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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 ‘10년 주기설’ 깬 정치 신인…윤석열은 누구

입력 2022-03-10 08:38 | 신문게재 2022-03-1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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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국민으힘 윤석열 후보. 사진은 3월 7일 경기 시흥 삼미시장입구 유세 현장 (윤석열 캠프)

 

대한민국 제 20대 대통령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다. 국회의원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소위 ‘정치 신인’인 윤 당선인은 스스로 ‘신인’이라고 자임해 왔다. 기존 정치 문법인 지역주의와 특정 정치세력의 도움을 받고 당선되면 은혜를 갚아야 하는 보은 등에서 자유롭고 정치개혁을 확실하게 할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 나아가 그의 당선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속설처럼 만연했던 정권교체 ‘10주년 주기설’을 깨뜨린 결과를 낳는 등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인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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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검사 윤석열, 실세 잡는 칼잡이로

윤 당선인은 지난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태어났으며,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충남 논산, 외가는 강원 강릉시 출신이다. 이로 인해 당선인은 ‘충청의 아들’이자 ‘강원의 외손자’라고 자임하며 “제게는 지역주의라는 거 자체가 없다”고 공언해 왔다.

서울 충암고를 졸업한 당선인은 1979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다음해인1980년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열린 교내 모의재판에서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은 ‘강골 검사’로서의 면모가 드러난 일화로 유명하다.

이러한 윤 당선인도 ‘9수’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늦깎이 검사로 데뷔했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박희원 경찰청 정보국장(치안감), 노무현 정부에선 안희정·강금원 등 실제로 꼽히는 인물들을 수사하며 ‘칼잡이’로서 명성을 쌓았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검사

이후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요직을 두루 걸친 윤 당선인이 대중의 관심은 물론 정치권의 이목을 받게 된 것은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되면서다. 특히 국회 국정감사에서 상부의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정파를 떠나 원칙에 기반한 수사를 하겠다는 당선인의 신념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항명 파동’으로 정권에 밉보인 그는 그해 11월 정직 1개월 징계를 받고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된 후 4년여간 유배지를 떠돌았다. 사실상 검찰을 떠나라는 식의 보복성 인사였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나간 모습은 ‘강골 검사’ 이미지를 대중에 각인시킨 결과로 이어졌다.



‘적폐 청산’ 칼잡이, 반문의 상징으로

윤 당선인에게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은 특수통 검사로서 화려하게 부활한 해이다. 그해 12월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으로 등판한 그는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첫 서울중앙지검장과 2019년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소위 ‘촛불 혁명’의 공신이자,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중형을 끌어낸 문재인 정부의 칼잡이였다.

그는 ‘칼잡이’라는 평가에도 좌우를 가리지 않고 법치와 원칙에 맞게 수사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였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 그대로 그는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입시비리 의혹, 사모펀드 논란 등 수사에 착수해 배우자 정경심 씨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하면서 정부여당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2019년 11월 유재수 전 부산광역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 의혹,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 살아있는 권력 청와대를 향한 칼끝에 정부여당과 당선인의 갈등이 본격화됐다. 조 전 장관 후임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당선인에 대한 견제가 시작된 것도 이 시점이다. 추 전 장관은 검찰 인사와 수사지휘권 발동, 징계권 행사 등으로 당선인을 압박했고, 1년여 동안 지속된 소위 ‘추·윤 갈등’에 당선인은 2021년 3월 임기 4개월을 남기고 전격 사퇴했다.



정치 신인, 제1야당 대선후보로

차기 대선후보에 대한 뚜렷한 인물을 찾지 못한 야권 입장에선 반문(문재인)의 상징으로 떠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공식적인 정치 선언 전부터 차기 대권 후보 적합도 1위를 달리며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한 당선인은 118일간 잠행 끝에 지난해 6월 29일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다만 본인을 포함한 가족의 의혹이 정리된 소위 ‘윤석열 X파일’이 정국의 모든 이슈를 삼키는 블랙홀로 부상하면서, 정치 입문 첫걸음부터 도덕성 리크스가 부각되는 위기도 겪었다. 본격적으로 ‘윤석열 리스크’가 정점을 찍은 것은 지난해 7월 말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하면서다.

기습 입당으로 시작된 ‘당대표 패싱’ 논란과 소위 ‘본부장’(본인·부인·장모) 의혹이 대두됐고, 여기에 ‘정치 프로’인 쟁쟁한 경쟁주자들의 견제, 2030세대를 중심으로 압도적이던 당선인의 지지율을 바짝 쫓은 홍준표 의원의 저력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부정식품, 후쿠시마 원전, 전두환 옹호 발언 등 실언 논란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대세론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만연했다. 그러나 윤 당선인은 위기에 강하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악재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실언을 줄이는 등 리스크 관리에 열을 올렸고, 양강 구도를 굳힌 홍 의원에 맞서 대세론을 지켜낸 끝에 제1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당이 당선인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대선 체제로 전환되면서도 여러 우여곡절이 돌출됐다. 이준석 대표와의 불화설이 계속 불거졌으며,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영입에는 난항을 겪었다. 그러나 위기에 강한 그의 저력은 이 대표와의 갈등 봉합, 경쟁 주자였던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과의 ‘원팀 선언’을 이끌어 냈다. 특히 ‘압도적인’ 정권교체를 위해 갈등의 골이 깊어진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단판 회동을 통해 단일화를 이끌어 낸 것은 ‘통합의 정치’를 내세우는 당선인의 신념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주훈 기자 shadedoll@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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