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영화연극

[B그라운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음 바라보기…연극 ‘햄릿’

연극계 선후배의 만남, 어쩌면 역사적 사건

입력 2022-05-25 22:15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연극 햄릿
연극 ‘햄릿’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창작진과 출연진(사진=허미선 기자)

 

“선생님들과 저희가 만난 건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걸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6년 전 (연극 ‘햄릿’의) 그 무대를 보면서 정말 작은 소품으로라도 출연하면 행복하겠다 했는데 이번에 레어티즈라는 큰 역할에 참여하게 돼 좋습니다.”

25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컨벤션홀에서 열린 연극 ‘햄릿’(7월 13~8월 13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제작발표회에서 레어티즈 역의 박건형은 “연습실에서 선배님들의 리딩 목소리를 들으면서 늘 감동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연극 ‘햄릿’은 2016년 이해랑 탄생 100주년을 맞아 손진책 연출과 권성덕, 전무송,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등이 의기투합해 초연한 작품으로 6년 만에 두 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다. 손진책 연출은 “당시에는 9명의 배우에 대한 오마주 개념이었다”며 “성별, 나이, 역할 등에 상관없이 9명이 돌아가면서 소화하는 미니멀라이징한 연극놀이였다면 이번엔 죽음 바라보기에 집중했다”고 소개했다.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춰 메멘토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혹은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메시지를 던집니다. 인간에게 가장 확실한 건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죠. 확실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은 멀리 있다고 생각하곤 해요. ‘햄릿’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음 바라보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연극 햄릿 손진책
연극 ‘햄릿’ 손진책 연출(사진=허미선 기자)

손진책 연출의 설명처럼 지난 시즌에서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주요 역할들을 소화했던 9명의 배우들은 햄릿을 비롯한 레어티즈, 오필리어, 호레이쇼 등을 강필석, 박건형, 박지연, 김수현 등 젊은 후배들에게 내어주고 거트루트, 클로디어스, 폴로니어스, 무덤파기, 유령 그리고 배우 1, 2, 3, 4로 기꺼이 무대에 오른다.

연극 ‘햄릿’의 제작사 신시컴퍼니 대표인 박명성 프로듀서는 이번 시즌에 대해 “후배와 선배 배우들이 함께 하는 세대 융복합 작품”이라며 “젊은 세대를 위해 큰 자리를 기꺼이 내주신 선생님들께 감동했다”고 털어놓았다.

“저는 올해 연극 입문 40년을 맞았습니다. 선생님들과 작업하면서 왜 연극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만들어야 정도인지, 어떤 작업과정을 거쳐야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지를 배웠죠. 대극장 연극이 실종되다시피한 요즘 대선배들과 후진들이 힘을 합쳐 새로운 스타일의 연극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햄릿 역의 강필석은 “제가 감히 선생님들과 대사를 주고받으며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자체가 복 받은 배우라고 생각한다”며 “그 역사적 순간을 맞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연습 중”이라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연습실에서 제 정신은 아직 저 우주에 가 있습니다. (지난 시즌에서 햄릿이었던) 유인촌 선생님이 계시고 박정자 선생님이 첫 대사를 하시는데 제 대사를 못하겠더라고요. 너무 심장이 뛰고 제가 오염시키는 것 같아서 감히 대사를 섞지 못할 정도로 한없이 긴장됩니다.”

6년 전 햄릿으로 분했던 유인촌은 “사실 그때도 무리였다”며 “나이와 성별을 초월해 기념비적인 의미의 작품이라 했지만 제가 더 이상 햄릿을 하면 해가 되면 됐지 도움이 안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66세로 아마도 제일 늙은 햄릿이었을 거예요. 이번엔 클로디어스를 하게 됐습니다. 대단히 나쁜, 권력을 가진 왕이죠. 너무 거대하고 야비하기도 하고 권력에 대한 욕망의 화신 같은 인물이기도 해요. 형수랑 살려면 훨씬 젊고 섹슈얼한, 다분히 남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왕의 입장에서 햄릿은 한없이 작고 연약한 아이처럼 바라보지 않을까 싶어요. 악역을 많이 해본 경험 없어서 저에겐 큰 도전이고 어찌해야할지 아직 이미지가 떠오르진 않아요. 하지만 새로운 왕, 나쁜 놈의 전형으로 잘 표현해 보려고 합니다.”

 

HHHaaaMMMUntitled-1
연극 '햄릿' 출연진(사진=허미선 기자)

유인촌을 비롯해 박정자, 정동환 등이 나이 들어서 하고 싶은 역할로 꼽은 무덤파기는 지난 시즌 건강상의 문제로 하차해야했던 권성덕이 연기한다. 그는 “연극인생은 다 끝난 줄 알고 조용히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또 불러줬다”며 “힘이 딸릴 것 같아 해야 하나 고민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냥 잊혀도 되는데 그 놈의 정이 뭔지 또 불러주셔서 당시 (중도 하차했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어서 좋아요. 매우 반가워요. 이번이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좋은 친구들, 젊은 친구들과 같이 하게 돼 정말 영광이에요. 아마도 이번이 제일 좋은 역을 맡았고 제일 좋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정자는 “한자리에 모인 선배, 동료, 후배들과 ‘햄릿’을 함께 하게 돼 감사하다. 연습장으로 향하는 마음이, 발걸음이 정말 행복하다”며 “저희들끼리는 이런 작품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얘기하곤 한다”고 전했다.


01. 2022 연극 [햄릿] 포스터
연극 ‘햄릿’ 포스터(사진제공=신시컴퍼니)

“연극 배우한테 배역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무대 한구석, 조명 밖에 있더라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면 그게 배우들의 숙명이죠. 80세를 넘다 보니 대사 외우기가 너무 어려운데 대사가 적어서 좋아요. 대신 대사 많은 햄릿(강필석)을 맘껏 응원하려고 합니다.”

 

손진책 연출은 “한국 연극계가 위기가 아닌 적은 없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더 없는 위기를 맞았다”며 “주변에서 제대로 틀을 갖춘 작품을 찾기 어렵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고 밝혔다.

“(이같은 연극계 현실은) 평생 연극을 열심히 한 우리 동료들이 일정 부분 책임을 나눠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배우들을 가지고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면 이 또한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연극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격이죠. ‘격’있는 연극해보려고 합니다.”

정동환은 “준비하면서 (선배와 후배들이 한 무대에 오르는) 이런 전통은 계속 유지돼야 하는 구나, 애쓰는 사람들에게 이유가 있구나 싶다”며 “관객들과 선후배들이 인정하는 이런 전통은 유지되고 범연극인들이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보탰다.

오필리어 역의 박지연은 “젊은 배우들 때문이 아니라 선생님들 때문에 가장 젊고 재밌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호레이쇼 역의 김수현은 “저는 아주 어려서부터 운좋게 공연을 많이 관람했고 무대 위에서 빛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며 선배들에 대한 당부를 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빛나는 모습으로 여전히 무대 위에 존재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제 말이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지만 앞으로도 좋은 모습으로 무대 위에 존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