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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설업 중대재해 감축 없이 안전 선진국은 요원하다

[건설, 안전으로 행복을 짓다] (2) '중대재해 감축' 앞장서는 건설사
고용노동부 류경희 산업안전보건본부장

입력 2023-06-19 06:13 | 신문게재 2023-06-1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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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희 본부장님
류경희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고용노동부 제공)
요즘 이른 새벽에 어김없이 잠을 깨우는 알람(alarm)이 하나 생겼다. 우리 집 바로 옆 금강을 끼고 목 좋은 곳에 5층짜리 상가에서 나는 뚝딱소리가 그것이다. 언제부턴가 일어나자마자 처음 하는 일이 14층 아파트 문을 열고 상가 건축 현장을 살피는 것이다. 아쉽게도 위험천만한 행동이 고스란히 보인다. 안전모도 쓰지 않고 크레인에 묶인 중량물 자재가 머리 위로 지나가고, 트럭 운전석 위 지붕에 올라가서 크레인에 달린 자재를 잡아당긴다. 마음 편히 창가에 서는 아침은 작업이 없는 공휴일 뿐이다.

건설업은 인간 삶, 역사의 발전 그 자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로마제국의 도로망은 제국 형성과 통치의 토대가 되었다. 오늘날 사람과 물건을 마치 공간이동 하듯 보내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도시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고층 건물, 대형 설비들로 예술작품을 만들 듯 복잡하고 오묘하게 채워진 공장, 대규모 행사와 사회활동을 하는 공공시설, 모두가 건설업의 산물들이다.

국가경제 측면에서도 고용창출의 거대한 저수지였다. 산업 평균 고용유발계수가 4.3명인데 반해 건설업은 5.4명에 달하며, 현재 200만 명 이상의 일자리를 책임지고 있다. 해외건설 분야에서도 세계 5위의 건설 강국이 되어, 한마디로 효자 산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의 측면에서 보면 건설업은 골치꺼리, 천덕꾸러기가 된 지 오래다. 산업의 비중은 33%인데 중대재해의 절반이 건설업에서 발생한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강력한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져 시행되고 있지만 건설업의 중대재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올해 5월까지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50억원 이상의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사망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5명이 증가했고, 사고 건수로는 10건이 증가했다. 특히, 최근 5월 이후에 건설업의 재해가 증가하고 있고 꺾일 조짐도 없다. 고용노동부에서 중대재해 발생을 공유하는 오픈채팅방인 ‘중대재해 싸이렌(siren)’에는 매일 쉼 없이 싸이렌이 울린다. 안전의 측면에서 건설업은 오랫동안 불효자였고 개선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중대재해의 절반이 발생하는 건설현장의 안전을 빼고 산업안전을 얘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욱이 지난 4월에는 건설사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첫 판결에서 원청 건설사의 대표에게 1년 6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과도하다는 업계의 반응도 있으나 중대재해처벌법은 엄연히 존재하는 실정법이고, 법원이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돌아갈 길이 없다. 있다면 중대재해를 막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건설사들의 안전관리 수준은 턱없이 부족하고, 근로자들의 안전의식과 사회의 안전문화도 과거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있으면 장마철도 오고, 이어 무더위와 엘니뇨 발달에 따라 심화될 것으로 예측되는 기상이변이 근로자들의 집중도를 떨어뜨릴 것이다. 최근의 중대재해 증가세를 반전시키기에 장애물이 너무 많아 이중 삼중으로 대처해도 부족할 판에 우리는 너무 느긋한게 아닌가 싶다. 모두가 절치부심해야 할 때다.

원래부터 건설현장은 기초, 골조, 마감 등 수많은 공정이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각 공정마다 투입되는 장비가 달라 위험요인이 수시로 변한다. 참여하는 협력업체와 작업자도 매번 달라진다. 그래서 건설업 중대재해 예방에서 기업의 자율예방 역량을 키우는 것이 더욱 중요한데 처벌을 회피하기 위한 안전기준 규칙을 기계적으로 충족하는 것이 안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컸다. 스스로 위험요인을 발굴·제거할 수 있는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현장에 착근시키는 것이 시급한 관건이다.

최근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후속조치로 쉽고 간편한 새로운 위험성평가가 가능하도록 고시규정을 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어렵고 복잡해서 도저히 못하겠다는 중소기업과 현장의 불만을 수용하여 의무적으로 적용되던 빈도·강도 위험성 추정 방법 외에 체크리스트법 등 유연한 방식들을 추가하였고, 상시평가를 신설하여 월·주·일 단위로 해야 할 구체적 활동과 방법을 제시하였다. 습관적인 일상활동으로 자기규율 안전을 실천하자는 취지다. 간편하면서도 가성비 좋은 위험성평가, 그 결과를 현장 근로자에게 전달해주는 TBM이 핵심 구조이다.

이제는 용기를 내어 새로운 도구를 현장에서 시도해볼 때이다. 정부는 언제든지 보완하고 개선할 준비가 되어있고, 이를 위해 늘 귀를 열어두고 있다. 정부와 함께 중대재해 최대업종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여정에 힘껏 나서보자.

류경희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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