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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노트르담 온 파이어'의 장 자크 아노 감독 "한국도 프랑스와 같은 '화마'를 겪었잖아요?"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 장 자크 아노 감독
"처음엔 거절, 하지만 실화가 주는 힘 언제나 나를 자극해"

입력 2023-06-26 18:30 | 신문게재 2023-06-2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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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관객들에게 영화 ‘연인’으로 유명한 장 자크 아노(79)감독에게 지난 4년은 힘든 시기였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타오르는 걸 생생히 지켜봤기 때문이다. 집과의 거리는 고작 200미터. 늘 산책하며 오가는 길에 들리는 그 곳은 전세계 관광객이 구름같이 몰리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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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크 아노감독은 프랑스 자택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세계 고건축물들이 의외로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다. 다행히 이번 화재덕에 경각심이 전보다 많이 늘었지만 늘 작은불씨를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영화사 찬란)

 

29일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 한국 개봉을 앞두고 화상으로 만난 장 자크 아노 감독은 “엄청난 세계유산이 이 정도로 허술하게 무방비 상태로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동시에 화가 났다”면서 “그 혼란의 카오스가 얼마나 컸는지 영화에는 차마 담지 못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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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국내 관객과 만나는 ‘노트르담 온 파이어’ 의 공식포스터. (사진제공=찬란)

 

영화적으로는 탁월한 소재이자 배경이었지만 감독이 느낀 분노와 절망감은 대단했다. 700년 가까이 파리의 상징 중 하나였고 주요 관광지였던 노트르담 대성당은 첨탑 보수 공사 중이던 지난 2019년 4월 15일 화재로 소실됐고 지금까지도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당시 화재를 실시간으로 목격했던 파리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성가를 부르는 등 문화재의 손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고 전세계가 비통함에 빠졌다. ‘노트르담 온 파이어’에는 그동안 대중들이 몰랐던 대성당의 이면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뒤엉킨 전선과 보수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피워대는 담배 그리고 이미 몇 세기에 걸쳐 쌓인 듯 보이는 먼지와 쓰레기더미들, 내부까지 진입한 비둘기의 배설물까지. 대성당의 화재를 알고 보는 관객들이라면 오프닝부터 그 어떤 스릴러보다 무서운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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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장’으로 불렸던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가 생생히 영화 속에서 재연된다. (사진제공=찬란)

 

“영화적으로는 소재나 배경으로 완벽했습니다. 어쩌면 코미디적인 요소도 있죠. 12세기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건물이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돼 왔다는 사실이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제작사 친구(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사로 불리는 고몽 영화사)가 ‘영화로 만드는 건 어때?’라고 하더군요. 이미 뉴스로 대서특필된 사건이고 비극인지라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신고부터 일반인들의 희생 그리고 소방관들의 노력까지 정확히 어떤 일이 그 안에서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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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가치가 높은 가시면류관, 성 십자가, 십자가 못 등 귀중한 성유물이 모두 한 줌의 재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소방관과 일반인들의 희생으로 기적처럼 그을림없이 지킬 수 있었다. 실제 영화 속 한 장면. (사진제공=찬란)

 

‘장미의 이름’ ‘연인’ ’티벳에서의 7년’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등으로 유명한 장 자크 아노는 감독이기 전에 철학가이자 탐험가로 유명하다. 영화를 찍기 전에 배경이 된 문화를 직접 탐방하고 오랜 시간 머물며 공부한다.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사실이 가진 힘에 집중하며 관객들을 감동으로 이끄는 아티스트다. ‘노트르담 온 파이어’에는 현직 프랑스 대통령까지 출연하며 몰입도를 더한다. 마크롱 대통령에게 직접 당시의 영상을 허락받고 대역 배우의 뒷 모습을 기술적으로 활용해 삽입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소방관, 성직자, 시민 목격자 등을 350여명을 인터뷰했습니다. 100% 증거는 없지만 의도적 방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봐요. 약 4%가 실제 영상인데 뉴스와 더불어 일반인들의 촬영분까지 약 4만여개의 비디오를 제보받아 직접 골라냈습니다. 사건에 집중하기 위해서 최대한 덜 알려진 배우를 캐스팅해 몰입도를 높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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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관계자들마저 놀라게 한 사실적인 세트장을 화마로 뒤덮인 상태로 만들어야 했던 촬영 현장. (사진제공=영화사 찬란)

 

영화엔 대성당의 화재 감시 경보가 울렸는데도 관계자나 소방당국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모습이 가감없이 담겨있다. 하필 처음 출근한 담당자가 시스템 오작동으로 처리해 뒤늦게 출동한 소방차와 구조대는 파리의 악명높은 교통체증으로 오도가도 못한다. 그는 “실제 삶이 더 비극적이고 웃긴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지않나” 반문하며 “이번 영화에 슬랩스틱 코미디가 가미된 이유”라고 현실의 아이러니를 짚었다.

“사실 가장 위로가 됐던건 성물 안에 있던 유물들과 구조가 1300여점의 귀중품이 하나도 손실없이 구조됐다는 거예요. 한국에서도 숭례문 화재가 있었잖아요? 그 소식을 듣고 저 역시 슬펐습니다. 이 영화 역시 주인공은 가치가 큰 문화재고 상대는 위협적이고 무시무시한 악마 ‘불’이죠. 각본가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한편의 오페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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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숭례문 화재를 겪은 한국인들이 비극에 공감하며 봐주었으면 한다”는 특별한 당부를 남겼다. (사진제공=영화사 찬란)

 

영화의 제작비는 총 400억원.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된 대성당 일부에서의 촬영도 허가됐다. 성당이 지어졌을 당시 투입된 대량의 납이 400℃ 가까운 고온으로 인해 모두 녹아내렸고 납 노출 위험에 대비한 보호복을 입고 최소한의 인원으로 움직여야 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한 마디로 상태가 끔찍했어요. 그래서 비슷한 양식을 가진 성당을 빌려 촬영을 했죠. 불이 붙고 천장이 무너지는 장면은 실물을 본뜬 세트를 지어 카메라 12대를 놓고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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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찬란)

 

화재 진압의 ‘골든 타임’은 놓쳤어도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인류애의 희생과 노력은 이 영화의 백미다. 20대 초반의 시민들과 여성이 포함된 소방관들이 위험한 임무에 뛰어드는 과정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제작자의 손녀이자 유명 배우인 레아 세이두가 출연했다면 좀 더 흥행성을 노려봄직 하지 않았겠냐”는 질문에는 “일단 연령대가 맞지 않았다.(웃음) 그리고 가족들끼리 사이가 안 좋은 걸로 알고 있다”고 눙쳤다.

“실제 일어난 일을 통해 영감을 얻고 그걸 영화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신뢰를 주고 더 깊은 감정을 끌어내는 게 제 몫이죠.”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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