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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투자 '실탄'도 부족한데…반기업 정서에 경영권 '방패' 법제화는 게걸음

입력 2018-10-28 16:52 | 신문게재 2018-10-2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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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투기자본의 경영간섭 활동이 미국과 유럽을 거쳐 아시아 전역에 퍼지고 있다. 재계는 당장 미래 먹거리 창출, 경쟁국과의 기술격차 유지에 시간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외부세력의 침투로 인한 경영 주도권 강탈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28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의 상법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데, 이러한 제도가 시행될 경우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다량의 주식 매수 등을 통해 일정한 의결권을 확보한 뒤 기업에 자산 매각,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구조조정,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해 단기간 안에 수익을 내는 투자전략을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올해 4월에 있었던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의 경영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고 나섰던 사건이다. 이들은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개사의 보통주 주식을 10억 달러 가량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본관리 최적화, 주주환원에 등에 대한 로드맵을 공유하라고 요청했다. 그 뒤로 얼마 후 현대차는 14년만에 발행 주식 총수의 약 3%에 달하는 대규모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되면 전체 주식 수가 줄어 남아있는 주식의 가치가 높아진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엘리엇은 현대차-현대모비스 합병 후 지주사 전환, 모든 자사주 소각 등의 요구안을 지속적으로 제시했다. 엘리엣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때에도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히며 논란을 일으킨 바 있으며, 2016년에는 삼성전자를 지주회사, 사업회사로 분리한 뒤 사업회사를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키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소버린 자산운용이 SK를 상대로 경영개입을 시도했으며, 이를 통해 9400억원의 막대한 차익을 거두고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SK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백기사(경영진의 경영권 방어에 우호적인 주주) 모집 등에 약 1조원의 자금을 낭비해야 했다. 신규 사업에 투자할 수 있었던 자금을 경영권 방어에 소비했던 것이다.

이에 국회에서도 대표적 경영권 방어 수단인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등 이른바 ‘엘리엇 방지법’ 입법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여당과 시민단체들이 해당 법안들을 두고 재벌 경영권 세습을 위한 친(親)기업 정책이라고 반발하고 나서 입법에 난항이 예상된다.

환경부국정감사에서질의하는김태년
벤처기업에만 선제적으로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벤처기업육성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장(연합)

차등의결권은 적대적 M&A(인수합병) 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1주 1의결권’의 예외를 인정,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의 주식에 보통주 대비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포이즌필은 경영권 침해 시도 등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새로운 주식을 시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을 부여함으로써 적대적 M&A 시도자의 지분확보가 어렵도록 한다.

이와 관련해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달 중순 벤처기업에만 선제적으로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벤처기업육성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향후 법안의 실효성·투명성이 검증될 경우 대기업으로까지 적용대상이 확장될 수 있어 재계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다만 이를 반대하는 단체의 설득은 과제로 남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17일 논평에서 “민주당과 정부가 은산분리 원칙 훼손도 모자라 또 다시 재벌의 경영권 세습에 악용될 수 있는 차등의결권 도입을 추진한다면 거센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길준 기자 alf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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