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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사나우면서도 애처로운 얼굴들, 그 속에 담긴 내밀하고도 복잡한 오늘!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

[책갈피] 사나우면서도 애처로운 얼굴들, 그 속에 담긴 내밀하고도 복잡한 오늘!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

입력 2024-01-08 18:00 | 신문게재 2024-01-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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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가운데 가장 키가 큰 사람)의 스페인 내전 체험을 담은 ‘카탈로니아 찬가’가 김승욱 번역가 버전으로 출간됐다(사진제공=문예출판사)

 

보수와 진보, 남과 여, 세대, 이념 등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야당 대표가 피습을 당하고 이를 둘러싼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애초의 명분이나 변혁 의지는 사라지고 그저 저마다의 편만 존재하는 시대.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파시즘 등이 어지러이 교차하던 스페인 내전(Guerra Civil Espanola, 에스파냐 공민 전쟁)처럼 저마다가 자신의 말만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누구 하나 들어주는 이들 없이 그저 자신들의 말만을 쏟아낸다.

에릭 아서 블레어 (Eric Arthur Blair), 필명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실제 스페인 내전에 참가해 겪었던 일들을 적은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를 읽고 있자면 어쩔 수 없이 ‘지금’을 떠올리게 된다.

‘중국의 붉은 별’ ‘세계를 뒤흔든 열흘’과 더불어 르포 문학의 3개 걸작으로 평가받는 ‘카탈로니아 찬가’가 ‘듄’ ‘19호실로 간다’ 등의 번역가 김승욱 버전으로 출간됐다. 더불어 작품의 의의와 한계를 아우르는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의 해제 그리고 스페인 내전을 다룬 조지 오웰의 에세이와 시도 추가됐다. 

 

카탈로니아찬가_표지
카탈로니아 찬가|조지 오웰 지음|김승욱 번역(사진제공=문예출판사)

숨을 죽인 채 프롤레타리아(Proletarier)로 가장한 부르주아(Bourgeois)들, 손님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는 노동자들, 극존칭들이 사라진 대화, 모든 계급이 사회적으로 완전히 동등해야한다는 주장, 자본주의의 톱니바퀴가 아닌 사람답게 행동하려 애쓰는 사람들, 추레한 군복과 전쟁 속에서도 담배 한 개비를 청하면 한갑을 굳이 통째로 안기며 발휘되는 특유의 솔직함과 넉넉한 인심….


1936년 2월 총선거에서 마누엘 아사냐 디아스(Manuel Azana Diaz)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내각이 성립되자 이를 반대하는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를 중심으로 한 군부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다. 

 

이 내전을 온몸으로 겪은 뜨거운 참여자이자 그 내부의 병폐와 또 다른 계급의 존재를 목도한 냉철한 관찰자이기도 했던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속 전쟁은 이랬다.

영국인이지만 영국령의 인도에서 태어난 조지 오웰은 그 탄생부터 뜨거운 격정과 냉소를 동시에 장착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영국 남부의 예비학교 세인트 시프리언스(Saint Cyprian‘s)와 명문사립중등학교 이튼 칼리지(Eton College)에서 상류계급과의 심한 차별을 겪었다.

대학진학 대신 선택한 미얀마에서의 경찰관 생활에서 영국 제국주의의 식민지악을 경험했는가 하면 파리 빈민가와 런던 부랑자들 사이에서 극빈생활을 체험하며 ‘파리와 런던의 바닥생활’을 집필하기도 했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식민국민과 제국주의 일원 등의 경계를 오가며 때론 격정적이고 때론 지독히도 냉철한 그의 정체성은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가해 만난 사람들, 결국 패배를 부른 내부갈등 등을 체험하며 적어내려간 ‘카탈로니아 찬가’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스페인 내전을 그 누구보다 격정적으로, 때론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하지만 지독히도 냉철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카탈로니아 찬가’에 담았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등 그 어떤 신념이든 절망이 되고 마는 과정을 담은 ‘카탈로니아 찬가’는 정치권력을 부패하게 하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 족쇄가 돼버린 왜곡된 전체주의를 동물에 빗댄 조지 오웰의 걸작 ‘동물농장’(Animal Farm)의 근간이었다.

솔직함과 사나움의 공존. 사나우면서도 애처로운 얼굴들. 그가 스페인 내전 최전선에서 느꼈을 내밀하고도 복잡한 심정들은 어쩌면 대한민국, 더 나아가 2024년의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것일지도 모른다.

석달째 이어지고 있는 가자지구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진짜 전쟁 뿐 아니다. 이념, 종교, 남녀, 세대, 갑을, 부자와 빈자 등 갈라치기의 횡행, 당파갈등, 만연한 혐오와 폭력, 핵심이 돼야할 명분과 정의를 잃어버린 채 자신만의 이득만을 앞세운 이해관계의 충돌….

수없이 반복돼온 그리고 앞으로도 반복될 역사적 비극과 저마다의 정치 상황은 여전히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이 보다 더한 비극은 그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시대가 반복되면서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조지 오웰이 가졌던 격정과 그 뜨거운 만큼의 냉철함, 저 마다의 주관과 객관의 균형일지도 모른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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