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ife(라이프)

[비바100] 마띠와 마이야의 거리는 왜 2미터일까

입력 2020-04-27 07:00 | 신문게재 2020-04-27 11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핀란드 CF
버스정류장에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핀란드인의 모습을 담은 CF. (비메오 영상 갈무리)

 

핀란드인 마띠와 마이야가 버스정류장에 서있다. 그들의 거리는 대략 2미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코로나가 지구촌을 뒤흔들기 전부터 그들의 ‘사회적 거리’였다. 서로에게 말을 걸진 않는다. 말을 못 해서가 아니다. 일상적인 대화가 거의 없는 핀란드의 ‘침묵 문화’다. 말 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순간에 어색함은 없다. 그들은 침묵의 언어를 잘 알고 있으니. 

 

2020042601001995600091872
핀란드 정부가 공개한 버스정류장 이모지. (핀란드 외무부 제공)

 

◇ 그들의 거리는 2미터·말보다 값진 ‘침묵의 언어’

두 사람이 거리를 유지하며 서 있는데 또 다른 누군가가 다가온다. 그러면 그 옆에 있던 사람이 거리를 두며 천천히 멀어진다. 3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있는 모습, 우리가 보기엔 참 독특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은 그 ‘거리’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이게 타인의 사생활과 자신의 공간을 존중하는 그들의 방식이다.


인구가 적은 이 나라에서 버스 정류장에 3명이 서 있다면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편에 속한다. 독특한 이곳의 버스정류장 풍경은 인터넷상에도 확산되며 널리 알려졌다. 핀란드 정부는 이모지(이모티콘)로까지 제작해서 공개하기도 했다.

“핀(핀란드인)들은 타인의 프라이버시와 개인 공간을 존중하며, 타인에게도 같은 걸 기대한다. 우리는 다른 자리가 있다면 타인의 바로 옆자리에 앉지 않으려 한다. 핀란드인에게 말을 걸 때는 너무 바짝 붙어 서지 말기를. 그렇지 않으면 (그가) 천천히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걸 보게 될 테니.” 이모지를 공개한 핀란드 외무부의 설명이다.

그렇다. 그들은 내성적이다. 이건 무뚝뚝한 것과는 다르다. 그들도 대화를 좋아하고 친절한 면도 있지만 내성적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핀란드인들은 다른 이를 놀리기보다 스스로를 낮추며 자기비하적인 방식으로 웃기는 것을 좋아한다. 카롤리나 코르호넨의 저서 ‘핀란드인들의 악몽’에는 이런 핀란드인들의 특징이 잘 묘사되어 있다. “식료품점에 갔는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가 사려는 물건을 보면서 앞을 가로막고 있으면, 나는 다른 물건에 관심 있는 척 하면서 그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갈 때까지 그냥 기다린다. 매장에서 나눠주는 무료 샘플을 갖고 싶지만 점원과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려고 샘플을 받지 않는다. 그런 후 그 물건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핀란드인들은 너무 사람 눈치를 보는 걸까? 하지만 의외로 그들의 모습에서 한국인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핀란드에는 이런 유머가 있다. “내성적인 핀란드인은 대화할 때 자기 신발을 쳐다보고, 외향적인 핀란드인은 상대방의 신발을 본다.” 실제로 그런지 핀란드인에게 물어보니, “한 100년 전쯤엔 진짜로 그랬대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요즘의 핀란드인은 많이 바뀌었다고.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성격이라도 대부분은 상대의 눈을 본다고 한다. 잡담을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대화하다 얘기가 도중에 끊겨도 어색함이 없다. 그냥 상대가 특별히 할 얘기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화가 끊겼다고 해서 꼭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finnish nightmares
(‘핀란드인의 악몽’ 트위터 계정 갈무리)

 

그리고 진정성이 있다. 무슨 말을 할 때는 진심을 말하는 것. 핀란드인들이 “안녕하세요?”라고 하면 그냥 지나가는 인사말이 아니라 진짜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 것이다. “언제 술 한 잔 해요”라고 말한다면 그건 조만간 상대에게 연락을 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 말을 들은 상대도 연락을 기다린다. 그들의 말에는 무게감이 있다. 단어의 선택에 신중하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한다. 적게 말하고 불필요한 잡담을 피한다. ‘침묵은 금이고 말은 은이다’라는 속담처럼.

핀란드인들이 꼽는 전형적인 핀란드 사람은 혼자만의 공간과 침묵을 사랑하며, 지나칠 정도로 예의 바르다. 그들은 스스로를 내성적이라기보다는 차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차분함은 자동차 운전대를 잡으면 온데간데없어진다. 도로를 질주하며 스피드를 즐기는 레이서가 되기 때문이다.


◇ 마띠와 마이야처럼 행복하기

핀란드인을 이해하려면 그들처럼 숲을 걸어봐야 한다.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핀란드인들의 영혼은 초록색의 숲, 나뭇잎의 바스락거림과 연결돼 있다. 숲에서 길을 잃을까 두려워할 염려는 없다. 숲은 그들을 헤치는 곳이 아니라 감싸주고 보호하며 치유해주는 곳이다. 숲속에서 돌아다니고 사색하다가 열매를 따본다. 블루베리를 양손 가득 따서 향을 맡아본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된다. 마침 출출하다면 숲에서 딴 블루베리로 파이를 구워서 우유랑 같이 먹는다. 핀란드의 숲이 배고픈 영혼을 달래주리라.

 

L1006966
(사진=핀란드 이미지 뱅크)

 

핀란드의 많은 지역은 물로 덮여 있다. 그래서 호수의 나라라고도 부른다. 18만8000개의 호수가 있다. 핀란드에서 극과 극은 통한다. 그들은 푹푹 찌는 사우나와 차디찬 얼음물 수영을 즐긴다. 휴식이 필요한 몸과 마음은 사우나에서 쉼을 얻는다. 530만 명의 인구에 200만 개 이상의 사우나가 있다. 한 집에 한 개꼴이다. 핀란드 의회 안에도 사우나가 있다. 정기적으로 사우나를 찾지 않으면 삶에서 무언가 부족함을 느낀다. 몸과 정신을 청결히 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한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 사우나다.

과거에 핀란드 여성들은 사우나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이곳에서 마지막 목욕을 했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사우나를 찾았다. 그들은 교회에서 행동하는 것처럼 사우나에서 행동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만큼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청결을 위한 장소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긴장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면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맥주도 한두 잔 하면 된다.

하지만 격식을 차린 회사의 회의 자리보다도 알몸으로 들어간 사우나에서 더 중요한 결정이 내려질 때가 많다고. 여성과 남성은 별도로 사우나에 가지만 가족은 함께 들어간다. 만일 혼성그룹이 사우나에 가게 되면 누가 누구와 함께 갈지 서로 의논해서 결정한다. 사우나를 하면 땀이 많이 배출되기 때문에 수분을 많이 섭취해줘야 한다. 핀란드인들은 맥주나 사이다를 즐긴다. 소시지를 화로에 직접 구워 먹기도 한다. 하이라이트는 사우나를 한 후 느끼는 행복감, 몸과 마음이 정화된 상쾌한 기분에 있다.

얼음물 수영도 빼놓을 수 없다. 얼음물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에 비밀이 있다. 차가운 물에서 나올 때 피가 돌면서 몸에 확 퍼지는 느낌. 상쾌하고 행복한 기분. 그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Avanto, hole in the ice, ice swimming_isokenkaisten klubi
핀란드의 얼음물 수영 (사진=핀란드 이미지 뱅크)

 

IMG_2398-Edit_hanna soderstrom
핀란드 사우나 (사진=핀란드 이미지 뱅크)

 

핀란드에는 춥고 어두운 겨울과 따뜻하고 햇살이 가득한 여름이 있다. 9월에서 3월 사이 겨울의 밤하늘은 오로라가 채운다. 북쪽으로 갈수록 오로라를 볼 가능성이 커진다.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에서는 일 년에 200일이나 오로라가 떠있다. 수도 헬싱키와 남부에서는 도시의 불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서 겨울에 약 20일 정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 오로라를 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자정 전후 한두 시간이다. 어떤 때는 20초 정도 나타나기도 하고, 한 시간 동안 계속되기도 한다.

북유럽 소수민족인 사미족에는 여우가 북극의 산지를 달리면서 꼬리로 눈을 휘저어 일으킨 불꽃으로 하늘에 불을 붙여서 오로라가 생겼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핀란드어 ‘revontulet’(오로라)에는 ‘여우의 불’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 역시 신화에서 나온 말이다. 물론 오로라를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태양풍이 하전입자를 지구 쪽으로 방출하고, 그것이 대기와 충돌하면서 생산되는 에너지가 빛을 발생시키는 현상이지만 핀란드인들은 사미족의 신화를 더 마음에 들어한다.

5월에서 8월까지 북쪽의 여름엔 태양이 24시간 떠있다. 한밤중에도 태양을 볼 수 있는 백야 현상이다. 한밤중의 태양은 6월과 7월에 가장 강하다. 북쪽으로 갈수록 태양이 머무는 시간이 더 길다. 최북단에선 5월부터 8월까지 완전한 한밤의 태양을 경험할 수 있다. 핀란드 라플란드의 최북부에서는 태양이 70일 연속 지평선 위에 머물러 있다. 여름에는 대형음악 페스티벌과 전통시장, 축제 등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이 짧은 여름을 열정적으로 즐긴다.

김수환 기자 ksh@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