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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무죄인가 유죄인가 “역사상 가장 논쟁적 사형”

입력 2016-07-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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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8일, 사형당한 故최능진 선생이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여기, 영국 역사상 가장 논쟁이 되었던 사형수가 있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1961년 8월 22일, 영국 버킹엄셔 도니리치. 당시 22살이었던 발레리 스토리와 마이클 그렉스텐 커플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복면을 쓴 강도가 그들을 덮쳤습니다. 강도는 그렉스텐을 죽였고, 여자친구 발레리는 강간한 뒤 장전된 총알 6발을 모두 쏘고도 모자라 탄창을 갈고 1발을 더 쐈습니다.

기적적으로 그녀는 살아남았습니다. 하반신이 마비되었지만 목숨은 건졌죠. 범인은 누구였을까요?

두 달 동안 런던의 경찰이 총 동원되어 그를 쫓았습니다. 유력 용의자가 체포됐습니다. 25살 제임스 핸리티. 그가 범인인지 증명하기 위해서는 발레리의 증언이 필요했습니다. 그녀는 어렵게 그 날의 기억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안해?”라는 범인의 말을 기억해냈죠.

경찰은 핸리티에게 같은 말을 시켜 녹음해 발레리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발레리의 대답은 “범인이 확실하다” 였습니다. 곧바로, 핸리티는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사형선고는 ‘발레리의 증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당시 DNA검사로 유일하게 알 수 있었던 혈액형 O형이 용의자와 일치한다고 발표됐지만 당시 영국인의 40%가 O형이었습니다. 범행동기도 부족했고 핸리티 역시 무죄를 줄곧 주장했다고 알려지기 시작했죠.

“재수사 해라!” 국민은 ‘졸속재판’이라고 비난하며 재수사를 요청했습니다. ‘A6 변호 위원회’가 설립됐고, 존 레논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후원금도 모아졌죠. 무려 9만여명이 탄원서에 서명했습니다.

“판정에 번복은 없다” 결국 선고 6주 만에 핸리티는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사형이 집행된 후 논란은 더 거세졌습니다. 저널리스트 폴풋은 ‘누가 핸리티를 죽였나’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명예회복을 위한 요청이 일어나자 정부도 승복하고, 1999년, 피해자 속옷에 남아있는 DNA와 무덤 속에 있는 핸리티 DNA를 비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죠.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대조결과, DNA 일치” 범인은 핸리티가 맞았습니다.

사형선고에 대한 논란은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전쟁 중 군법회의에서 이적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총살당한 ‘최능진 선생’이 재심을 거쳐 무죄를 확정 받았습니다. 사형당한 지 65년만인 2016년에서야.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서울에서 평화운동을 벌이다 친북 활동가로 몰렸고, 국방경비법 32조 이적 혐의로 기소되어 사형된 거죠.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최씨가 이승만 정권에 맞섰다가 잘못된 판결로 부당하게 총살당했다고 진실규명을 결정했습니다. 이후 최씨 유족은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이 받아들여 지난해 개시된 거죠.

한국의 경우, 김영삼 정권 말기인 1997년 12월 30일 지존파 등 23명에게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후 20여 년 간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인간이 하는 일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지만, 사형제도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대한민국에서 사형선고만큼은 ‘제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박민지 기자 pmj@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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