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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이질적인 것들의 낯익은 공존, 7인 7색의 ‘마주한 세계: 풍경의 안팎’

입력 2023-12-01 18:00 | 신문게재 2023-12-0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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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한 세계 풍경의 안팎
금호미술관 기획전 ‘마주한 세계: 풍경의 안팎’ 윤정선 작가 작품(사진=허미선 기자)

 

매일 오가는 일상의 공간과 그 공간의 보이지 않는 곳, 상상이 개입한 가상 풍경, 이질감이 드는 초현실적인 요소 등까지를 넘나드는 7명의 작가 작품 83점이 기획전 ‘마주한 세계: 풍경의 안팎’(2024년 2월 24일가지 금호미술관)에서 관객들을 마주한다.

3층부터 거리를 거닐 듯 배회하다 보면 만나지는 풍경들은 얼핏 일상의 것들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혹은 다른 시각으로 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3층에서는 금호문화재단의 신진예술가 발굴 프로젝트인 금호 영아티스트 출신인 윤정선 작가의 기억들에 깃든 익선동 및 종로 일대 정겨운 골목, 지붕 등과 신선주 작가의 흑백사진을 닮은 건축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윤정선 작가
금호미술관 기획전 ‘마주한 세계: 풍경의 안팎’ 윤정선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윤정선 작가의 작품들은 익선동 소재의 낙원장에서 내려다보이는 종로 일대의 풍경들이 퍼즐처럼 배치돼 있다. 정겨운 지붕들과 기와, 골목 등과 어쩌면 실제로 멀리 보일지도 모를 명동성당 사도회관의 밤풍경 등이 펼쳐진다.

윤정선 작가는 “유학으로 긴 타지 생활을 하면서 일상 속에 담아놓았던 장소와 그에 담긴 사적인 기억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 중”이라며 “그 관심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장소라는 게 우리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인간들의 기억은 그가 사라지면 없어져 버리지만 사물들이나 건축물들은 인간들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도 오랫동안 그 자리에 남아서 사람들의 모습을, 거기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느 공간을 방문했을 때 어떤 기억들이 떠오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신선주
금호미술관 기획전 ‘마주한 세계: 풍경의 안팎’ 신선주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이는 “결국 개인의 기억들이 공공의 기억과 만나지는 지점”에 주목하게 했고 윤 작가는 2015년부터 한국 최초의 근대식 마을인 익선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신선주 작가는 검정 오일 파스텔을 칠하고 지우고 긁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건축물의 시간과 공간의 깊이를 표현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는 중국 베이징, 미국 뉴욕 등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마주한 베이징 ‘다산즈 798 예술구’(大山子자 798 藝術區) 등의 풍경들을 검은색으로 먼저 설치하고 빛을 설치하면서 어둠을 제거해 가는 방식으로 재설계, 재배치한다.

이에 그의 작품들을 수년에 걸쳐 완성되는 것들로 검은 바탕을 칠하는 엄지손가락에 피멍이 들 정도다. 검은 바탕을 칠한 후 긁어내는 행위를 통해 빛을 투과시키며 건물을 표현하는 데 대해 그는 “화가로서 수행을 한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캔버스 위에는 도돌도돌한 스크래치가 있어요. 그걸 (검은 바탕을 칠하기 위해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는 그 사운드조차 힐링이 될 정도로 빠져서 작업을 하고 있죠. 어떤 걸 검게, 어떤 걸 하얀색으로 할지 어느 정도는 정해두고 있지만 가끔 블랙을 더 남기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욕심이 지나칠 때죠. ‘엔진 컴퍼니 33’(Engine Company 33)은 그 욕구를 제어하지 못해 실선 하나라도 더 그으면 안되겠다 싶은 작품이에요. 그 정도로 탱천돼 있는 에너지의 친구라 지금은 제 대표작입니다.” 

 

2층은 이만나·도성욱 작가가 표현한 숲, 나무, 도시풍경들로 꾸렸다. 도성욱 작가는 숲에 누워 쉬다가 눈을 떴을 때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빛에서 영감을 얻은 시리즈들을 선보인다. 극사실주의적인 표현과 더불어 보다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빛의 색, 온도, 스펙트럼 등을 표현한 ‘이모션 라이트’(Emotion-Light) 연작도 만날 수 있다.

 

도성욱
금호미술관 기획전 ‘마주한 세계: 풍경의 안팎’ 도성욱 작가 작품(사진=허미선 기자)

 

이만나 작가의 작품들에는 7, 80년대인가 싶지만 2012년 전후의 도시풍경들이 따뜻한 색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제가 세상을 직면했을 때 느끼는 건 이름 자체가 아니라 울림”이라며 “공간이 가진 울림, 입자 등을 모아서 표현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그린 숲 사이에서 고개를 내민 풍경들은 다 신축 아파트들이에요. 뭔가 동산인 줄 알았는데 확 깨뜨려 버리는 신문물의 낯섦이 있죠. 낯설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평온하기도 하고 우리한테는 익숙하기도 하고…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이만나
금호미술관 기획전 ‘마주한 세계: 풍경의 안팎’ 이만나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이어 “젊어서는 굉장히 현실적이지 않은 감각으로 인한 감동이나 충격, 초현실적인 것들에 대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현실 쪽에 한쪽 다리를 빼고 관찰하는 입장이 된 것 같다”며 “풍경 뿐 아니라 사회의 변화나 현상 등도 그렇게 바라보게 됐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자연은 되게 무서워요. 인간이 잠깐만 손을 놔도 엄청나게 자라버리거든요. 그런 자연의 무한한 에너지가 너무 좋으면서도 무섭고 우리가 그걸 함부로 다스리려고 하는구나 싶기도 해요. 그래서 자연은 공포까지는 아니지만 경외심을 가져야할 대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보영
금호미술관 기획전 ‘마주한 세계: 풍경의 안팎’ 정보영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지하 1층에서는 환영과 실재를 혼재한 송은영, 빛과 공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정보영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정보영 작가는 “1997년부터 회화의 본질은 무엇일까라는 고민과 탐구를 계속 해왔다”며 “빛이라는 요소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빛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는 것이 화가로서 다뤄야할 본질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그 대상을 중심으로 빛, 시간, 공간 등에 따른 차이들을 다양하게 드러내는 것이 회화의 본질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송은영 작가의 작품은 언뜻 잘 꾸민 인테리어 풍경, 평범한 길거리 등처럼 보이지만 원근법, 시·지각 원리를 탈피하면 전혀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문, 커튼, 벽, 쿠션 등으로 가려진 부분이 엄연히 존재하며 낯선 풍경을 선사한다. 경계의 재배치 혹은 침범으로 안팎, 앞뒤, 현실과 비현실, 전혀 다른 것들,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들 등이 공존하는 풍경이 된다.  

 

송은영_1
금호미술관 기획전 ‘마주한 세계: 풍경의 안팎’ 송은영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그 풍경 속의 붉은 이불, 파도, 주황색 조끼 등으로 2014년의 대한민국을 비탄에 빠지게 한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의 표현으로 그 개인에게 영향을 줬던 사회적 사건 등을 아우른다.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환영 등 실제에서 보여지는 비현실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제 자화상이나 사진을 볼 때마다 남의 얼굴을 보는 것과는 다르게 제가 제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에 생경함을 들곤 했거든요. 한 화면 안에 굉장히 이분법적인 요소들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업에 굉장히 많이 끌렸어요. 예를 들어 앞뒤에 있는 것을 동시에 볼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이죠.”

날려지고 단절되면서 동시에 볼 수 없는 풍경들을 한 화면에 아우르기 위해 송은영 작가는 지극히 부드럽게 처리한 외곽선, 자연스러운 블렌딩 등의 기법으로 하나처럼 표현하고 있다.  

 

유현미
금호미술관 기획전 ‘마주한 세계: 풍경의 안팎’ 유현미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1층은 사진,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을 통해 꿈과 현실의 경계를 표현하는 유현미 작가의 공간이다. 창작과정에서 느끼는 자기 복제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로 2022년 출간한 자작소설 ‘적’(敵)에서 출발한 연작도 만날 수 있다. 

 

실제 공간, 오브제 조각, 가미된 붓 터치 등으로 구현된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프린트한 후 유화로 리터치하는 과정을 거친 작품들에는 “이미지 자체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그는 “원래는 조각을 했고 미국에서 사진도 하고 회화도 하고…다양한 것들을 하나에 집어넣어 본질에 더 가까울 수는 없을까 고민하면서 시작한 시리즈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글부터 시작해 소설로 출간하고 그 안의 내용들을 작품화하죠. 조각가인 저에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화가들이 제일 멋있어 보였어요. 로망이랄까요. 그래서 종이 위에 해보면서 굉장히 물성이라는 게 마음에 와 닿아서 기분이 좋아졌어요. 사실 사진일 때랑 차이가 그렇게 크진 않아요. 어떤 건 거의 똑같죠. 그럼에도 (굉장히 물성이라는 게 마음에 와 닿아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것들을 관람객들도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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