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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하이든, 베토벤, 브람스 후기 작품집’으로 다시 피아노! 정명훈 “결국 사랑”

입력 2021-04-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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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정명훈(사진제공=크레디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0번 E장조 op. 109’(Piano Sonata No. 30 in E major op. 109), 슈만의 ‘환상곡’(Phantasie C-maj, Op.17)과 ‘아라베스크’(Arabeske C-Dur Op.18)까지.

47년 동안 세계적인 지휘자로 명성을 떨쳤던 정명훈은 한 시간 남짓의 기자간담회 동안 세곡을 연주했다. 1974년 21살의 나이에 한국인 최초로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 참가해 2위를 차지한 후 곧바로 지휘에 집중했던 정명훈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앨범 발매 및 리사이틀은 2014년 손주들을 위한 소품집 이후 7년 만이다.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스물한살 때니 47년 전이에요. 피아니스트로 활동 안한 지도 30년이 넘었죠. 제 첫사랑이 피아노고 지금도 똑같이 사랑해요.”

(0422) 정명훈 앨범 이미지
정명훈의 피아노 연주 앨범 ‘하이든, 베토벤, 브람스 후기 피아노 작품집’(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서초구 소재의 코스모스아트홀에서 22일 열린 ‘하이든, 베토벤, 브람스 후기 피아노 작품집’(Haydn, Beethoven, Brahms - Late Piano Works) 앨범 발매 및 피아노 리사이틀 기자간담회에서 정명훈은 피아노를 “첫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이 세상에서 제가 사랑하는 게 두 가지 있어요. 피아노와 초콜릿. 이제 초콜릿은 없어지고 피아노와 가족이에요. 피아노 보다는 가족이 앞서지만 그만큼 깊이 든 사랑이죠. 앞에 나서서 연주를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피아노 옆에 있었어요.”

그는 “좋아서 연주하거나 실내악에서 협연하는 것과 리사이틀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그럼에도 제가 피아노 리사이틀을 하는 건 피아니스트로도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처음 음악을 사랑하게 된 게 피아노고 아직도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지휘는 어딘가 한 가지가 모자라는 느낌이에요. 지휘자는 완벽한 음악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소리를 안내기 때문이죠. 음악가라는 건 자신이 직접 소리를 내야 해요. 지휘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정명훈의 피아노 앨범 발매와 리사이틀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가능해졌다. 정명훈은 “유럽에서의 연주 90%가 취소되면서 집에서 조용히 공부를 하고 피아노만 쳤다”며 “피아노 리사이틀 제안도 처음엔 거절했는데 1년 동안 피아노 연주를 많이 하게 되면서 (그 제안에) 넘어갔다”고 밝혔다.

정명훈
정명훈(사진제공=크레디아)

 

그는 간담회 동안 “저는 이제 프로페셔널 음악가가 아니다”라고 수차례 언급했다. 그는 “제가 프로페셔널 음악가가 아니라는 건 ‘누가 뭐 하고 싶냐’거나 플랜을 물으면 대답할 수 없는 상태”라며 “이제는 누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도와달라’면 그냥 한다”고 설명했다. 2014년 첫 번째 앨범은 물론 이번 앨범도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둘째 아들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제일 좋은 건 서로 좋아하고 이해하는 사람들과 같이 하는 일이죠. 이번 레퍼토리는 작곡가들이 거의 마지막에 쓴 곡들이에요. 브람스의 ‘네개의 피아노 소품 Op.119’(4 Klavierstucke, Op.119)는 거의 마지막 곡이죠.”

그의 설명처럼 이번 앨범에 수록되고 리사이틀에서 연주될 곡들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의 ‘피아노 소나타 60번 C장조, Hob.XVI/50’(Keyboard sonata in C major, Hob. XVI:50),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피아노 소나타 30번 E장조, Op.109’,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가 마지막으로 쓴 ‘세개의 간주곡 Op.117’(3 Intermezzo, Op.117) 그리고 ‘네개의 피아노 소품 Op.119’다. 

 

“하이든도, 베토벤도, 브람스도 소나타부터 어마어마한 규모의 곡들을 작곡했는데 마지막 곡들은 다 작고 인티미트(Intimate, 소소한)했어요. 지나치게 빠르고 신나는 곡 보다 점점 더 조용하고 아름다운 게 마음에 와 닿아요.”

정명훈
정명훈(사진제공=크레디아)

그리곤 “저는 나이 드는 게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며 “다시 뒤로 돌아가고 싶다고 1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처음 브람스의 마지막 심포니 4번을 지휘했을 때는 소화시키지 못했다고 판단했어요. (그 후로 여러 차례 지휘를 했고) 그러던 어느 날인가는 좀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해 보니 제가 브람스가 심포니를 쓴 나이가 됐더라고요. 천재 작곡가와 비교는 어렵지만 인간으로서 그만큼 살았다는 게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어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절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사실 그건 절로는 아니다. 계속 노력하고 공부하면 그럴 가능성이 생기곤 한다”고 덧붙였다.

“젊었을 때는 손가락이 훨씬 더 잘 돌아갔어요. 지금은 원하는 대로 손가락이 돌아가지 않는 대신 예전에 안보이고 못느꼈던 것들이 잘 보이고 느껴지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래요. 음악가에게는 세 가지가 필요해요. 일단 어느 정도 타고 나야하는 탤런트와 지독한 연습 그리고 시간이죠. 같은 곡을 반복해도 늘 그만큼씩 힘들어요. 노력만 가지는 안되고 시간도 흘러야하고 다른 경험도 합쳐져야 하죠. 어떻게 설명은 못하지만 음악 표현에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이후 또 다른 피아노 연주 앨범 발매 가능성에 대해서 정명훈은 “우리 둘째 아들이 연주는 안하더라도 레코드는 계속 하자고 해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서도 “딱 한 가지 할 생각은 있다”고 운을 뗐다.

“첫 번째 레코드는 아이들을 위해서, 두 번째는 이만큼 오래 살았으니 인생의 리플렉션(투영) 같은 뜻으로 했다면 아내를 위해서 하는 레코드를 생각하고 있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 하나 있어요. 좀 힘들긴 해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슈만의 ‘판타지’!”

정명훈
정명훈(사진제공=크레디아)

 

더불어 국내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서의 활동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또 다시 “저는 이제 프로페셔널 음악가가 아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런 책임에는 아무 관심이 없어요. 마지막에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파리 오케스트라)에 15년을 있었어요. 그만둔다고 하니 다들 이해를 못했죠. 단원들에게 ‘마이 엔젤스’라고 부를 정도로 사랑했던 오케스트라였고 일하기도 편했으니까요. 하지만 (객원으로) 가서 연주하는 것과 책임을 맡는 건 큰 차이죠. 책임을 진다는 건 어떤 방법을 쓰든 오케스트라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미예요. 굉장히 힘든 일이죠.”

그리곤 “발전시킬 수 없고 그럴 마음이 없으면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한다”며 “이제는 그런 자리는 안맡을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곤 자신이 걸어온 음악인생에 대한 소회로는 “처음부터 죽을 때까지 사랑”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가로서 저는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그게 제일 중요하고 끝에 남는 것 역시 사랑이에요. 어떻게 발전되고 변화되든 시작도, 마지막도 포인트는 ‘사랑’이죠. 모든 일이 그런 것 같아요. 사랑을 살리지 않으면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해요. 사람은 어떻게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살 수가 없죠. 그래서 지금 다시 피아노로 돌아왔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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