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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매일 그리고 어디서나 치러지는 믿음의 전투, 연극 ‘나무 위의 군대’

입력 2023-07-0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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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나무 위의 군대
연극 ‘나무 나무 위의 군대’ 출연진 및 창작진. 왼쪽부터 상관 역의 김용준·이도엽, 신병 손석구, 여자 최희서, 민새롬 연출(사진=허미선 기자)

 

“이 작품은 결국 매일매일 또 삶의 구석구석에서 믿음의 전투를 치르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게 가족일 수도 있고 지역 사회일 수도 있고 직장일 수도 있죠. 우리는 응답받지 못한 채로 내 삶의 전부가 돼 버린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어요. 그 믿음이 붕괴되고 균열이 가고 무너지는 경험들은 우리 모두가 하고 있죠. ”

민새롬 연출은 연극 ‘나무 위의 군대’(8월 12일까지 LG아트센터 유플러스 스테이지)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민 연출은 “전쟁이 비극인 이유는 끔찍한 죽음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군인 우리가 사실은 뼛속까지 얼마나 다른 믿음을 갖고 있는지를 발견하는 게 진짜 참상”이라며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이 작품을 본다는 건 보편적인 우리 삶의 어떤 고통을 목도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23)나무 위의 군대_공연사진_김용준,손석구
연극 ‘나무 위의 군대’ 공연장면(사진제공=엠피앤컴퍼니)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1945년 태평양전쟁 막바지 오키나와 전투 중 본섬 북서쪽 작은 섬 가쥬마루 나무 위에서 2년여를 버틴 두 군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작품에 반전 메시지, 사회비판 등을 담았던 故 이노우에 히사시의 미완성 유작을 호라이 류타가 완성해 무대에 올린 연극이다.

류쿠국이라는 독립국가였지만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에 병합된 후 태평양 전쟁으로 미국, 1972년 다시 일본 등으로 소유가 바뀐 오키나와의 불분명한 정체성에 인간의 심리를 빗댄 작품이다.

적군을 피해 거대한 나무 위에 오른 본토 출신의 상관(김용준·이도엽, 가나다 순)과 자신이 살아온 삶의 터전, 이웃들을 지키고자 입대한 오키나와 출신의 신병(손석구) 그리고 신비로운 여자(최희서)의 이야기다.

국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군인으로서의 도리로 무장한, 그러나 죽음 앞에서 한없이 비겁해지는 자신을 숨기느라 거짓말과 살의를 드러내는 상관 역의 김용준은 “신병이 저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게 제일 답답했다”고 털어놓았다.

“누가 나를 안믿어주면 분노하고 믿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그 사람이 미워지고 답답하죠. 반대로 누가 나를 믿고 있다면 압박감과 부담감이 있어요. 특히 그 사람 믿음에 맞는 사람이 아닐 때 계속 불안하고 초조하고 거짓말을 더 하게 되고 미워하다 죽이고 싶어지는 미묘한 지점들이 있죠.”

이어 “이 작품에 그런 순간들이 많다”며 “그 미묘한 지점을 상관과 신병에서 어른과 젊은 사람, 국가와 국민, 사회 구성원 사이 등으로 넓혀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용준의 말에 ‘나무 위의 군대’ 신병으로 9년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 손석구는 “저는 개인적으로 엄청 공감이 됐던 게 아빠와 가졌던 관계에서의 답답함”이라고 동의를 표했다.

(23)나무 위의 군대_공연사진_이도엽,손석구
연극 ‘나무 위의 군대’ 공연장면(사진제공=엠피앤컴퍼니)

 

“(아버지의 말씀은) 무조건 옳죠. 지금도 믿고 있어요. 예를 들어 밤 10시면 자야하고 TV소리는 7 이상 키우면 안되고 밥은 이렇게 먹어야 하고 남들 앞에서는 이렇게 행동해야하고…이해는 안되지만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고 믿고 따르잖아요. 너무 힘든 일이죠. 근데 그 생활을 나무에 갇혀 2년 동안 했을 때는 살인까지도 갈 수 있다는 지점이 재밌었어요. 직장, 가족, 학교 등 안에서 누군가와 이런 경험을 모두가 겪을 거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이어 “억지로 믿어야 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믿음과 존경을 갖게 되는 사람이 있다. 그 안에서 ‘왜 저래야 하는지’ 질문이 싹트지만 믿음이 더 클 때는 따르게 된다”며 “그런 믿음을 받는, (신병과는) 반대에 있는 상관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런 관계가) 가족, 직장, 학교 등 이런 데 다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계급이 있고 서로의 능력치와 경력이 다르다 보면 충돌이 오죠. 그런데 (그 충돌에서) 신념과 믿음이 작동하면 옳다고 믿기 때문에 싸울 수도 없어요. 그러면서 병들어가는 부조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제가 상관한테 가졌던 답답함은 저 사람을 믿고 따르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음에도 이해는 안가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게 이 이야기의 가장 큰 공감대라고 생각합니다.” 

 

나무 위의 군대
연극 ‘나무 위의 군대’ 공연장면(사진제공=엠피앤컴퍼니)

 

또 다른 상관 역의 이도엽은 “전쟁 이야기다 보니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분명 있다. (신병 역의 손)석구를 중3인 제 아들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대하면 어떨까 생각했다”며 “그 순간 살의와 분노, 미움, 사랑 등이 복합적으로 다가왔다”고 털어놓았다.

“한 순간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야기가 충분히 다 담겨져 있다고 저는 생각이 들었고 그 부분에서 많은 관객분들이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희서는 자신이 연기하는 여자에 대해 “이야기의 흐름, 신병과 상관의 상태 등을 알려주는 해설자이자 그 이상의 나무 혼령과도 같은 역할”이라며 “내레이션도 내레이션이지만 어떻게 무대 위에서 서 있느냐가 굉장히 걱정되고 중요했다”고 털어놓았다. 민새롬 연출은 여자에 대해 “우리가 이 이야기를 왜 봐야 하고 왜 이 고통스러운 풍경을 관객들에게 말해야 하는지 주제를 탑재한 인물”이라고 부연했다. 

 

나무 위의 군대 출연진
연극 ‘나무 위의 군대’ 출연진. 왼쪽부터 상관 역의 이도엽, 신병 손석구, 여자 최희서, 상관 김용준(사진=허미선 기자)

 

“신병과 상관, 두 사람 사이의 믿음이 엇갈리는 고통, 수치심, 간절한 믿음 등을 목격하고 관객들에게 스피치하는 현대적인 인물이에요. 스토리텔러이기도 하고 전쟁에서 희생당한 사람, 동식물, 자연 등 모든 존재를 상징하는 인물이죠.”

김용준은 “상관이 신병한테든 나 자신한테든 믿음을 갖게 하려고 엄청 부담감과 압박감을 가지면서 노력하다가 결국은 ‘나무로 도망쳐 왔다’는 사실과 초라한 존재임이 신병에게 완전히 노출되면서 오히려 믿음이 생기고 숨이 쉬어지는, 서로가 진정한 서로를 만나게 된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얽혀 있는 허위와 진실이 해소되는 지점들이 이 연극에 있어요. 그 지점들을 지금 관객들과 나누면 좋겠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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