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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이드①] 연극 ‘언체인’ 안유진과 정인지 “젠더프리…죄의식과 책임감 사이”

입력 2020-05-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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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체인 정인지 안유진
연극 ‘언체인’ 싱어 역의 정인지와 마크 안유진(사진=썸스테이지 서정준 기자)

 

“안유진 배우가 하는 역할은 ‘명동로망스’의 전혜린조차도 ‘여성’의 느낌이 아니에요. ‘사의찬미’ 윤심덕도, ‘마리아 마리아’의 마리아도 그래요.”

연극 ‘언체인’(6월 21일까지 콘텐츠그라운드)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마크 안유진에 대해 싱어 정인지는 “여성이 아닌 인물로 무대에 서 있는 배우”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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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언체인’ 마크 역의 안유진(사진=썸스테이지 서정준 기자)

“우리가 생각하는, ‘여성성’이라고 착각하는 표현이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배우죠. ‘언체인’의 마크도 아빠고 남편이지만 ‘남성성’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심리적인 면을 보여줘요. 여자 배우가 연기하는 남자 배역이 아니라 인물로 보이는 거죠. 그건 평소 가진 생각이 캐릭터에 투영된다고 생각해요. 사람으로 접근하느냐, 성별 등 어느 한 부분의 역할로 접근하느냐의 문제거든요.”

 

‘언체인’은 실종된 딸 줄리를 찾는 마크(안유진·이강우·정성일·김유진, 이하 관람배우·시즌합류·가나다 순)와 그 실종에 관련된 싱어(정인지·최석진·신재범·홍승안)가 풀어가는 미스터리 심리극이다.

 

방은진 감독, 박성웅·오승훈 주연의 영화 ‘메소드’에 등장하며 2017년 초연돼 2019년에 이은 세 번째 시즌이다. 

 

죄의식에 잠식된 싱어와 죄의식이라곤 없는 마크가 뒤섞여 버린 기억의 파편을 맞춰가는 과정을 따르는 작품이다. 

 

단 두명의 배우가 마크와 싱어, 마크의 아내 클레어, 클레어의 전 남편이자 싱어의 동성연인 월터, 클레어와 월터의 딸 줄리, 간병인, 싱어의 아버지 등으로 분하며 기묘한 심리전을 진행시킨다. ‘정글라이프’ ‘와이프’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등의 신유청 연출작으로 세 번째 시즌에는 젠더프리(성별에 상관없는) 캐스팅으로 눈길을 끌었다.


◇2인극의 묘미, 배우마다 달라지는 태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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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언체인’ 공연장면. 마크 역의 정성일(왼쪽)과 싱어 정인지(사진제공=콘텐츠플래닝)

 

“연습하면서 저희 사이에서도 얼핏 남자 배우들끼리만 하던 거랑은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여배우들이 하는 해석이 달라져서 깨닫기도 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했죠.”

안유진의 전언에 정인지는 “마크도, 싱어도 접근할 때 기본적으로 가진 여성성 혹은 남성성을 드러내는 건 상대적으로 쉽고 매력적인 방법”이라며 “하지만 저도 마크 언니들(안유진·김유진)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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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언체인’ 공연장면.싱어 역의 최석진(왼쪽)과 마크 안유진(사진제공=콘텐츠플래닝)

“그렇다고 ‘남자처럼 하겠다’거나 ‘남자처럼 보여야 해’가 아니에요. 성별을 아예 의식하지 않고 접근하는 거죠. 쉬운 방법을 두고 우회할 때의 매력이 묘한 느낌으로 다가오거든요. 한번 더 고민하게 되고 더 잘 들리게 되고…‘언체인’ 무대에서 정말 많이 느끼고 있어요.”


이어 “저를 만나는 (마크 역의) 정성일 오빠, (이)강우도 남성성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정인지의 말처럼 배우들만으로도 전혀 다른 극으로 변모하는 ‘언체인’은 젠더프리 캐스팅을 통해 또 다른 변화를 꾀했다.

안유진 역시 “무의식적으로 교육받는 게 있어선지 대사 접근법 자체가 달라진다”며 “싱어들 대사가 완전 다르게 느껴지니까 제 반응 자체도 달라진다”고 말을 보탰다.

“자기가 잘못한 거라고 자기 학대를 하고 있는 (정)인지 싱어를 보면 화가 나요. 멈추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홍)승안이의 싱어는 미안하고 눈치가 보여요. 너무 슬픔에 빠져 있으니까요.”

더불어 “폭력적인 데 어색함이 드러날까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며 싱어의 머리채를 잡는 신을 예로 들었다. 그리곤 “(최)석진 마크만 머리채를 잡는 것으로 표현한다. 석진이가 머리채를 잡혀야 감정이 온다고, 꼭 필요하다고 부탁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을 보탰다. 정인지는 “완전 다른 매력”이라고 표현했다.

“언니들이랑 할 때는 제 안에서 섬세하지 않으면 밖으로 표출되는 게 섣부르고 어설퍼 보이게 되는 것 같아요. 진짜 심리전으로 들어가게 되죠. 성일 마크를 만날 때는 바이오리듬이 좀 더 크게 나갈 수 있어요. 신체를 좀더 과감하게 쓸 때도 그렇죠. (이)강우 배우와는 피지컬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계산을 잘못해서 생기는 오류들도 있어요. 목을 조르고 넘겼는데 제가 강우 팔 길이 계산을 잘못해서 팔목으로 의자를 들었어요. 순간 팔이 빠져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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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언체인’ 싱어 역의 정인지와 마크 안유진(사진=썸스테이지 서정준 기자)

 

이렇게 전한 정인지는 “마지막 안아주는 신에서도 분명 약속을 했는데도 저는 생각보다 낮고 강우는 생각보다 높아서 다리가 꼬인 적도 있었다”며 “서로 진짜 더 열심히 준비하고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끌려간다거나 부딪히는 등 자극을 줬을 때 반응하는 데 성별리 달라서 더 폭력적이거나 불편하게 보이는 건 너무 싫거든요.”


◇대본 바꿔 읽기, 여전히 어려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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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언체인’ 싱어 역의 정인지(사진=썸스테이지 서정준 기자)

“연습하면서 대본을 바꿔 읽어본 적이 있었어요. 대본 분석도 되기 전이었는데 싱어 대사들 중 뾰족하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어요. 상대방을 상처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본인을 학대하는 말들이죠. 엄청 못되게 대사를 하는데 여자 싱어들이 말할 때는 가슴이 아픈데 남자 싱어들은 슬퍼요.”


이어 안유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송곳이 돋힌 듯한 나쁜 말들을 하는데 마크 입장에서는 그 송곳이 나를 향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싱어 스스로를 찌르고 있으니 너무 아프게 느껴졌다”고 털어 놓았다.

 

정인지는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여자들에겐 ‘자기 학대’가 기본적으로 탑재돼 있다”고 동의를 표했다.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내가 뭘 잘못했지?’부터 생각하거든요. 자기 잘못이 아닐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저 역시 그래요. 대본을 바꿔 읽어보면서 싱어는 마크보다는 괜찮구나 했어요. 싱어는 마크의 머릿속에 혼재된 생각의 복합체거든요. 하지만 마크는 정말 정당성을 찾아야하는 인물이죠. 마크 캐릭터를 잡고 해결해 나가야하는 언니·오빠들이 너무 어려웠죠.”

이렇게 전한 정인지는 “대본을 분석하면서 도표까지 만들었었다”며 “연출부와 배우들이 함께 하는 공부방에 사건일지부터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 그 거짓말을 정당화하는 과정, 그걸 믿어버리는 과정까지 인물을 이해하기 위한 방대한 자료들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초반부터 강아지를 죽이는 신이 있는데 저한테는 너무 힘들어요. 동물학대에 심한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거든요. 게다가 작년에 데리고 온 유기견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우리 곁을 떠났어요. 우리 가족이 정말 사랑으로 치유시켰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이가 우리를 치유했었더라고요. 그런 감정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보니 처음 대본 분석을 할 때 그 부분을 블러(Blur) 처리를 해서 읽었던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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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언체인’에서 공연 중인 싱어 역의 정인지(왼쪽)와 마크 안유진(사진제공=콘텐츠플래닝)

 

그렇게 그저 글자로 흘려버린 부분은 첫 리딩부터 고통으로 다가왔다. 정인지는 “몇 단락 안되는 강아지 대사에 행동묘사를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 아이(반려견)가 가기 전 너무 힘들어 하는 걸 다 봤는데 차마 말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저 스스로도, 언니들도 방법을 찾아봤는데 필요한 요소라서 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결국 감정을 싣지 않고 책을 읽듯 혹은 리포팅을 하듯 하고 있어요.”

이어 정인지는 연극 ‘언체인’의 특별함에 대해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생각하고 있는 대사”라며 “내가 저지른 죄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연옥에 갇힌 것처럼”을 꼽았다.

“상황에 갇혀서 어떤 순간엔 내가 그들을 봤다가 어떤 순간에는 그들이 나를 봤다가 또 어떤 날은 그들이 날 죽이도록 내버려뒀다가…끊임없는 반복 속에 인물들이 있죠. 제가 알고 있는 지옥이 그런 곳이라고 들었거든요. 공간 안에서 내가 지은 죄를 쳐다보고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게 지옥이라고 해요. 잊어버리고 싶고 회피하고 싶은데 계속 마주보게 만드는 상황이죠. ‘언체인’ 무대를 보면 한쪽으로 다 몰려 있어요. 기둥부터 책장까지. 그 반대편은 덩그러니 의자 하나, 거울 하나 뿐이죠.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 같아요.”


◇안유진의 ‘트레이스 유’, 정인지의 ‘데미안’ 그리고 ‘언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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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언체인’ 싱어 역의 정인지와 마크 안유진(사진=썸스테이지 서정준 기자)
“여성 서사, 젠더프리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게 ‘언체인’ 같아요. 저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음 시즌에서도 여배우를 선택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판단하게 되겠죠. 남자 캐릭터에 여자 배우를 선택한 게 옳았는지, 성공했는지 판단할테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안유진은 2016년 남성 2인 록뮤지컬 ‘트레이스 유’의 유일한 여성 캐스트로, 2016년 아내 엘리자베스, 2017년 첫사랑 엘마이라로 초·재연을 함께 했던 ‘에드거 앨런 포’의 2019년 소극장 버전에서 최초의 여성 그리스월드로 일찍부터 젠더프리, 캐릭터프리에 나섰던 배우다.

“여자로서 ‘트레이스 유’는 제가 처음 하는 거였는데…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었지만 객석을 많이 못 채운 데 대한 죄의식이 좀 있어요. 여배우들이 가진 묘한 딜레마예요. 여자 배우를 캐스팅하면 역시 티켓이 잘 안팔린다는 선례를 남긴 셈이잖아요. 남자 배우들도 물론 흥행이 신경쓰이죠. 하지만 저는 개인이 아닌 전반적인 여자 배우들에게 영향을 미치니 책임감이 생겨요.”

안유진의 말에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를 표하는 정인지도 ‘마리 퀴리’ ‘난설’ ‘테레즈 라캥’ 등과 ‘데미안’으로 여성 서사극과 젠더프리 작품에 출연했다.

“뮤지컬에서 여성 서사를 다루는 시각이 완전 바뀌었다고 느낀 작품이 ‘마리 퀴리’예요. 마리가 여성이기 때문에 하는 일들, 성 역할이 없어요. 사실 마리는 그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불편했을지언정 ‘내가 여자라서 과학아카데미에서 안받아줘!’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각인 거죠. 저는 그런 복받은 시대를 살아가는 배우죠.”

그리곤 “그런 의미에서 ‘언체인’은 파격 캐스팅”이라며 “아빠, 엄마, 아내 등 성을 구분하는 호칭이 나오는데도 성별을 탈피한 과감하고 재밌는 캐스팅”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작품을 함으로서 ‘우리가 하니까 더 섬세하지?’가 아니라 맛이 다른데 이 맛도 괜찮다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기회만 주어지면 그런 맛을 훨씬 더 잘 표현할 배우들이 무궁무진하거든요. 저희 이후에도 이 역할들을 하는 다른 여배우들이 궁금해지면 좋겠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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