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전국 > 서울·수도권

[이승식 기자의 세상만사] 연서(戀書)

입력 2020-06-16 10:3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하룻밤만 자고나면 세상이 몰라보게 변해버리는 첨단 디지털(digital)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편지 쓸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겨우 손바닥 크기의 휴대용 전화기로 상대방과 얼굴을 마주 보며 영상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누구라도 펜으로 편지를 쓴다는 불편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첨단(尖端) 기술을 이용한 영상통화가 비록 얼굴은 마주 보며 웃으며 얘기할 수는 있지만 어쩐지 편지보다는 진실성이 부족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화 통화야 인파가 북적이고 시끄러운 곳에서도 할 수 있지만 편지를 쓰려면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라야만 오직 상대방을 생각하며 한자 한자 정성 들여 생각을 옮겨 쓸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9년 전 2011년 5월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 안정 나 씨 묘역에서 미라와 함께 출토된 편지가 500여 년 전에 쓴 것으로 밝혀져 가장 오래된 편지로 인정받았습니다.

당시 군관으로 발탁되어 함경도 경성(鏡城) 지역으로 부대 배치를 받은 군관이 사랑하는 처자식 얼굴을 보지 못하고 부대로 떠나며 보낸 편지입니다.

간추린 내용은 “여기 분(粉:화장품) 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가서 어머님이랑 애들이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다가 못 보고 그냥 가네.中略...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 어머니와 아기를 모시고 다 잘 계시소.”中略... 옷가지 등을 챙겨 보내달라는 말로 편지의 끝을 맺습니다.

홀로 계신 어머님은 물론 처자식을 보지 못하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수없이 뒤돌아보았을 군관의 모습과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 시대에 분과 바늘은 대단히 귀한 공산품으로 수출입이 원활치 않던 시절이니 구입하기가 정말 어려웠을 것이나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구했을 것입니다.

1998년 4월 경상도 안동에서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와 함께 출토된 한지에 언문으로 쓴 편지 한 장을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사랑의 머리카락(Locks of Love)으로 소개했습니다.

사랑과 영혼(Ghost) 한국판 주인공이 쓴 편지가 전파를 타고 한 구절 한 구절 소개되며 230여 개 국 시청자들의 관심 속에 전 세계인을 울리고 말았습니다.

“당신 언제나 우리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속삭였지요.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 없이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나를 데려가세요.中略...

당신을 향한 마음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을 어디에 두고 어린 자식과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내 편지 보시고 꿈속에라도 찾아와 말씀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써서 넣어 드립니다.”中略.....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삼으며 병든 남편의 쾌유를 간절히 기원했건만 남편은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애절한 심정으로 쓴 편지를 미투리와 함께 한지에 곱게 싼 다음 관속에 넣었는데 북망산 가는 길에 신고가라는 가슴 짠 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400년이란 세월이 흐른 탓에 언문으로 쓴 편지 내용이 상당 부분 훼손되어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야만 했던 젊은 부인의 애절함이 구구절절합니다.

조선시대 대 학자 다산(茶山) 정약용은 강진 땅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홀로 청춘을 보내버린 아내가 보내온 색 바랜 치마를 받아들고 가슴 깊이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를 보내왔네, 천리 먼 곳에서 마음을 담아 보냈구나, 오랜 세월에 붉은빛바랜 것이 늙은 내 모습 같아 처량하기 짝이 없구나.”中略.....

사대부집 여인으로서 차마 드러내놓고 사랑한다는 표현이야 못했지만 귀양살이 간 지아비를 기다리다 젊음을 불태운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해함이 뚝뚝 묻어납니다.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신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는 우리나라 최초 여의사인 허영숙과 결혼을 했으나 짧은 신혼의 달콤함은 접어두고 부인이 곧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현해탄 넘어 일본에 있는 아내를 그리며 춘원은 “이렇게 홀로 건넌방에 앉아 당신께 편지를 쓰는 것이 나의 유일한 행복입니다.”라고 서두를 시작합니다.

“금일 송금한 돈 140원을 잘 받았을 줄 아오, 공부가 곧 저금이니 저축은 아니 해도 좋소, 여름에 레인코트 같은 옷이 필요할 것이니 모두 값을 적어 보내주시오.”中略.....

비록 두 번째 결혼이기는 하지만 깨소금이 쏟아진다는 신혼 초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간 부인에게 공부가 곧 저금이란 말이 코끝을 찡하게 합니다.

처가살이를 하고 있던 춘원의 당시 월급이 150원이었다는데 140원을 보냈으니 부인에게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헤아려준 자상한 남편의 배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언뜻 보이던 연녹색이 검푸른 초록으로 변해 사랑하기에 알맞은 이 계절, 사랑하는 사람에게 표현하지 못하고 감춰두었던 연정(戀情)의 얘기를 예쁜 편지지에 로맨틱하게 그려내 보세요.


이승식 기자 thankslee57@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