모찬스를 웃도는 개천데뷔가 많았다. 고학력만 뚫으면 성공궤도에 올라탔고, 고도성장형 연공축적도 당연했다. 하지만 더는 아니다. 좋은 대학·회사에 간다고 성공·행복해지지 않는다. 최소한 보편·일률적인 확률은 낮아졌다. 고학력이 보장하던 컨베이어벨트식의 기계·관성적인 부귀영화는 통하지 않는 시대다. 상황이 이럴진대 한국사회는 아직도 대입중심 학력주의로 색바랜 과거잣대를 청년그룹에게 재단하고 강요한다.

세계꼴찌인 출산율 0.78명은 한국형 ‘고학력·대기업’ 인생모형이 초래한 최악의 성적표다. 선진국 현재와 후진국 인식의 미스매칭이 빚어낸 결과다. 즉 공부가 최고라는 학력주의야말로 한국사회를 망가뜨린 원죄에 가깝다. ‘학력주의↔인구변화↔사회문제’의 상관관계 때문이다. 고학력·대기업을 좇자면 환경조건이 좋은 서울·수도권으로 일극집중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데, 여기는 전형적인 ‘고밀도·저출산’의 거주환경인 까닭이다. 전근대적인 입신양명이 고출산지인 지방청년을 저출산지인 서울권역에 내몬다는 얘기다.

학력주의만큼 인구변화와 직결된 혐의변수도 없다. 때문에 ‘사람은 한양으로’의 슬로건이 낳은 장기·고착적인 구조타파가 시급하다. 인구대응을 역동적 인과관계로 살펴보면 교육개혁은 빠지지 않는 토대과제로 거론된다. 케케묵은 교육체계가 인구변화로 상징되는 사회갈등의 진원지란 의미다. 먹혀들지 않는 고학력·대기업 인생모델이 교육제도·입시구조를 지배하고 있기에 후속세대는 0.78명의 출산율을 내세워 경고형 방어기제를 작동시킨 것과 같다. 한층 똑똑해진 자녀세대가 부모세대의 ‘교육→취업→결혼→출산’형 가족구성을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부터 직시하는 게 옳다. 시대변화에 맞춰 제도개혁이 이뤄지도록 미스매칭 간극을 줄이는 형태다. 최소한 고학력·대기업이 과거처럼 만고지존의 절대진리가 아님을 인식·공감하는 게 좋다. 급격한 사회이동이 도농격차와 출산포기를 낳았다는 점에서 굳이 자원집중의 서울블랙홀에 편승하지 않아도 얼마든 행복인생이 구현되는 모델을 제안·확산하는 게 중요하다. 시대상황별 추구의제는 달라지는 법이다. ‘산업화→민주화’의 차기바통은 ‘다양화’로 귀결된다. 공부야말로 입신양명의 지름길이 아닌 행복한 삶의 또 하나의 선택지로 충분해서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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