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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만덕 할망’ 서번트 리더십의 표상이 되다

입력 2016-02-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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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 할망’ 그녀의 고향 제주도에서는 그녀를 이렇게 부른다. 

 

제주도에는 ‘김만덕 기념관’이 생겼을 정도. 서번트 리더십의 표상으로 불리는 그녀는 누구일까? (※서번트 리더십: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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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은 조선 정조 시절 유명인사다. 12살에 기생 몸종으로 들어갔다가 기생집 수양딸이 된 후 기생으로 유명세를 탔다.

조선 최고 기생 타이틀을 내려놓고 그녀는 23살에 기녀 신분에서 벗어나 객주집을 차린다.

그 때부터 그녀의 ‘사업’이 시작됐다. 객주집을 하면서 배운 유통·상품 지식으로 大상인이 된 것. 그녀가 제주도에 살고 있다는 지리적 강점을 이용했다. 제주 특산물을 육지에 팔았고, 기생시절 터득한 감각으로 양반층 부녀자들에게는 옷감·장신구·화장품 등을 공급했다.

떼돈을 벌었지만 그녀는 늘 가난했다. 가난한 사람과 노약자들을 위해 재산을 썼기 때문이다. 특히 1792년 제주에 지독한 흉년이 왔을 때 그녀는 더 빛났다.

당시 조정 구휼미마저 풍랑에 침몰해 제주도는 생지옥이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1천금을 내놨다. 남은 돈으로는 육지에서 식량을 사와 나눠줬다.

그녀의 소문은 정조의 귀까지 들어갔고 정조는 사람을 보내 만덕의 소원을 물었다. 만덕은 “궁궐에 가보고 싶다”고 답했다.

당시 제주도 여자는 육지에 나가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있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육지에 있는 궁궐에 가는 것은 엄연히 ‘탈법’이었다.

정조는 그녀의 소원을 들어줬고 여자로 최고 명예직까지 하사했다. 그녀는 오로지 ‘사람을 섬기는 마음’으로 남본주의 조선시대에서 제주에서 궐까지 입성한 것이다.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74세에 세상을 떠났다. 물론 남은 재산도 가난한 이들에게 다 나눠줬다.

추사 김정희는 그녀를 그리며 편액을 바쳤다. ‘은광연세恩光衍世’(은혜의 빛이 세상에 퍼지다)

여자의 몸으로 임금의 수호를 받으며 궁궐과 금강산을 오간 ‘만덕 할망’ 기생 신분으로 그 한계를 뛰어넘은 그녀의 호기가 새삼 대단하다.

‘사람을 섬기며 존경을 얻은’ 그녀가 바로 오늘날 서번트 리더십의 표상 아닐까.

박민지 기자 pmj@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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