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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 ① “번역의 역사가 될 한류의 역사, K콘텐츠에 주목하라”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1-08-06 18:00 | 신문게재 2021-08-0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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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한군문학번역원장
곽효환 한군문학번역원장(사진=이철준 기자)

 

“5, 6년 전 중국에서 티베트를 가려고 시닝이라는 데를 갔어요. 한 중국 아이가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걸더라고요. 한국인도 아니고 한국 유학을 한 적도 없고 한국에 와본 적도 없는 아이였죠. 한국이 좋아서 드라마를 보고 배웠대요. 이게 문화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건국 이래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적기라고 생각해요.”

전세계적으로 K팝, 드라마, 영화 등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현상에 대해 이렇게 밝힌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영화 ‘기생충’으로 칸영화제를 비롯한 크고 작은 어워드, 아카데미까지 전세계를 휩쓴 봉준호 감독과 더불어 주목받은 통역사 샤론 최, 한국배우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미나리’ 윤여정의 위트 넘치는 영어 소감 및 언론응대 등은 한국 영화 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전세계를 열광시키며 연일 빌보드의 역사를 갈아치우고 있는 방탄소년단(RM·진·슈가·제이홉·지민·뷔·정국)은 또 어떤가.

“한국 예술문화, 더 나아가 한국의 중흥을 위해서는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또 한번 깨달아야 합니다. 21세기 한류의 역사는 번역의 역사될 거예요. 기계번역으로는 안돼요. 하나의 콘텐츠를 옮기는 데는 정말 정밀하고 꼼꼼한 언어적 작업이 필요하거든요.”

교보그룹 산하의 대산문화재단에서 30여년간 몸담았던 예술행정가이자 스스로도 시인인 곽 원장은 10여년 전 재미교포의 영어 자서전을 번역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난감했던 기억을 전했다.

“첫 단락부터 막혔어요. 그냥 눈으로 훑을 때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글로 옮기려니 그 갭이 엄청났죠. 한국문학을 전공하고 명색이 시인인데…제 문장의 졸렬함을 처음 느꼈습니다. 그게 번역이에요. 영어를 배워 한국어로 옮기는 것도 이 정도인데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는 작업은 어떻겠어요. 탁월한 원어민 번역인력을 육성해야 합니다. 지금은 숫자가 너무 적어요. 주요 언어권은 뭘 맡겨도 신뢰할 수 있는 번역가 5, 60명, 그 외는 2, 30명의 번역가가 확보돼 있어야 해요. 지금은 주요 언어권에서도 20명을 찾기 어려울 정도죠.” 

 

이에 곽효환 원장은 임기 내 숙원사업으로 한국문학글로벌 플랫폼, 번역대학원을 꼽으며 문학 개념의 확장, 국가별·언어권별 맞춤전략 등을 강조했다.


◇세계화 아닌 세계의 일원을 꿈꾸며

곽효환 한군문학번역원장
곽효환 한군문학번역원장(사진=이철준 기자)

“너희 한국문학은 한국전쟁을 빼면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곽 원장은 1990년대 초 대산문화재단 실무자로 해외 출판사들을 만나러 갔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2, 30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한국문학을 한국전쟁과 연관해서 보지는 않죠.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세계에서 자연스레 한국문학에 관심을 가져서 시작됐다기 보다 출발 자체가 굉장히 정책적인 작업이었어요.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의 노벨상 수상 후 한국 사회의 문화적 충격은 엄청났어요. 그렇게 한국문학 번역 출판지원사업이 제도화됐죠.”

곽 원장의 설명처럼 “일본에 질 수 없다는 의지와 주변에서 중심으로 진입하고 싶은 열망감이 모여 1980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92년 대산문화재단, 1995년 한국문학번역원이 설립되며 한국문학 세계화 전략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우리 대표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출판하겠다는 전략이다 보니 쏠림현상도 있었어요. 본격문학, 대중문학, 장르문학 을으로 분류되는 우리 문학 번역의 중심은 본격문학이었던 게 사실이죠.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저명한 작가들 보다는 우리 문학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작가들이 소개되고 있어요.”

이어 “1990년대 중반 오정희 선생이 ‘새’라는 작품으로 독일을 리베라루트 문학상을 받은 후 고은, 황석영, 문정희 선생이 크고 작은 해외문학상을 받았고 (‘소설가의 귓속말’의) 이승우씨가 주목받았다”며 “김혜순, 한강, 김이듬, 신경숙, 최근의 윤고은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학이 다양해지고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부연했다.

“지금 한국문학은 전성기가 아니라 전성기를 향해 열심히 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문학을 세계화시키고 싶은 게 아니라 한국문학을 통해 한국문화 자체를 세계 중심에 놓고 싶어요. 그럴 만큼 우리 문학의 외형은 쌓여 있거든요. 우리 스스로 좁힐 필요는 없어요. 이제는 가속이 붙어서 좀더 다양하고 역동적인 면모를 보여주면 좋겠어요. 한국문학이 세계문학 일원이 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 문학의 다양한 면모와 에너지를 잘 전달하는 일입니다.”


◇지원제도의 변화, 그에 발 맞춘 한국문학글로벌 플랫폼

곽효환 한군문학번역원장
곽효환 한군문학번역원장(사진=이철준 기자)

 

“최근의 한국문학번역 지원제도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어요. 과거에는 우리가 소개하고 싶은 작품 목록을 만들어 공모하는 방식이었어요. 그 후에는 목록을 없애고 현지사정에 밝은 번역가들이 사후 번역해 소개할 가치만을 평가했죠. 그리고 지금은 해외 출판사나 에이전트들이 한국 작가의 저작권을 사서 번역원의 번역·출판 지원 프로그램에 공모해요.”

곽 원장에 따르면 이 같은 경우는 2019년 97건, 2020년 142건이었고 올해는 200건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곽 원장은 “연간 증가율이 17%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 추이라면 3, 4년 후에는 연간 300~400건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 문학시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트렌드의 변화입니다. 더 이상 우리 기준이 아니라 그 나라 출판사가 그들의 기준으로 선택하는 거죠. 반드시 순기능만 있는 건 아니에요. 쏠림현상이 심화돼 한국문학의 단순화를 야기할 수도 있죠. 그럴 때 지원기관의 ‘보이지 않는 손’이 필요해요. 우리 입장에서 반드시 소개해야할 것들을 기획번역제도로 전략적으로 노출해주고 보완할 수 있어요. 균형을 잘 잡기 위한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잘 하려고 합니다.”

이같은 변화를 감지한 곽 원장의 임기 내 숙원사업은 ‘한국문학글로벌 플랫폼’ 구축과 번역대학원 설립이다. 곽 원장은 “한국문학글로벌 플랫폼을 하겠다는 건 가능성이 보였을 때. 시장을 더 열어주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곽효환 한군문학번역원장
곽효환 한군문학번역원장(사진=이철준 기자)
“콘텐츠를 가진 공급자와 사겠다는 수용자, 양측 모두가 자유롭게 서로를 탐색할 수 있는 플랫폼이에요. 한국 출판사나 저작자들이 팔고 싶은 저작물, 좋은 문학작품이 있다면 소개 자료를 만들어 번역원에 보내주면 영어나 주요 외국어로 번역해 게재하는 식이죠. 한국문학에 관심이 있는 해외 출판사들은 이 플랫폼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죠. 그 다음 단계로는 직접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거래할 수 있게 하고 번역원은 그 과정에서 필요한 지원제도를 만들어 줄 계획입니다.”

이렇게 설명한 곽 원장은 “누구나 저작물만 있으면 거래할 수 있는 번역출판계의 ‘당근마켓’처럼, 지금보다 진일보한 시장형태”라며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우리의 리그로 만들어주겠다는 의미”라고 말을 보탰다.

“온라인만으로는 역동성이 떨어지니 1년 한두번은 오프라인에서 외국 출판사, 에이전트들과 한국작가, 출판사들이 만날 수 있게 마당을 열어주는 거죠. 과거에는 후자만 가능했어요.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상시, 적극적으로 거래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이어 “저작권 상시거래는 한국문학글로벌 플랫폼의 코어 기능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기능이 어렵다”며 “한국문학글로벌 플랫폼은 궁극적으로 한국문학 번역출판 포털이 돼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황석영’하면 연보. 작품세계, 주요서지사항들이 주요 언어로 떠야한다고 생각해요. 저서, 작품 등에 대한 개요들을 설명하고 어느 나라, 어느 출판사에서 번역출간됐는지, 주요 외신, 평론가들의 리뷰 등 정보 모두를 제공하고 저작권을 사기 위해 어떤 절차를 거쳐야하는지까지 안내하죠. 이후 고급독자들, 일반독자들의 실시간 리뷰 기능을 순차적으로 마련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전세계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한국문학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거예요.”

이를 위해 한국문학번역원은 해외에 한권 이상 번역출판돼 소개된 작가들 전부의 아카이브를 목표로 작업 중이다. 곽 원장은 “내년 하반기 시제품 발표를 목표로 작업 중”이라며 “상당수가 공개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한편으로는 번역원을 비롯해 대산문화재단 등 민간에서 열리는 적지 않은 한국문학 관련 국제행사 등을 공공저작물로 아카이빙할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번역원이 올해 봄까지 번역출판한 도서가 1527종, 대산문화재단 500권, 문예진흥원 400권에 개인작업까지 통틀어 번역원 도서관에 비치돼 있어요. 이들의 디지털화작업을 통한 디지털도서관 기능도 검토 중이죠. 번역원의 이 모든 자료들을 한국문학글로벌 플랫폼 안에서 찾아볼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곽 원장은 “제 임기 동안 플랫폼 구축과 첫 출발까지 가게 될 것”이라며 “어느 조직이나 사회든 그때 해야할 일이 있다. 그걸 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비용을 치르거나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고 번역대학원에 대한 염원을 털어놓았다.


◇한국을 알리는 전투병 육성을 위한 번역대학원

곽효환 한군문학번역원장
곽효환 한군문학번역원장(사진=이철준 기자)

 

“문학을 어설프게 번역하는 순간 나라 이미지 자체가 완전 망가져요. 좋은 번역가가 필요한 이유죠. 그 대단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인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스마일 카다레(Ismail Kadare) 등은 평생 한 번역가가 모든 작품을 번역했어요. 하지만 한국은 최미경이라는 불어번역가가 황석영 작품도 하고 제 시집까지 번역하고 있어요. 작가들마다 다른 문체, 감수성 등이 한 번역가에서 오롯이 살아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반문한 곽 원장은 “아직도 번역가 양성은 계속해야 한다. 풍성하게 남아돌 정도로 육성해야 한다”며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번역의 문제라고들 하면서 번역가 양성을 위해서는 무엇을, 어떤 노력을 했나”라고 재차 되물었다. 

 

“번역대학원은 정말 중요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많은 갈등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특히 한국사회에서 학위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죠. 현재 운영되고 있는 번역 아카데미 입학생의 80~90%는 한국문학번역을 하고 싶어 온 해외 원어민들이에요. 청년기의 이들은 2, 3년 공부하고 학원 수료증을 받고 돌아가죠. 하지만 이 수료증만으로는 청년기를 끝내고 자기 인생을 준비하고 개척하는 데 도움이 안돼요. 더 공부하고 싶어도 한국에 번역가 양성을 위한 교육시스템도 딱히 없어요.”

곽효환 한군문학번역원장
곽효환 한군문학번역원장(사진=이철준 기자)

번역대학원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전한 곽 원장은 “번역대학원 학위취득자들은 한국이 아니라 자국으로 돌아가 자리잡고 일할 사람들”이라며 “한국문학의 세계화뿐 아니라 한국문화, 한국이 세계 속에 궁극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자국으로 돌아가 자리를 탄탄하게 잡아야할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곤 “한국에 미국, 프랑스, 영국, 멕시코 등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한국에서 자리잡은 분들은 죽는 순간까지 그 나라에서 배운 것들을 일과 연관시키고 옹호한다”며 “번역대학원에서 공부한 이들도 마찬가지”라고 강하게 말했다.

“한국의 번역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 대학교수로,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해보세요. 죽을 때까지 한국을 위해 최전선에서 일할 사람들이에요. 나쁜 예를 들자면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부라 폄훼한) 하버드의 마크 램지어 법대 교수를 보세요. 일본에서 일본 지원을 받으며 공부하다 보니 천인공노할 짓을 하잖아요. 이 사람은 마지막까지 일본에 의지할 사람이죠. 우리는 왜 그런 사람이 없을까요. 우리는 일본보다 훨씬 정당하고 문화적 자산이 많은데 말이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키워야해요.”

이렇게 강조한 곽 원장은 “모처럼 한국학, 한국문화 붐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현로를 뚫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경쟁시장이 다른데 ‘학위’ 문제로 안된다고 할 게 아니라 살릴 방안을 모색해야죠. 굳이 교육부 학위가 아니어도 돼요. 한국 정부가 인정하는 졸업장이면 돼요. 단순히 대학원 학위 개념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세계 각국으로 돌아가서 한국 예술문화를 마지막까지 홍보하고 한국에 대해 알릴 전투병을 육성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죠. 공공이 투자하고 정부에서 관심을 가져야하는 사안들은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진작해야 했지만 늦었어요.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합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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