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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화웨이가 뭐길래’ 美 “창의적으로 때려라” vs 中 “그리 무섭냐?”

입력 2020-07-27 07:30 | 신문게재 2020-07-2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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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연결한 사진. (AFP=연합)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이 있다. 적대적 관계인 오나라와 월나라가 한 배를 탔다는 뜻으로, 아무리 서로 미워하는 사이라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단결해 서로 돕는다는 말이다. 위기 상황은 이전의 적대적 관계를 개선하고 서로 협력하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고 있는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과 시진핑 지도부의 중국은 위기가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에 해당한다. 미국과 중국의 공관 폐쇄 요구를 계기로 미·중 긴장은 40여년 전 외교관계가 정상화된 이래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종종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해 ‘리스펙’을 표현해왔지만 양측의 마찰접점은 무역과 기술, 인권 문제 등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기술전쟁이, 그 갈등의 한복판에는 화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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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의 스크린에 ‘화웨이’ 로고가 표시되는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

   

◇ 美 “中은 괴물(프랑켄슈타인), 창의적으로 압박해야”

 

코로나19 국면에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바이러스 확산의 원흉으로 중국을 지목하면서 동맹국을 중심으로 반중(反中) 전선을 넓혀가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도 급부상하는 중국 공산주의로부터 자유세계 진영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이다. 

 

미국의 외교수장은 중국을 괴물(프랑켄슈타인)에 빗대며 공세적으로 나섰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요바린다의 닉슨도서관에서 ‘중국 공산당과 자유세계의 미래’를 주제로 한 연설에서 “닉슨 대통령은 한때 중국 공산당을 세계에 개방시켜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버렸다고 걱정했다”며 “그리고 그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1969년~1974년까지 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인 1972년 중국을 방문했고 일련의 접촉을 통해 1979년 양국의 수교를 이끌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전세계 자유를 사랑하는 국가들이 더욱 창의적이고 단호한 방법으로 중국이 변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베이징의 행동은 우리 국민들과 우리 번영을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일 자유세계가 공산주의 중국을 바꾸지 않는다면, 공산주의 중국이 우리를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강대국 미국은 중국을 단독으로 상대하기엔 위협적이라고 보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이 저지른 많은 실수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중국과의 기술전쟁, 무역전쟁을 미국이 홀로 치르려고 한 점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폭탄 위협에 최우선 타깃은 물론 중국이었지만, 적과 아군의 식별도 안 되는 트럼프발 관세폭탄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서로 싸우고 물고하는 동안 이익을 얻는 건 중국이라고 FT는 지적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 우선주의’와 고립주의 정책으로 세계무대의 리더 자리에서 발을 빼는 동안 그 빈자리를 접수해온 것은 중국이었다.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와 유엔 산하 기구 등에서의 영향력을 지렛대로 벌써 수십 개 국에 달하는 신흥국을 중국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미국과 EU가 협력해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기준이나 전략을 수립하지 못하는 동안 벌어진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EU가 서로를 겨냥한 관세폭탄 위협을 거두고 5G 망에서 중국 화웨이를 배제해 미국의 퀄컴과 유럽의 노키아·에릭슨을 중심으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나온다. 중국에 대항하려면 미국과 EU가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5G망에서 화웨이를 배제하는 움직임에 영국이 동참한데 이어 프랑스도 배제 방침을 정하면서 사실상 이러한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독일을 비롯해 나머지 EU 회원국들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으나,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EU집행위는 24일 회원국들에 5G 공급업체를 다양화하기 위해 즉각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는 화웨이를 유럽시장에서 사실상 우회적으로 퇴출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EU가 화웨이를 배제하면 노키아와 에릭슨에 보복하겠다고 경고한 상태로 EU 등의 ‘화웨이 배제’ 움직임을 둘러싸고 한차례 진통이 예상된다.

 

오는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주요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앞서고 있는 민주당의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미중 대립 상황이 멈추진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패권 견제가 계속되는 한 말이다. 다만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는 달리 동맹국들과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EU가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그림도 아예 불가능하진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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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중국 베이징의 화웨이 매장 (AP=연합)

 

 ◇ 中 “화웨이가 그리 무섭냐?”

 

지난 몇 달간 미국과 중국간 분쟁의 접점이 점점 더 늘어나면서 중국 지도부가 아닌 일반 중국인들의 의식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중국 저널리스트 무춘샨은 현지시간 23일 미 외교매체 ‘더 디플로맷’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이전에는 온건파였던 중국의 학자들이 트럼프 행정부가 미중 관계를 ‘신냉전’으로 끌어들였다고 믿으면서 ‘전사’가 되고 있으며, 미국을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중국인들의 생각 속에 미국은 가상의 적(敵)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사회를 통틀어 애국주의 정서가 치솟고 있으며, 중국 언론에서 미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소개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의 반미(反美) 기류는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에 제재를 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면서 최악으로 치솟았다고 한다. 

 

화웨이는 어떤 회사일까. ‘화웨이’라는 기업명은 ‘중화를 위하여’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기업이념은 ‘늑대 정신’이다. 상명하복식 군대문화로 유명하다. 1987년에 설립된 이래 전세계 170여 개 국에 진출했으며, 연구개발 인력 8만 명을 포함해 18만 명의 임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미국의 화웨이 압박이 점점 노골적으로 되어간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액은 8558억 위안(약 148조 원)으로 전년보다 오히려 19% 늘었다. 순이익은 627억 위안(약 10조 8000억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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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가 지난 5월 16일 사내 게시판에 올린 전투기 사진. 1944년 2차 세계대전에서 총탄 수십발을 맞고도 무사 귀환한 소련 전투기의 비행 모습으로, ‘상처없이 야성을 기를 수 없을 터. 영웅은 자고로 고난 속에 태어나는 법’이라는 글이 씌여 있다. 미국의 반도체수급 제재에 결사항전의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글로벌타임스 캡처=연합)

 시장조사업체 델오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5G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 1위는 화웨이(점유율 35.7%)다. 그 뒤를 이어 에릭슨(24.8%), 노키아(15.8%), 삼성전자(13.2%) 순이다. 중국의 기술굴기를 대표하는 이 기업은 트럼프발 무역전쟁, 기술전쟁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 창업주이자 회장인 런정페이라는 인물이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장교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화웨이가 창업 초기 인민군 납품 물량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미국은 중국 정부가 화웨이의 실제 주인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있다. 런정페이의 장녀이자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캐나다에서 체포돼 전자발찌를 차고 자택에 구금돼 있다.

 

화웨이를 보는 미국 등 서방진영과 중국 내부의 시각차는 크다. 미국 관리들은 화웨이를 중국 정부의 스파이로 보지만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화웨이의 성장을 중국인들의 근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고 한다. 중국은 미국이 화웨이를 공격하는 것은 화웨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춘샨은 권위주의적인 중국 정부가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을 야기했을 수 있다며, 중국 정부는 현재보다 더 투명해질 필요가 있고 당국의 조치는 명확한 경계선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그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 행보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있는 모든 사기업이 중국 정부의 어떠한 지시에도 복종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추측에서 미국이 화웨이와 중국 정부의 관계를 확대해석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과 미국간의 인식차이가 미국이 화웨이를 왜 두려워하는지 설명해줄 보다 더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웨이는 중국 정부의 불합리한 요구에 ‘노’(no)라고 말하기 충분할 정도로 이미 강한 기업이라며, “거대한 비즈니스 제국을 문 닫게 하기는커녕 감히 처벌하지도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많은 중국인들은 미국이 화웨이를 공격하는 것을 보며 미국이 법의 지배를 받는 국가가 아니라 정치가 법 위에 있는 나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진 발언 듣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대전 유성에 위치한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첨단 무기와 군사장비를 시찰한 뒤 연구진 격려간담회에서 연구진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을 위협하는 미중 갈등

 

G2가 치고 받을 때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는 것이 현실적인 외교 전략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양국의 대립이 치열해지면 치열해질수록 그러기가 어려워진다. 

 

미국은 중국과의 대립 국면에서 동맹국인 한국에 안보 우산을 제공하면서 경제협력을 확대해 미국 쪽으로 끌어내려는 생각이다. 중국 또한 한국의 대중 무역의존적인 상황을 사드 사태 때처럼 중국의 의지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예상된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공화당 소속으로 6선을 지낸 찰스 부스타니 전 하원의원은 23일 워싱턴에서 화상으로 진행된 행사에서 한국정부는 미중 관계 악화에서 자체 설정한 대북접근법, 미 정부의 방위비 분담금 증대 요구, 사드배치 이후 계속된 한중간 경제전쟁의 3중고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G2간 대립이 치열해질수록 한국의 경제·외교 해법은 고차방정식이 된다.

 

김수환 기자 ksh@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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