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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행복의 무게와 속도에 대해 물으신다면…"

[人더컬처] 다큐 '행복의 속도' 박혁지 감독
핸드폰도 안 터지는 일본의 국립공원으로 카메라 들고 떠나

입력 2021-11-22 18:00 | 신문게재 2021-11-2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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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지 감독7
지난 17일 브릿지경제와 만나 ‘행복의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박혁지 감독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시작은 EBS 다큐멘터리 ‘길 위의 인생’이었다. 5년 전 방영돼 잔잔한 방향을 일으켰던 이 작품은 아시아 전역에서 만난 ‘인생을 짊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당시 박혁지 감독은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을 배경으로 한 방송용 꼭지가 없음을 알고 미련없이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영화는 오제 국립공원에서 산장까지 짐을 배달하는 ‘봇카’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일상을 통해 저마다의 길 위에 놓인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그들의 가족과 산장주인, 친구들과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곳의 청정한 공기처럼 가득 차 있다.

“방송국에 들고 간 프레젠테이션 내용 중에 영화의 제목이 있었어요. ‘그들이 가진 행복의 속도를 따라가는 코너’라고요. 이렇게 영화로 이어질지는 몰랐지만. (웃음) 우연히 봇카로 활동하는 분들의 사진을 보게 됐고 현지 코디네이터를 통해 20년 넘게 그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가라시 히로아키와 이시타카 노리히토를 만났죠. 그 해 7월 방송을 내보내야 해서 급한 마음도 있었고 아쉬움도 커서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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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의 속도’의 박혁지 감독.(사진제공=영화사 진진)

 

‘행복의 속도’는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국립공원에 위치한 산장에 필요한 물품을 배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눈이 녹는 4월부터 살얼음이 어는 10월까지 약 70kg의 짐을 어깨에 지고 짧게는 3km, 길게는 10km 정도 오르는 일을 하는 직업이다. 산장에 필요한 각종 식재료부터 편지, 의약품까지 다양한 물건이 오간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1kg당 배달료는 약 100엔 정도다. 박 감독은 “거리가 먼 산장은 그 가격에서 얼마 더 받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 “현재 6명의 봇카들이 있는데 한명에게 치우침 없이 공평하게 배달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자연을 최대한 지키키 위해 사람이 겨우 지나다니는 나무 길을 낸 이곳을 하루에 몇번씩 오가는 것은 무리다. 이에 이들이 돈을 보고 이곳을 지킨다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는다.

박혁지 감독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사는 기쁨을 아내에게 돌리며 “가장 냉철하고 가까운 반응을 들려주는 아내 덕분에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사진제공=영화사 진진)

 

“먼 산장을 가면 그만큼 벌이가 좋을텐데 베테랑부터 막내까지 결코 욕심내지 않아요. 다들 이곳의 자연풍광을 매일 보는 것 그리고 느리고 많이 벌지 않아도 가족들과 만족하며 사는 것을 우선시 하더라고요.”

‘행복의 속도’에는 30대 초반과 40대에 막 들어선 두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선배인 이가라시는 여자 봇카였던 아내를 만나 두 아들을 뒀다. 매일 변하는 오제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비수기인 계절에는 본가로 가 어머니에게 그 곳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곤충박사인 이가라시의 아들은 유튜브와 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자연을 만끽하며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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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의 속도’의 박혁지 감독.(사진제공=영화사 진진)

 

단순히 오제의 봇카에서 만족하지 않고 연대를 만들어 일본을 대표하는 직업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이시타카의 일상도 흥미롭다. 이제 막 한 아이의 아빠가 된 그는 국립공원의 해설가 출신인 연상의 아내와 가정을 꾸렸다. 도시의 친구들과 가족들은 몸을 쓰는 직업인 자신을 걱정부터 하고 본다. 이상과 현실을 오가는 가족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에 대해 박 감독은 “사실 이 영화의 숨은 주제는 어쩌면 ‘가정교육’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눙치며 “나 역시 어떤 아들이자 아버지, 남편인가를 반성하게 됐다”는 속내를 밝혔다.

박혁지 감독은 SBS 방송아카데미 출신으로 PD로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는 길을 버리고 과감히 영화로 방향을 틀었다. 아이를 낳기 위해 한 집에 산 지 40년이 된 본처와 첩의 이야기를 다룬 ‘춘희막이’로 방송국의 기대주로 막 떠오른 시기에 영화 ‘북경반점’ 막내로 들어가 현장을 익혔다. 그는 “휴먼다큐라는 장르가 저에게 맞는다는 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면서 “사실 그건 제 능력보다 그 분들의 매력과 이야기에 달려 있다. 그들의 삶을 당당하게 엿보고 그 결과물을 대중들과 나누는 삶이 좋다”라고 미소지었다.

영화사 진진
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행복의 속도’는 전국에서 상영중이다.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영화의 오프닝 노래와 마지막을 장식하는 산장지기의 내레이션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극적인 반전도 갑자기 흘러내리는 눈물도 없지만 국적은 달라도 같은 지구인인 그들이 보여주는 위로는 뜨끈하기 그지없다. 국내에서 핑거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오시오 코타로의 ‘윙’을 치며 등장하는 20대의 젊은 이가라시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기 위해 1년의 반년은 오제에 가서 봇카를 한다”며 자신을 소개한다. 아마도 20년 후 자신이 이 영화를 찍을 걸 예상이라도 하듯.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제 국립공원의 사계절을 사진으로 공유하는 산장주인 타다 쇼헤이는 점점 줄어가는 방문객에게 결코 읍소하지 않는다. 대신 이제는 사라져가는 봇카들에 대한 감사와 자신이 앞으로 걸을 길에 대해 당부를 전할 뿐이다. 감독은 우연히 쇼헤이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시적인 일상에 감동해 직접 내레이션을 부탁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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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의 속도’의 박혁지 감독.(사진제공=영화사 진진)

 

“이 작품은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큰 힐링을 받은 작품이에요. ‘시간을 꿈꾸는 소녀’라는 작품을 준비 중이고 내년에 개봉예정입니다.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 주인공인데 이 친구가 고 3때부터 촬영을 했는데 벌써 25살이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미래를 내다보는 직업인데 정작 자신의 미래는 꿈을 통해 본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아, 그리고  ‘행복의 속도’가 18일 개봉했다니까 봇카분들이 지금은 코로나19로 올 수 없지만 한국 관객들이 오제를 많이 방문해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혹시 이 영화를 보고 가게 되면 길에서 아는 척 꼭 해주세요. 정말 반가워 할 겁니다.(웃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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