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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별 기자의 K엔터+] 간첩·안기부 미화? ‘설강화’, 군부정권 ‘북풍공작’ 겨냥했다

[K드라마 읽기] JTBC '설강화' 시작부터 논란
-민주화 운동 폄훼보다 군부정권 북풍공작 묘사
-지나친 시청자 검열, K콘텐츠 자율성 해쳐

입력 2021-12-2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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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설강화’의 한 장면 (사진제공=JTBC)

 

‘조은별 기자의 K엔터+’는 시시콜콜한 연예계 현상부터 K팝, K드라마, K예능 등 다양한 ‘K 콘텐츠’를 엔터테인먼트 전문 기자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코너입니다.

JTBC 드라마 ‘설강화’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습니다. 운동권 오빠를 둔 여주인공이 남파간첩을 돕고, 간첩을 쫓는 안기부 요원은 신념에 찬 인물로 그려져 민주화 운동 희생자 유족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19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설강화’ 방송 중지를 요청하는 청원 글이 게시돼 30만 동의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민원도 500건 넘게 접수됐습니다. 시민단체 ‘세계시민선언(공동대표 이설아, 박도형)’은 오는 22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설강화’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설강화’에 협찬하는 기업의 불매운동도 거셉니다. 자칫 올 초 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려 폐지된 SBS ‘조선구마사’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과연 ‘설강화’는 일부 누리꾼들과 민주화 운동 희생자 유족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간첩과 안기부를 미화하고 민주화 운동을 폄훼했을까요? 1, 2회를 본 소감은 ‘그렇지 않다’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어쩔 수 없이 군부정권의 손발이 된 청춘들, 그 와중에 피어나는 사랑을 그린 멜로드라마에 가까웠습니다.

 

◇간첩·안기부 미화? 군부정권 ‘북풍공작’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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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설강화’의 한 장면 (사진제공=JTBC)

‘설강화’를 둘러싼 논란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운동권 오빠를 둔 여주인공이 남파간첩이 민주화운동을 주도한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안기부요원을 ‘강직한 원칙주의자’로 묘사하며 미화했다는 것입니다.


우선 첫 번째 논란은 사실과 다릅니다. 1, 2회에서는 재독교포 출신 대학원생인 줄 알았던 임수호(정해인)가 남파간첩인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가 안기부의 추격을 피해 부상당한 채로 여주인공 은영로(지수)가 기거하는 호수여대 기숙사로 숨어 들어가며 극의 멜로 라인이 물살을 탑니다.

방송관계자들에 따르면 향후 전개에 있어서도 민주화운동은 시대적 상황을 묘사하는 배경일 뿐, 수호는 학생시위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전언입니다. 오히려 후반부로 갈수록 애절한 멜로드라마로 깊이를 더할 예정입니다.

안기부 요원 미화 논란 역시 오해의 소지가 큽니다. 장승조가 분한 이강무에 대한 캐릭터 설명에는 “간첩을 잡는 게 아니라 ‘만드는’ 안기부의 행태에 환멸을 느껴 대북 공작을 전담하는 해외부서를 자원했다”고 나옵니다.

오히려 ‘설강화’가 건드린 예민한 지점은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군부정권이 정권 유지를 위해 북풍 공작을 벌인다는 설정입니다. 이는 박성웅이 분한 여당사무총장 남태일의 2회 대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선이 채 3주도 안 남았어, 우린 돈만 대고 북에서 다 공작하기로 했는데! 야당 대선 후보 핵심 브레인인 한이섭일 북으로 보내 사진 좀 찍고, 북에서 선거자금 받은 기록 좀 만들고, 언론에 쫙 뿌리면, 우리 후보가 대통령이 될 텐데, 다 된 밥에 똥을 뿌려? 국민들이 대통령을 직접 뽑겠다고 저 지랄들인데?” (JTBC 드라마 ‘설강화’ 2회의 남태일 대사)

이외에도 ‘설강화’에 중국 자본이 투입됐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JTBC 측은 “드라마 제작사가 중국 투자를 받은 것은 맞지만 ‘설강화’ 제작 이후로 ‘설강화’에는 중국자본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 드라마 보지도 않았는데도...논란이 논란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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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설강화’의 한 장면 (사진제공=JTBC)

드라마를 2회까지 ‘제대로’ 봤다면 논란이 이토록 크게 번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극 중 은창수(허준호) 안기부장이 “탑 시크릿이라 안국장(안경희 안기부 대공수사국장)도 모르게 일을 추진하다 보니”라는 대사로 유추해 보면 안기부 직원인 이강무는 정권의 ‘공작’을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됩니다. 즉 극의 주인공들은 아픈 현대사를 살아낸 청춘들로 묘사됩니다.


문제는 지금의 논란이 드라마를 보지 않은 이들의 입에서 비롯됐다는 것입니다. 이현주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았다며 “(안기부는) 당시 많은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했다. (드라마는) 원래 간첩이 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피해자가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고 안기부의 폭력성에 합리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두환이 죽은 지 며칠 되지 않았다. 민주주의 투쟁 역사에 대한 일부 정치권, 야권의 폄하와 왜곡 시도는 대선이 다가올수록 더해질 것이다”라며 “역사적 사실들은 드라마를 위한 극적 장치로 소모될 수 없다. 설강화의 인물 설정과 역사 왜곡이 더욱 우려스러운 이유”라고 적었습니다.

일각에서는 간첩인 수호가 쫓기는 장면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며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것을 문제 삼습니다. “간첩? 짭새들 맨날 하는 소리야. 걸핏하면 우리 빨갱이로 모는 것 몰라”라며 운동권 학생들을 무작정 간첩으로 모는 시대적 배경을 묘사한 대사와 장면도 불편하다는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이런 관점이라면 드라마 역사상 처음으로 5.18 민주화운동을 그린 ‘모래시계’같은 작품은 아예 제작되지 못할지 모릅니다.


◇수동적 여성 캐릭터 옥에 티...지나친 시청자 검열 K콘텐츠 자율성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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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설강화’의 한 장면 (사진제공=JTBC)

 

그간 간첩이나 북한군을 그린 작품은 많았습니다. 영화 ‘공조’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같은 작품이 대표적이죠. 그러나 이토록 뜨거운 논란을 빚은 것은 ‘설강화’가 처음입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예민한 시대적 배경을 섬세하지 못하게 다룬 제작진의 잘못이 크다”고 진단했습니다. 취재에 따르면 제작진은 ‘조선구마사’의 불똥이 ‘설강화’로 튀기 전 집필해놓은 1~8부는 수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 평론가의 말처럼 조현탁PD와 유현미 작가는 2018년 방송된 ‘SKY캐슬’의 성공에 취해 보다 많은 대중의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TV드라마에서 너무 큰 모험을 감행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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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설강화’의 한 장면 (사진제공=JTBC)

문제가 생기면 시청자들을 해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적절한 때가 있습니다. 지난 8월 한국PD연합회와 방송작가협회 주최로 열린 ‘역사적 진실과 콘텐츠의 상상력’ 토론회에서윤창범KBS PD는 “(시청자들의) 잘못된 지적에 대해서는 창작자들이 왜곡을 바로잡고 논쟁하는 데 힘써야 했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제작진과 JTBC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을 피해가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지적받아야 할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지나치게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와 기괴하게 묘사된 여대 기숙사 배경입니다. 

 

지수가 연기한 은영로는 학생운동을 하다 군에 간 친 오빠를 의존하는 여대생으로 그려집니다. 여대 기숙사는 마치 중세의 서양 궁전처럼 묘사됐고 기숙사에 뛰어든 남학생을 목욕탕에 숨겨주면서 관음증을 부추깁니다. 설상가상 여대 기숙사에서 남학생을 숨긴다는 설정은 은희경 작가가 집필한 소설 ‘빛의 과거’(2019)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비판은 지나칩니다. 만약 ‘설강화’가 ‘조선구마사’ 전철을 밟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드라마 제작의 하위 구조에 돌아갑니다. 이를테면 드라마 회차가 방영되어야 출연료가 입금되는 단역배우들이 그 좋은 예죠.

최근 독일 유력 일간지 중 하나인 쥐트도이체차이퉁(Suddeutsche Zeitung)은 ‘한국은 세계적인 창의 강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K콘텐츠의 우수성을 언급하며 “군부정권인 태국이 제작물을 속속 검열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90년대 말 검열을 완전히 폐지해 창의적인 소프트파워 발전을 이뤘다”고 분석했습니다. 비록 정권 차원의 검열은 사라졌지만 ‘시청자들의 지나친 검열’이 계속된다면 한국은 현대사를 그린 창작물을 더 이상 내놓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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