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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2022] '죽음 권하는 사회', 영화 '플랜75'가 주는 리얼함

75세 이상 죽음을 신청하면 '시행'해주는 미래의 일본 배경

입력 2022-10-1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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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751
일본 국민배우 바이쇼 치에코가 호텔 메이드 일을 하며 독립적으로 사는 ‘미치’역을 맡았다. (사진제공=BIFF)

 

카메라의 초점이 흐릿하다. 화면이 선명해지는 순간의 진실은 꽤 살벌하다. 누군가 사냥하듯 노인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다. 그가 남긴 메시지는 날카롭다 “일본은 국가를 위해 응당 죽을 수 있는 민족이며 고령화 사회가 장기화 되면서 젊은이들의 부양의무와 과도한 세금 부과로 인해 나라의 발전이 더디다”는 것. “자신과 같은 뜻을 지닌 젊은이들이 많아지길 원한다”는 유언은 일본 열도를 들썩이다.

영화 ‘플랜 75’는 75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에 대해 다룬다. 국가에 죽음을 신청하며 이를 시행해주는 것. 영화는 지난 2016년 20대 범인이 가나가와현의 한 지적장애인 보호시설에서 19명을 살해하고, 26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실화에서 시작됐다. 당시 범인은 ‘쓸데 없는 존재들에게 국고가 낭비되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고 한다.

영화는 노인에 대한 혐오범죄가 늘어나는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 정책이 시행되면서 여러 경제 효과가 나타나는데 노인들의 안락사를 돕기 위한 일자리가 창출되고 그들에 대한 지원비가 줄어들며 국고가 충만해진다. 지원 3년 째에는 65세로 낮추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긍정적인 효과가 사회적으로 팽배해진다.

죽음을 ‘선택’하면 받게되는 혜택도 상당하다. 죽기 전에 10만 엔을 현금으로 지원하며 고급 호텔에서 지내다 가족들에게 둘러쌓여 눈을 감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고령화 사회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미래의 일본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그럴듯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고독과 빈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그들의 실상은 자식이 있어도 외롭고, 돈이 있어도 결국 혼자다. 

 

플랜75
‘플랜 75’는 지금의 일본을 만든 단카이 세대가 겪는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다. 경제부흥을 이끌었지만 결국 되돌아 오는건 고독과 멸시 뿐이다.(사진제공=BIFF)

 

‘플랜 75’는 성별과 국적, 나이가 다른 노인과 젊은층이 엇갈리듯 스친다. 노인들을 위한 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심장병을 앓는 딸의 치료비를 위해 일본에 온 필리핀 여자다. 그는 더 높은 급여를 받기 위해 ‘플랜 75’에서 눈 감은 노인들의 소지품을 처리하는 업체에서 일한다. 어쩌면 자신의 딸도 죽을지도 모르는데 죽음을 원한 노인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국가정책인 ‘플랜 75’의 상담원으로 나오는 두 젊은 남녀의 삶도 고독하다. 남자는 20년 만에 이 곳에서 삼촌을 만난다. 오랫동안 집안에서 겉돌다 결국 죽음을 선택한 삼촌을 보며 그는 혈육의 정이 끓어오름을 느낀다. 피 한방울 안 섞인 다른 노인들을 죽음으로 ‘안내’할 때와는 사뭇 다른 끈끈함이다. 죽기 전 매일 15분씩 대화를 할 수 있는 ‘플랜 75’의 콜센터 상담원의 심정도 복잡하기 그지없다. 

 

그가 만난 78살의 치에는 신체의 나이만 들었을뿐 여전히 고고하고 건강하다. 세월이 주는 삶의 연륜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 치에를 만난 뒤 안락사를 결정한 노인들에게 그 결심이 변하지 않게 죽음으로 유도하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9일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효율적인 면을 중시한다. 하지만 사람 목숨까지 경제적 척도로 재는 것은 이상하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그

 

의 첫 장편영화인 ‘플랜 75’는 칸영화제에서 신진 감독을 대상으로 하는 황금카메라상 특별언급상을 받았다. 부산영화제 단편영화를 대상으로 한 선재상 심사위원이기도 한 그는 “한국도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지 않나. ‘태어날 때는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을 때는 원할 때 죽을 수 있다’라는 대사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의외로 ‘플랜 75’를 기획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하니 그것이야 말로 이 영화의 숨겨진 반전이 아닐까. 

 

부산=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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