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오피니언 > 브릿지칼럼

[브릿지 칼럼] 한국형 하류노인이 몰려온다

입력 2019-03-20 14:32 | 신문게재 2019-03-21 23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20180509010003206_1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할머니는 10년 전부터 폐지를 줍는다. 새벽 5시부터 시작이다. 늦으면 헛탕이다. 어떤 이는 새벽 2시부터란다. 점심은 무료급식소. 김치반찬의 집밥보다 진수성찬이다. 원래는 평범했다. 자녀는 없었어도 은퇴남편과 그럭저럭 살아왔다. 위기는 남편의 암 진단. 2년 투병에 집 팔고 2평짜리 월세 신세다. 남편 사망 이후 식당 잡일부터 청소까지 했지만, 곧 잘렸다. 폐지줍기는 이때부터. 리어카는 생계보장의 유일수단이다. 종일 쌀 한가마니 무게를 모아봤자 5000원도 안 된다. 


최근 한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다. 애잔함과 씁쓸함 그 이상의 스토리다. 현재 175만명의 노인이 할머니처럼 폐지줍기로 연명한다.

2020년이면 베이비부머 맏형(1955년생)부터 65세로 진입한다. 사실상 은퇴 개시다. 이후 20년간 1700만 명이 65세로 진입한다. 엄청난 규모의 인구 잉여화(?)다. 노년위기발 고령사회의 개막인 셈이다. 하류노인 대량 출현이다. 대부분 가난하고 외롭고 또 아픈 탓이다. 예외는 거의 없다. ‘1% vs. 99%’의 표현이 딱인지라 웬만해선 피하기 힘든 절대빈곤의 노년공포다. ‘빈곤·질병·고립’의 집중적인 불행예고지만, 여전히 현실은 가족책임이다. 정부지원은 기대 이하다. 설상가상 눈앞의 호구지책은 치사랑은 가로막는다. 부모 봉양하는 효자는 천연기념물 신세다.

하류노인은 예고됐다. 피한다고 피해질 함정이 아니다. 상대빈곤 49.6%는 일상적인 노년위기를 의미한다. 현역비율(14.7%)보다 월등한 OECD 1위다(2016년). 현역시절 중산층이었을지 몰라도 노년진입 후는 보장 못한다. 충격은 더 크다. 애초 가난했다면 숙명으로 받아들이지만, ‘중산층→빈곤층’의 박탈·좌절감은 상상초월이다. ‘중류중년→하류노인’의 비극이다. 일본에서 발행된 책 ‘下流老人(하류노인)’에 따르면 질병·사고, 시설부족, 자녀실패, 황혼이혼, 치매발병 등이 하류노인으로 전락하는 원인이다. 한국은 그나마 일본이 부럽다. 일본노인이야 평균적으로 쟁여둔 돈이 많지만, 한국은 다르다. 일본 의 공적연금 평균 수급액은 1인당 월 25만엔대다. 적자도 월 3만~4만엔대다. 물론 평균 예금자산 2000만엔은 별개다. 이런 일본도 노년빈곤에 난리이데 한국은 참으로 태평지옥이다.

하류노인에 중간은 없다. 평범함도 없다. 노노(老老)격차의 문제다. 하류노인에서 자유로운 이는 1%뿐이다. 축적재산이 많은 자산가나, 은퇴와 무관한 전문직·사업가가 아니면 근로단절·실업직면의 65세는 빈곤전락의 벼랑에 몰린다. 십분 양보해 퇴직연금 후보자도 전체의 7%뿐이다(대기업·정규직·노조가입). 지금도 위험수위다.

그나마 일자리가 정답이다. 단 70세 이후엔 그조차 어렵다. 찾아다니지만 잘 주어지지 않는다. 다행스러운 건 단기·저렴·불안정한 주변부 일자리다. 절체절명의 화두가 고령취업을 가까스로 만들어낸 경우다. 75세 이상 고용비율(17.9%)이 OECD(4.8%) 중 비교불가 1등인 배경이다. 마냥 호평하긴 어렵다. 반면 고령소비는 경직적이다. 먹거리는 줄여도 의료비는 힘들다. 문제는 앞으로다. 어떤 통계든 노년인구의 99%를 위협하는 한국형 하류노인은 절대다수의 빈곤, 유병, 고독 속에 급격하게 불어날 조건을 두루 갖췄다. 2020년은 곧이다. 내버려두기엔 시간은 짧고 공포는 크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