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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식당에서 남은 김치로 끓일지언정!

[이희승의 영화 보다 요리] 한국인의 '소울푸드' 김치찌개...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모자상봉에 폭포눈물

입력 2023-01-05 18:00 | 신문게재 2023-01-0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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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안주로도 손색이 없는 김치찌개. 집에서 끓여먹는 맛과 다른 ‘남이 끓여주는 집밥’의 향수를 자극한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사회 초년병 시절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은 ‘어메부’였다. 다들 뭐 먹으러갈지 이것저것 고민하지만 ‘어차피 메뉴는 부장님이 고른 음식’이었던 것. 가끔 파스타나 샐러드도 먹고 싶었지만 직장 상사가 정한 한식 위주의 식당에서 각자가 먹고 싶은 걸 고르는 게 대세였다. 구내 식당이 없었던 회사를 다녔던 탓도 있을테지만 지금도 잘 먹지 않는 선지국이나 생선구이 등이 아닌 이상 상사와의 점심이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김치찌개 만큼은 예외였다. 딱히 끌리는 음식이 없어 무난하게 김치찌개를 고르면 다들 ‘남은 김치로 끓여낸다’는 둥, ‘집에서도 먹는 걸 시킨다’ ‘차라리 된장찌개를 먹어라’ 등 조언을 가장한 타박들이 이어졌다. 그때는 그게 가능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김치찌개를 먹어 본 적이 없다. 가늠해보건데 경상도 집안인 아빠의 입맛에 맞춘 김치는 간과 양념이 셌고 서울출신의 엄마가 찌개로 끓여내기엔 상당히 고난이도였던 것 같다. 지금도 소를 털어낸 김치국은 끓여주시지만 식당에서 파는 ‘내추럴 본 김치찌개’를 집에서 먹어본 기억은 전무하다. 이 기사를 쓰기위해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얼마나 많이 끓여줬는데 그런 소릴 하냐?”는 타박이 돌아왔다. 그렇다. 집밥의 추억을 자극하는 음식은 김치찌개를 표방한 묵은지 김치찜과 신김치국이지 ‘김치찌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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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스틸컷. (사진제공=싸이더스FNH)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오동구(류덕환)는 여자를 꿈꾸는 뚱보 소년이다. 육중한 몸매를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팝송 ‘라이크 어 버진’을 간드러지게 부르는 동구는 완벽한 여자가 되기 위한 성전환 수술비가 필요하다. 가진 거라곤 타고난 엄청난 힘 뿐인 그는 씨름대회에서 우승하면 장학금 5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돈나가 되기 위해 천하장사가 돼야 하는 동구는 생애 처음으로 샅바를 잡기로 한다.

씨름에 대해 1도 모르지만 동구의 파워는 역시나 남다르다. 자신 앞에서 상의 탈의는 기본으로 각자의 맷집자랑에 나서는 씨름부 선배들을 피해 동구는 항상 다른 곳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다들 동구의 예민함을 비웃지만 사실 그는 또래 이상의 성숙함을 지닌 인물이다. 막노동을 전전하는 전직 권투부 출신의 아버지(김윤석)는 자식을 버리고 나간 엄마(이상아)를 증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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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스틸컷. (사진제공=싸이더스FNH)

욱하는 성질로 인해 다니는 회사 사장까지 패 버릴 정도인 아버지를 대신해 합의금을 마련하는 등 일찌감치 철이 들었다. 그런 아빠 몰래 엄마가 두고 간 립스틱을 바르고 거울을 보는 찰나 하필이면 툭하면 자식을 패는 아빠가 그 모습을 봐버렸다. 죽도록 맞을 거라 생각에 얼어붙었지만 이상하게 아빠는 미쳐 못 봤다는듯 무심히 문을 닫는다.

‘천하장사 마돈나’에 나오는 김치찌개는 약 1초 정도다. 남편의 주폭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온 엄마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살 수 있어 행복하다”며 자신을 찾아온 동구에게 김치찌개를 끓여준다. 남편의 주폭에 시달리는 모습보다 비록 자식과는 헤어졌지만 당당하고 독립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엄마는 누구보다 동구가 가진 비밀을 이해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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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스틸컷. (사진제공=싸이더스FNH)

“남에게 예뻐보이고 좋아보이는 건 아무 것도 아니야. 동구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멋있게 사는 게 그런 게 진짜야. 앞으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외로울지 몰라. 그래도 괜찮아?”

집나간 엄마가 끓여준 추억의 김치찌개를 한술 뜨고 목이 메어 더 이상 먹지 못하던 동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래. 그럼 엄마가 지지해 줄게”라며 자식의 선택을 존중해 줄 때 관객들의 눈시울은 그야말로 폭포로 변했다. 힘들 때 언제든 가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에게 김치찌개는 소울푸드에 가깝다. 삼겹살도 있고 냉면도 있지만 김치찌개는 해외에 나가서도 굳이 찾게되는 한국식당과도 같다. 적어도 3개월 이상 위에 들어오지 않으면 금단 증상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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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스틸컷. (사진제공=싸이더스FNH)

신혼시절을 보낸 경리단에는 지금은 없어진 김치찌개 전문점이 있었다. 반찬은 조미김과 무말랭이무침이 전부. ‘스댕’ 밥그릇에 가득 담겨 나오는 쌀밥에 한소끔 끓여 나오는 김치찌개가 다 였다. 거기엔 버섯이나 두부 등의 토핑은 전혀 없다. 참치나 두툼한 돼지고기가 담긴 여러 가지 버전은 메뉴판에 아예 없었다. 오직 ‘김치찌개’ 한 가지에 계란말이 정도가 추가 메뉴로 가능했다.

하지만 이 심플한 메뉴가 모든 걸 평정했다. 김치를 볶은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생김치도 아닌데 국물 맛이 기가 막혔다. 일주일에 7번만 와도 출근도장을 찍는 셈인데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던 시기라 주 10회를 방문하는 주도 허다했다. 그렇게 사장님과 친해져 국물의 비결을 묻자 의외의 꿀팁을 알려줬다. 그는 “집에서 끓이려면 소를 다 털고 끓여야 하고 국물은 고춧가루로만. 마지막에 식초 한 스푼을 넣으라”는 것. 

요리 좀 하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소를 다 털면 김치의 매운맛이 빠지고 고춧가루 없는 희어 멀건 국이 된다. 김치찌개 다운 ‘빨간 맛’을 위해서라면 고춧가루를 넣어야 하는데 이 황금 비율은 본인만의 취향에 달렸다. 식초 한 숟가락이 무슨 국물 맛을 좌우하겠냐고 무시하면 안된다. 넣고 안 넣고의 차이가 어마무시하니. 


◆김치찌개의 간극을 메워주는 계란말이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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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계란말이 만큼은 ‘장비발’이 8할이다.
② 시중에 나오는 모든 계란말이 팬과 뒤집개를 한번이라도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평범한 프라이팬에서는 나올 수 없는 궁극의 두툼함이 있다.
③ 대부분이 각종 전이나 계란 프라이를 뒤집는 뒤집개를 계란말이에 쓸 수 있다고 착각한다.
④ 계란말이 팬은 네모, 뒤집기는 나무로 된 짧은 뒤집개 두 개를 추천한다.
⑤ 장비가 갖춰졌다면 계란양념은 냉파(냉장고 파먹기)를 추천한다. 의외로 양배추나 깻잎도 잘 어울린다. 물론 양파와 당근이 없어도 된다.
⑥ 계란말이의 성공요건은 넉넉한 기름이다.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조금 넣으면 바닥에 붙은 갈색 계란지단을 씹게 된다.
⑦ 뭐니 뭐니 해도 계란말이의 화룡정점은 케첩이다. 초딩입맛이라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고 가끔 머스터드를 찍어먹기도 하는데 노란색 계란말이에 같은 계통의 양념을 발라먹고 싶은가? 결국 케첩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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