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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피아노 ‘방랑자’ 조성진 “제가 있는 곳이 곧 집이죠”

[人더컬처] 새 앨범 '방랑자' 발매 조성진

입력 2020-04-14 06:00 | 신문게재 2020-04-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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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피아니스트 조성진ⓒChristoph Kostlin(사진제공=DG)

 

“제가 파리로 유학을 갔을 때가 2012년이에요. 한국에서 살다 파리로 간 처음 몇년 동안은 어디가 집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방학이나 연주 때문에 한국에 가면 거기가 집 같고 다시 파리로 오면 거기가 또 집 같고….”

쇼팽, 드뷔시, 모차르트에 이어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과의 네 번째 스튜디오 레코딩 앨범 ‘방랑자’(The Wanderer) 발매를 앞두고 있는 조성진은 전세계를 누비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쇼팽콩쿠르를 하고 베를린으로 이사를 오고 생각해봤죠. 제가 베를린에 있는 기간은 1년에 넉 달 정도예요. 그렇게 많은 건 아니죠. 항상 돌아다니며 연주하는 게 제 직업이니까요. 그런데도 베를린에 돌아오면 집 같아요. 호텔 역시 또 편해서 집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있는 곳이 집’이라고 결론 내렸죠.”

그리곤 “가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원래 외동아들이고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힘들거나 외롭진 않다”며 “연주를 하러 다니면서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다른 뮤지션 등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까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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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Christoph Kostlin(사진제공=DG)
5월 8일 발매를 앞둔 조성진의 새 앨범 ‘방랑자’는 어쩌면 그 스스로의 정체성인 동시에 “리사이틀 프로그램처럼 꾸려보고 싶은” 도전이다. 



◇출발점,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지금까지는 쇼팽, 드뷔시, 모차르트 등 한 작곡가의 작품만 녹음했어요. 사실 한 작곡가만 레코딩하는 게 더 편하고 쉽긴 해요. 한번쯤은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짜듯 여러 작곡가들을 엮어 녹음을 해보고 싶었어요. 어떤 아티스트들은 콘셉트에 맞춘 레퍼토리 프로그램을 짜는 걸 참 잘하거든요. 근데 저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죠. 그래서 이번 앨범을 녹음할 때는 고심 끝에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을 무조건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다른 곡들을 정했어요.”

이번 앨범의 출발점이 된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의 ‘방랑자 환상곡’(Fantasy in C Major D 760 ‘Wanderer’)은 슈베르트 스스로도 “너무 어려워 칠 수 없다”고 했을 정도로 까다로운 곡이다. 이에 대해 조성진은 “이 곡은 테크닉도 어렵지만 테크닉의 어려움을 감추는 것이 제일 어렵다”며 “이 곡을 듣는 사람들이 이 곡이 어렵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냥 이 곡이 아름답구나, 드라마틱하구나, 서정적이구나…느끼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거든요. ‘방랑자 환상곡’가 제가 연주한 슈베르트 곡 중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곡이긴 해요. 그 어려운 테크닉 보다 음악이 먼저 들리게 하려면 일단 테크닉적으로 편해야 하죠. 2018년 말부터 이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무대에 오르면 오를수록 더 편해져요.”

이어 “게다가 이 곡은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곡으로 악장마다 캐릭터가 다르다. 그런 것들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방랑자 환상곡’은 조성진이 “기술적인 어려움보다 그 곡이 담아낸 상상력, 구조성, 진보성에 초점을 두는” 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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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Christoph Kostlin(사진제공=DG)

 

“보통의 소나타는 1, 2악장 간에 쉬어요. 하지만 ‘방랑자 환상곡’은 악장 간에 쉼 없이 한 악장처럼 만들어져 있죠. 그 진보적인 마인드가 또 하나의 상상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에 영향을 받아서 리스트도 악장 간 쉼 없는 소나타를 작곡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리스트가 ‘방랑자 환상곡’을 좋아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죠. ‘방랑자 환상곡’의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을 만들기도 했거든요. 그만큼 ‘방랑자 환상곡’은 슈베르트 시대에 흔히 찾아볼 수 없는 곡이었죠.”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은 수많은 옛 대가들의 명반으로 존재하는 곡이기도 하다. 그런 명반들과 견줄만한 유니크함에 대해 조성진은 “자연스러움”을 언급했다.

“어떻게 하면 더 특별해질까 라는 생각을 하면 더 부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아요. 억지스럽고. 그래서 제가 생각하고 제가 생각한대로 표현하는 게 오히려 제일 개성 있는 연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람의 목소리가 다 다르듯이 연주도 그렇거든요. 어떻게 하면 더 다르게 칠까 고민하기 보다 그냥 자연스러운 것 가장 개성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어려웠던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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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Christoph Kostlin(사진제공=DG)

 

그렇게 ‘방랑자’에는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의 ‘방랑자 환상곡’(Fantasy in C Major D 760 ‘Wanderer’) 그리고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와 알반 베르크(Alban Berg)의 ‘피아노 소나타’(Piano Sonata)가 녹음돼 담겼다.

“세곡의 공통점은 소나타 형식의 곡인데 악장마다 연결이 돼있어 쉬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한 악장의 소나타처럼 들리죠. 특히 베르크의 소나타는 한 악장의 곡이지만 몇 개의 주제를 가지고 한곡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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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Christoph Kostlin(사진제공=DG)
앨범명 ‘방랑자’에 대해서는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2악장 때문”이라며 “방랑은 낭만주의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단어였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슈베르트한테는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물론 리스트도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였고 한곳에 머물던 말년을 제외하고는 여기저기서 살았고 여행도 많이 다녔죠. 예술가, 피아니스트나 뮤지션이 방랑까지는 아니지만 여행을 많이 하잖아요? 이런 점이 이 시대 뮤지션과도 공통점이 있지 않나 싶어요.”

앨범 제목으로 ‘방랑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한 설명처럼 “작년 6월에 베를린에서 슈베르트와 베르크를, 작년 10월 함부르크에서 리스트 소나타를 녹음한” 뮤지션 조성진의 ‘방랑’의 결과물이다.

“리스트 소나타는 사실 30분짜리 곡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치는 게 너무 어려운 곡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녹음했어요. 부분, 부분 나누지 않고 한번에 연주하는 게 더 흐름이 좋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라이브처럼 들리게 녹음을 하려고 했죠.”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는 이번 앨범 작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곡이기도 하다. 조성진은 “저에게는 항상 연주보다 녹음이 어려운 작업”이라며 “잊어버리려고는 하지만 기록으로 남는다는 데 대한 부담감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아무래도 리스트의 소나타가 가장 어려웠던 곡이었던 것 같아요. 긴 곡이고 스케일도 크고…피아노 레퍼토리에서 가장 어려운 곡 중 하나거든요. 하지만 전 리스트를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연주했어요. 2011년 처음 무대에 오른 후부터 3년에 한번씩은 무대에서 연주했죠. 연주 때마다 곡에 대한 저만의 해석이, 음악적인 관점과 시각이 바뀌는 걸 느껴요.”

조성진은 앨범 작업시 수많은 테이크를 녹음하지만 결국 마지막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연주한 것이 앨범에 실리곤 한다. 이번 ‘방랑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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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Christoph Kostlin(사진제공=DG)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을 6월 베를린에서 녹음을 했을 때 녹음을 다 마치고 관객을 20~30명 불러서 연주회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했어요. ‘방랑자 환상곡’ 뮤직비디오의 장면이기도 한 그 테이크를 앨범에 담았죠. 녹음을 다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다 들어보니 관객들 앞에서 연주한 그 테이크가 저한테는 가장 괜찮게 들렸거든요. 그 테이크를 베이스로 앨범작업을 했죠.”

이렇게 전한 조성진은 “베르크 소나타도 마찬가지로 마지막 테이크를 썼다. 리스트 소나타는 관객이 없어서 프로듀서를 포함한 스태프 2, 3명 앞에서 연주했는데 마지막은 아니지만 이 테이크를 썼다”며 “콘서트나 연주회를 하듯 하는 작업이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레코딩 작업에는 두 종류의 아티스트로 나뉘는 것 같아요. 정말 레코딩 아티스트요. 글렌 굴드 같은 아티스트. 최근 제가 듣고 굉장하다고 생각한 ‘바흐’ 앨범을 출시한 비킹구르 올라프손이라는 피아니스트가 그렇죠. 그들은 저와는 다르게 관객이 없어도 완벽한 음악, 앨범을 만들어내죠. 하지만 저는 관객이 있는 게 조금 더 편한 것 같아요.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음악을 더 잘 만들어주는 거 같거든요.”


◇코로나19로 보다 소중해진 음악과 일상 그리고 추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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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Christoph Kostlin(사진제공=DG)

 

“저 역시 5년 만에 오래 쉬고 있어요. 30년이 넘는 경력의 마티아스 코르네(Matthias Goerne)도 30년 만에 처음이래요. 얼마나 이 상황이 어색하겠어요. 음악가들 중에는 워커홀릭이 많거든요. 그래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으로 수많은 공연들이 취소되는 가운데 조성진은 세계 피아노의 날(3월 28일)을 맞아 바리톤 성악가 마티아스 괴르네와 슈베르트 가곡을 연주해 온라인 생중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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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Christoph Kostlin(사진제공=DG)
“저도 관객 없이 연주 (온라인 생중계를) 하는 건 처음이었어요.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연주가 진행되면서 정말 콘서트를 하는 것 같은 에너지를 느꼈죠.”

더불어 도이치 그라모폰이 주최한 세계 피아노의 날 라이브 스트리밍에도 참여했던 조성진은 “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걸 보여주기는 처음”이라며 “피아노를 조율한 지 오래돼 소리가 조금 아쉬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저도 그 어느 때보다 음악을 많이 듣고 영화도 많이 보고 있어요. 음악은 우리 삶에 필요한 존재구나를 느끼고 있죠. 꼭 클래식 음악뿐 아니에요. 마땅히 할 게 없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 혹은 즐기려고 할 때 우리는 음악을 듣죠. 우리가 살아가는 데 음악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코로나19 사태로 음악의 중요성을 더욱 더 깨닫고 있죠. 더불어 일상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도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전세계 음악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며 “그냥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저는 피아노 음악을 오랜만에 많이 듣고 있어요. 특정 곡 보다는 연주자 위주로 듣고 있어요. 에밀 길렐스(Emil Gilels)도, 예핌 브론프만(Yefim Bronfman)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예요. 특히 브론프만은 작년 말에 처음 만나 그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어요. 연주자이자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됐죠. 그래서 그 분 연주도 많이 듣고 있어요. 작년 말 처음 들은 그의 음악이 뉴욕필과 함께 한 베토벤 4번(피아노 협주곡 제4번 G장조 Op. 58)이에요. 너무 좋았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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