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사회 > 사회일반

[카드뉴스] 단단해 지기까지, 세종의 삶은 피곤했습니다.

입력 2016-04-24 07:0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세종1


세종2


세종3


세종4


세종5


세종6


세종8


세종9


세종10


조선시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왕으로 평가받는 세종대왕. 한글 창제, 천문학 발전, 자격루개발, 아악 정리 등 그의 업적은 후세에도 칭송받고 있습니다.

*자격루 자동으로 시보를 알려주는 장치가 되어 있는 물시계

화려할 것만 같은 왕의 일생, 그 중 세종대왕의 인생은 더욱이 밝았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세종대왕의 일생이 평탄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세종은 태종의 세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즉 세자는 첫째아들인 양녕대군의 자리였지만 태조는 세종을 세자에 책봉했습니다.

태종의 고심은 시작됐습니다. 세종이 보위에 오르면 세종의 부인인 소헌왕후의 아버지, 즉 세종의 장인어른인 ‘심온’이 권력을 잡을까 두려웠던 거죠.

세종이 즉위하자 태종은 일을 꾸몄습니다. 일단 심온을 영의정에 올려 명나라 사절단으로 중책을 맡겨 보냈습니다. 그리고 ‘반란’을 조작해 심온을 죽였죠. 심온의 처(세종의 장모)와 딸들(세종의 처제)을 노비로 삼기도 했죠.

모두 아들인 세종을 위한 일이었다고는 하지만 소헌왕후를 아꼈던 세종은 모든 일을 본인 탓으로 여겨 한동안 힘들어했다고 전해지집니다.

불행은 또 있습니다. 최고의 금슬을 자랑하듯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는 8남 2녀의 자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소공주, 광평대군, 평원대군이 세종보다 먼저 운명을 달리했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세종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살아남은 자식 중 문종과 세종은 각별했습니다. 세종이 왕위에서 자리 잡았을 무렵, 세종은 세자 책봉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첫째아들 문종을 세자로 점찍고 교육을 시켰죠. 문종은 성품이 좋고 학문도 뛰어나 세자로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의 속을 한 번도 썩인 적 없던 문종은 ‘결혼’에 난항을 겪었는데요. 첫째부인은 민간요법으로 문종의 사랑을 얻으려고 한 것이 나중에 발각되어 폐비를 당했고, 둘째부인은 동성과의 열애문제로 폐비됐습니다. 셋째부인 현덕왕후는 단종을 출산하고 3일 만에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문종은 부인 3명을, 세종은 며느리 3명을 모두 잃은 겁니다.

문종이 왕에 즉위한 후에도 세종의 아들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문종이 왕이 됐지만 세종의 둘째아들인 수양대군의 권력이 강했기 때문이죠. 문종이 승하하고 단종이 즉위한 지 1년 만에 계유정란이 일어나는데요.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는 비극적인 사건이 생겼죠.

세종은 건강도 좋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책만 읽고 운동을 하지 않아 신하가 책을 제발 그만 읽으라는 당부도 할 정도였다고 하죠. 세종대왕은 어릴 적부터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직 방에 앉아 책만 읽었죠. 뿐만 아니라 세종은 육식을 즐겼습니다. 채소보다는 고기를 좋아해 살이 많이 찐 체형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오죽했으면 태종이 붕어할 때 유언으로 “세종에게 고기를 멀리하고 운동을 하도록 도와라”라고 했을까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손꼽히는 세종. 내면에 많은 아픔을 겪었지만 이 모든 역경을 통해 단단해진 것이 아닐까요?

박민지 기자 pmj@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