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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져도 일어섰다… 밀라노 런웨이에 섰다

[인터뷰] 한국 첫 밀라노 진출 모델 김기범

입력 2014-10-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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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701010011083모델 김기범의 버커루 화보.(사진제공=김기범)

 

 

세계 모델들이 꿈꾸는 무대는 밀라노 컬렉션이다. 그 무대에 서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그 곳에서 동양인 모델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느 날 밀라노 컬렉션에 대한민국 모델 김기범이 등장한다. 새로운 역사를 만든 이 사건은 한국을 넘어 해외를 직접 누비며 도전한 결과였다. 화려한 조명, 비트가 빠른 음악. 유명 디자이너의 멋진 옷을 입고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워킹 하는 패션쇼의 모델들. 그 이면에는 피나는 노력들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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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도전으로 천직을 만나다

1994년 고등학생이었던 김씨는 친구들을 따라 부산에서 열리는 모델 콘테스트에 우연히 참가하며 모델의 세계로 들어선다. 콘테스트에서 상을 타며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부산에서 모델라인 38기로 입문해 정식으로 모델교육을 받는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패션쇼 무대에 서는 꿈을 키우고 있던 중 앙드레 김 쇼로 데뷔한다. 입문한지 2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당시 첫 무대는 재미 있었던 기억 밖에 없었다”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모델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제대로 된 도전이 시작됐다. 하나씩 단계를 밟으며 서울컬렉션, 뉴웨이브 인 서울, 논노패션, 이랜드 쇼 등 굵직굵직한 무대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2002년 군대 제대 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울컬렉션에서 송지오, 장광효, 최범석, 이상봉 등 유명 디자이너 쇼, 구찌 프라다 휴고보스 등 명품쇼의 러브콜을 받으며 한국 톱모델의 입지를 굳힌다.

모델로서 그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서보고 싶은 쇼가 없을 정도로 바쁘게 활동했습니다.”

모델 김기범에게는 더 큰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또 다른 도전이 필요했다. 

 

 


◇한국 모델 최초로 해외에 진출하다

2005년 2월 모델 김기범에게는 추운 2월이 아닌 따뜻한 2월이었다. 홍콩 에이전시에서 한국을 방문해 단독으로 그를 캐스팅 한 것이다.

“더 큰 시장에서 도전을 해 보자. 나를 다시 테스트 해 보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그는 홍콩으로 떠났다. 당시 홍콩은 전 세계 모델들의 집합소였다.

모델에 대한 문화를 익히고 다양한 인종의 모델 공유를 위해 신인 모델들은 싱가폴과 홍콩에서 먼저 활동을 시작한다. 처음으로 해외에 진출인 김씨에게는 홍콩은 특별한 기회였다.

하지만 부푼 꿈은 잠시, 언어장벽의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어를 익히기 위해 전자사전을 가지고 다니며 낮에는 암기, 저녁에는 클럽을 찾아 외국 친구들과의 잦은 접촉으로 언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그런 노력을 1달 정도 하니 영어가 들렸다고 한다. 그 후에도 언어장벽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홍콩에 도착한 그는 캐스팅 바우처(오디션 기회)로 하루에 5군데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디션 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 낯선 길, 낯선 장소를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지도를 가지고 다니면서 돌아다녔다.

타지에서 어려움을 조금씩 이겨나가고 있던 어느 날 당시 최고 인기였던 리바이스 광고 모델로 발탁이 된다. 그 후 리바이스를 입은 모델 김기범의 모습은 홍콩 시내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남의 나라 도심 한복판에서 내 얼굴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감회도 새롭고 짜릿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희열 때문에 모델을 계속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더 큰 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리바이스 촬영 이후 그는 로베르따 까발리, 돌체앤 가바나 쇼 등 해외 명품 쇼와 촬영이 이어졌다. 그리고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세계 많은 나라 모델들과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꿈은 바로 밀라노 컬렉션에 데뷔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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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모델 최초로 밀라노 컬렉션에

“Sorry, Sorry.” 밀라노에 도착해 이태리에 있는 20개 모델 에이전시를 찾아다니며 포트폴리오를 제출한 결과 그에게 들려온 대답은 모두 미안하다는 얘기였다. 밀라노 진출의 꿈을 갖고 더 많은 경력을 쌓기 위해 그는 홍콩을 시작으로 싱가폴, 도쿄, 상하이 등 2년간 동남아시아를 돌며 그의 존재를 알렸다. 하지만 이태리 밀라노에 도착한 그는 잘나가는 모델 김기범이 아닌 무명, 신인 모델이었다. 당시 2006년 패션 시장은 백인들이 대부분이어서 컬렉션에 흑인과 동양인이 모델로 서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로서는 모델의 해외진출이 생소한 분야여서 처음 에이전시를 알아보는 것부터 무대에 서는 것 까지 모두 김씨의 숙제였다. 달리 방법은 없다. 무조건 부딪혀보자. 포트폴리오를 제출한 20군데 중 제일 처음에 찾아갔던 에이전시를 찾아가 그는 관계자들 설득에 나섰다.

“난 한국과 아시아에서 인정받은 모델이다, 이곳 무대에 서지 못하면 창피해서 돌아갈 수 없다. 제발 도와 달라”며 바닥에 드러눕는 집념을 보였다. 결국 새로운 에이전시 소개로 오디션을 볼 기회를 얻은 그는 결국 2006년 한국인 최초 F/W DENIS SIMACHEV(데니스치마체무), 마리떼 프랑스와 저버, 비비안 웨스트우드 쇼 등에 서게 된다.

그 후 이태리, 파리, 홍콩 등 여러 나라를 홍길동처럼 돌며 일을 했다. 모델 김기범은 “각 나라에서 멋있다는 모델들은 다 왔었다. 그때 무슨 배짱으로 그들과 오디션을 함께 봤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많은 한국 모델들의 우상이 됐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모델들의 해외 진출은 김기범의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먼 미래의 꿈으로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앞으로 중년의 트랜드 시장을 이슈화 시킬 수 있는 모델이 되고 싶다”며 또 다른 도전을 밝혔다. 몇 년 후 조지클루니, 조지 젤라티와 같이 진항 향기가 묻어 나오는 한국의 중년모델 탄생을 기대해 본다.

노은희 기자 selly2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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