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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착한 사람’ 딜레마에 빠진 ‘슬의생’, 시즌2에서 멈추나

[조은별 기자의 K엔터+]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본 한국형 시즌제 드라마의 딜레마

입력 2021-09-14 18:30 | 신문게재 2021-09-1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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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사진제공=tvN)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극본 이우정·연출 신원호, 이하 슬의생)은 한국판 ‘그레이 아나토미’가 될 수 있을까. 미국 ABC에서 2005년부터 방송 중인 ‘그레이 아나토미’는 대표적인 장수 의학드라마다. 2005년 첫 시즌 때 인턴이던 주인공 메러디스 그레이(엘런 폼페오)는 2021년 시즌18에서 일반외과 과장으로 승진하는 등 시청자와 함께 성장하는 장수 드라마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슬의생’은 시즌3 제작이 요원해 보인다. 드라마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원호PD는 2022년에 시즌3를 촬영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시즌1을 마친 뒤 시즌2 촬영일정을 고지해 출연진의 스케줄을 조율한 지난해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과연 ‘슬의생’은 이대로 멈추는 것일까.


◇ 엘리트 의사 중심주의, 갈등구조 만들기 힘든 스토리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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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사진제공=tvN)

 

‘슬의생’은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는 드라마다. 방송 내내 평균 시청률은 13%대(닐슨코리아 유료 가구 기준)로 안정적이다. 그러나 기대치에 비해 폭발력은 다소 떨어졌다. CJ ENM이 집계하는 콘텐츠 영향력 지수(8월 30일~9월 5일 집계)에서도 SBS ‘펜트하우스’와 tvN ‘갯마을 차차차’, SBS ‘홍천기’에 밀려 4위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해 화제를 모았던 밴드 ‘미도와 파라솔’의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도 음원차트에서 화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슬의생’이 시즌2에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건 반복되는 스토리를 병렬적으로 나열한 구조적 문제가 한몫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슬의생’의 장점은 일상의 가치를 포착해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이런 이야기 구조가 반복되면서 시청자들이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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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사진제공=tvN)


시즌1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된 ‘엘리트 의사들의 선행’ 이야기가 더 이상 보기 불편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의료시스템이 붕괴 직전에 놓였고 정치권과 대한의사협회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문제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빅5 병원에서는 수많은 환자들이 3분 진료를 위해 장시간 대기하는 현실에서 ‘슬의생’ 속 의사들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명문의대 출신 의사들의 선의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다 보니 갈등구조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후배들에게 막말을 일삼고 폭력적인 민기준(서진원) 교수나 천명태(최영우) 교수, 며느리에게 몰인정한 석형 모 영혜(문희경) 등이 잠시 긴장을 불어넣는 선에서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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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긴장의 부재는 출연진들의 러브라인으로 채웠다. 그러나 ‘응답하라’ 시리즈가 ‘남편찾기’라는 장치로 몰입도를 높인 것과 달리 ‘슬의생’은 러브라인조차 장애 없이 완성돼 밋밋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조적으로 문제점을 드러냈지만 ‘슬의생’은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장기기증이나 간병인 복지같은 메시지 전달에는 성공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극 중 장기기증절차를 설명한 7회 방송 뒤 무려 7042명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1배 증가한 수치다. 심장이식 순서를 기다리는 자녀를 간병하느라 병원 근처에 방을 마련한 은지엄마 에피소드를 통해 간병인들의 복지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 착하거나 독하거나… 시즌제 드라마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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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펜트하우스3’ (사진제공=초록뱀미디어)

 

한국의 시즌제 드라마는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수준이다. ‘슬의생’에 앞서 SBS ‘펜트하우스’와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이 각각 3개의 시즌과 2개의 시즌을 마무리했다. OCN ‘보이스’도 얼마 전 시즌4를 방영했다. OTT에서도 시즌제 제작이 한층 활발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은 시즌1, 2의 성공에 이어 최근 외전 ‘아신전’까지 선보였다. 천계영 작가의 원작 웹툰을 드라마화한 ‘좋아하면 울리는’이 시즌1, 2까지 제작됐고 최근 화제를 모은 ‘D.P’나 지난해 공개된 ‘스위트홈’도 호평에 힘입어 시즌2 제작을 준비 중이다.

문제는 지상파나 케이블 채널의 시즌제 드라마가 반복되는 이야기 구조 속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슬의생’이 갈등없는 착한 드라마의 딜레마에 빠졌다면 ‘펜트하우스’는 자극적인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시청자의 피로감을 높였다. 시즌1, 2에서 죽었던 사람이 잇달아 부활하면서 시즌3 초반에 사망한 오윤희(유진)의 경우 종영까지 ‘오윤희 부활’이 연관검색어로 따라붙었다. ‘보이스’ 역시 드라마의 잔인함을 부각하다보니 탁월한 청력으로 수사한다는 애초 기획의도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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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보이스4’ (사진제공=tvN)

 

이는 작가 1인이 장기간 서사를 끌고 가면서 자기 복제의 오류에 빠진 탓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시즌제를 편성하는 방송사들의 시행착오가 잦다. 엄밀히 말해서 ‘펜트하우스’는 시즌제로 방송해서는 안되는 드라마인데 시청률 만능주의에 빠진 방송사가 편성을 내줬다”며 “‘보이스’같은 장르물은 집단 집필도 고려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집단창작을 택한 ‘슬의생’의 경우 다소 시일을 두고 새로운 시즌을 준비할 경우 결과가 좋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정 평론가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시기에 새로운 인물을 투입하거나 다른 패턴의 이야기로 환기시킨다면 좋은 시즌제 의학드라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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