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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알렉스 카츠 ‘반향’

[문화공작소] 루이비통 대단 미술관이 소장한 알렉스 카츠 6개 작품 만날 수 있는 '반향' 전시,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3월 26일까지
빛의 탐구로 '현재'를 담아낸 알렉스 카츠의 대표작 '반향'을 비롯해 아내의 초상 '에이다2' 그리고 '검은 개울 18' '레드 하우스3' '숲 속의 인물' '산드라2'

입력 2023-01-02 18:00 | 신문게재 2023-01-0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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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카츠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의 알렉스 카츠 전시 ‘반향’ 전경(사진제공=루이 비통 문화재단)

 

그의 나이 벌써 95세다.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해맑으면서도 심오한, 생기 넘치면서도 차분한, 심플하면서도 다채로운 기운, 같은 장소에서도 다른 감정들을 품고 있는 사람들, 단순한 듯한 완성품 아래 고스란히 자리잡은 정교하고도 관조적인 스케치 등은 어쩌면 그 나이 그리고 ‘현재’ 살아 있음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러시아 이민자 부모를 둔 뉴욕 브루클린 태생 미국인으로 경계를 오가는 정체성이 한몫했을 터다. 아버지는 미술과 건축에 조예가 깊었고 어머니는 배우 출신으로 예술친화적인 가정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일찌감치 뉴욕주 드로잉 대회 수상할 정도로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다.

미국 뉴욕 맨하탄 다운타운 이스트빌리지의 명문사립대학 쿠퍼유니온(The Cooper Un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nd Art)과 스코히건 회화·조각 학교(Skowhegan School of Painting and Sculpture)에서 공부하며 카페, 지하철 등에서 작업했다.

뉴욕 타임스퀘어 빌보드 작업(1977)을 비롯해 시카고 할렘 역의 알루미늄 벽화(1984), 최근 뉴욕 지하철 57번가 역의 대형 설치 작품 19점 등 공공 미술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스코히건 학교 재학 중 야외로 나가 직접 보고 재빠르게 그리는 기법들을 교육받으면서 ‘라이프’ 지에서 접한 추상표현주의 작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에 감명받아 “내가 경험으로 얻은 감각들을 어떻게 하면 현대적으로 풀어낼지를 고민하면서” 작가로서의 전환점을 맞는다. 

 

알렉스 카츠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의 알렉스 카츠 전시 ‘반향’ 중 ‘에이다2’(사진=허미선 기자)

그의 이름은 알렉스 카츠(Alex Kats). 여전히 활발하게 작품 활동 중인 95세의 미국 작가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이 소장한 알렉스 카츠 작품 6점이 전시된 ‘반향’(Reflection, 3월 26일까지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는 캔버스 위에 살아 숨 쉬는 빛으로 물든 그의 작품 6점을 만날 수 있다.


지난 2019년 미공개 소장품들로 꾸린 ‘회화에 대한 시선’(A Vision for Painting)에 이은 두 번째 알렉스 카츠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평생을 해온 빛에 대한 연구,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 대한 탐구, 재연의 한계에 대한 고민 등의 궤적 그리고 알렉스 카츠 후반 작업들을 관통하는 주제와 그의 예술관이 스민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중앙에 전원 속에 집이 있는 풍경을 담은 ‘레드 하우스 3’(Red House 3, 2013)와 양쪽으로 펼쳐지는 숲과 나무, 물 등이 마치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뒤에서는 카츠의 아내이지만 관람객들에겐 저마다가 배웅을 받고 싶은 누군가일지도 모를 알루미늄 설치물에 전시된 컷아웃 초상화 ‘에이다2’(Ada2, 2013)가 배치돼 있다.

전시명과 같은 ‘반향’(2018)은 수면에 비친 초목과 반사된 햇빛들이 캔버스를 가득 채운 대형작품이다. 3미터 남짓의 정사각형 캔버스에 작업된 이 작품은 카츠가 중시했던 ‘현재’를 빛으로 포착하는 ‘반향’ 연작 중 최근작이다. 현재 시점을 지각하는 그대로 그리기 위해 과거의 문화담론, 전통, 고정관념 등을 타파해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자 했던 작가의 노력이 고스란히 투영된 작품이다.

카츠는 성 어거스틴의 ‘지나간 것은 과거일 뿐이다. 2000년 전이나 30분 전이나 똑같다.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현재일 뿐이다’이라는 개념에 공감하면서 빛에 주목했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속성을 가진 빛이 물 위에 비치거나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풍경을 담은 ‘반향’은 그가 중시하는 ‘현재’가 투영된 연작이다.

초록 지면과 검은 수면이 수평을 이루며 잔잔한 물결을 표현해 안정감을 주면서도 빛으로 투영된 검은 나뭇가지가 깊이를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자아내기도 하는 폭 3미터짜리 대형작품 ‘검은 개울 18’(Black Brook 18, 2014) 그리고 나무들 사이에 이파리와 빛들을 표현한 붓질로 가득해 생동감이 느껴지는 숲의 풍경을 담은 ‘숲속의 인물’(Figure in the Woods, 2016)이 마주보고 있기도 하다. 

 

알렉스 카츠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의 알렉스 카츠 전시 ‘반향’ 중 ‘산드라2’(왼쪽)와 ‘검은 개울 18’(사진제공=루이 비통 문화재단)

 

야경, 새벽 풍경에 이은 ‘검은 개울’ 시리즈는 보이는 그대로를 담은 작품들로 “큰 스케일을 적용해 관람객이 작품 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회화를 추구하는 출발점”이다. 더불어 그림 속 개울과 풍경은 현재 작가가 뉴욕과 번갈아 머물고 있는 미국 메인 주에 실재하는 것으로 “큰 스케일의 잔잔한 검은 수면과 빠른 붓질로 만들어낸 이 시리즈는 카츠의 많은 습작과 스터디를 통해 완성된 대표작들”이다. 이번에 전시된 18번째 검은 개울은 수면 위 균일한 형태의 잎사귀, 왜곡이 거의 없는 흰 나뭇가지 등으로 표현한 잔잔한 물의 풍경이다.

‘숲속의 인물’은 3.6미터 높이의 대형작품으로 화면을 메운 나무 밑둥들, 뒤를 돌아 서 있는 인물, 위쪽에 배치된 지평선이 시선을 위로 끌어당겨 원근감을 표현한 작품이다. 스코이건 재학 시절 숲과 나무를 소재로 다양한 그림을 그렸던 카츠의 예술적 근원이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자연을 신속한 붓질로 열린 개념의 에너지가 넘치는 공간들로 표현한 카츠는 20대 초반 재즈에 심취했었다. 회화의 영감 역시 개방적이고 즉흥적인 재즈의 속성에서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숲속의 인물’에 뒷모습으로 존재하는 인물에 대해 ‘반향’ 관계자는 “인물이 보는 곳으로 관람객들을 유도하고 풍경 속 지점에 몰입하도록 돕는다”며 “이 작품은 후에 뉴욕의 공공미술 작품으로도 설치되는데 카츠는 이 인물이 누구도 지칭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어 “카츠가 대형 풍경화를 통해 관람객이 풍경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추구했다면 ‘숲속의 인물’로는 보편적인 인물이 풍경 밖으로 나와 풍경과 하나되는 걸 실현시켰다”고 부연했다.

 

알렉스 카츠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의 알렉스 카츠 전시 ‘반향’ 중 ‘숙 속의 인물’(왼쪽)과 ‘반향’(사진제공=루이 비통 문화재단)

 

풍경 속으로 끌어들이고 풍경 밖에서 물아일체를 이루는 작품들을 따라 걸어들어가면 보이는 ‘레드 하우스 3’ 역시 빛에 대한 탐구 과정에 있다. 1954년부터 매해 여름을 보내는 미국 메인 주의 별장 옐로 하우스에서 관찰한 햇볕의 기록이다.

그곳의 햇볕에 대해 카츠는 “일조량이 풍부하고 조도가 어두워서 자신만의 감각을 추구할 수 있었다” 서술하기도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 속에서 자연에 둘러싸인 집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풍경 중 하나인 ‘레드 하우스 3’는 넓은 붓질로 단순화된 형태, 검은 아우트라인 등으로 표현한 지극히 평면적인 작품이다.

‘반향’ 관계자는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카츠가 ‘빛 속에서 색을 어떻게 보았는가’다”라며 “주된 색채로는 숲 초록색, 벽의 빨간색, 들판의 노란색 그리고 지붕과 창문, 나무기둥 등의 하얀 빛이 있다. 이는 특정 시간에 보이는 순간의 색상을 보이는 그대로 그린 것으로 빛을 통해 ‘현재’를 중시한 카츠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카츠는 “빛은 매우 빠르며 자연의 색채는 빛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화한다. 또한 빛은 순식간이며 만약 당신이 빛을 온전히 경험한다면 온전한 현재 시점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알렉스 카츠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의 알렉스 카츠 전시 ‘반향’ 전경(사진제공=루이 비통 문화재단)

 

빛에 대한 카츠의 철학은 1986년작 ‘산드라2’에도 깃들어 있다. 1950년대부터 아내 에이다를 비롯한 주변인물들을 그린 초상화는 풍경화와 더불어 카츠가 평생을 집중한 장르이기도 하다. “사람의 모습보다 더 신비로운 것은 없다. 같은 사람이더라도 매번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 카츠는 스크린, 컷아웃 등의 형식을 이용해 전통회화와는 다른 자신만의 구상회화를 구현하곤 했는데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산드라2’와 ‘에이다2’가 그렇다.

‘에이다2’는 캔버스에서 벗어나 공간과 어우러진 컷아웃 인물화이며 ‘산드라2’는 정적인 인물 위로 강하게 떨어져 내리는 빛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된다. 정적인 인물과 다이내믹한 빛의 표현, 사실적으로 그려진 여성과 추상적인 배경 등의 괴리 보다는 조화로움이 강조되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반향’ 전시의 규모는 작다. 그 작품 수 역시 적다. 하지만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대한 탐구이자 재연의 한계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던 카츠가 이끌고 그가 평생을 그린 뮤즈였던 아내 에이다가 배웅하는 듯한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지금’에 서 있는 ‘나’를 만나는 의미심장한 여정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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