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영화연극

[‘다’리뷰] 모두의 조선…우리 모두는 ‘들꽃’이었다! 뮤지컬 ‘1446’

세종의 일대기 다룬 뮤지컬 '1446', 여주시·국립박물관문화재단·KBS한국방송 주최, '라흐마니노프' '파리넬리' 등의 HJ컬쳐 제작
김은영 작곡가·음악감독의 연출 데뷔작. 박유덕·정상윤, 고영빈·남경주, 김경수·박한근·이준혁, 박소연·김보경, 박정원·최성욱·황민수, 김주왕·이지석 등 출연

입력 2018-10-13 18:0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sejongjongong
뮤지컬 ‘1446’(사진제공=HJ컬쳐)

 

“피가 아닌 흙으로 길을 다지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마시옵소서.”

‘장자 계승 원칙’을 내세웠던 당시 국법상 불가능했던 임금의 자리에 올랐던 세종(박유덕·정상윤, 이하 관람배우·가나다 순)은 번번이 뜻을 가로 막는 아버지이자 상왕인 태종(고영빈·남경주), 베테랑 정치가들인 사대부들(유정현 역 김수영·박은 역 김태민·한상경 역 이정훈)에 이렇게 일갈하며 스스로 가고자 했던 군주의 길로 들어섰다.
 

Untitled-3
뮤지컬 ‘1446’ 세종 역의 박유덕(사진제공=HJ컬쳐)

왕권을 위협하는 것들을 “날카로운 이로 물어뜯고 살을 발라 세상을 호령한” 태종과 달리 세종이 가고자 하는 길 위에 선 군주의 역린은 김선미 작가의 말대로 “백성들을 위해 하고자 하는 일을 방해하거나 억압하는 것들”이었다.  

 

여주시·국립박물관문화재단·KBS한국방송이 주최하고 HJ컬쳐가 제작한 뮤지컬 ‘1446’(12월 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은 훈민정음을 반포한 해를 제목으로 내세웠지만 한글 창제 과정보다는 왕이 되기 전인 충녕대군 이도 시절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던 세종의 일생을 따른다.

그 바탕에는 계급을 아우르는 것은 물론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사대부들, 그들을 선동하는 전해운(김경수·박한근·이준혁)까지도 품는 ‘애민정신’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그 애민정신과 더불어 피로 차지한 아버지의 왕좌, 삼남임에도 왕이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인 된 형 양녕(박정원·최성욱·황민수)의 방황과 기행, 깊어지기만 하는 왕의 길에 대한 고민, 포기하고만 싶은 왕좌에 대한 처절한 회한과 절규 등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김은영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의 첫 연출작으로 이야기의 배치와 장면 표현이 두드러진다. 왕위를 물려받는 신에 활용한 붉은 천들은 극 중 세종의 표현처럼 태종이 외면했던 “발밑의 피 웅덩이”를 연상시킨다. 백성(조은서)의 절규를 실루엣 처리한 장면이나 세종과 그에 반하는 사대부들의 동선을 따르는 전통 문짝들 등이 볼거리와 더불어 인물들의 상황·관계·감정 등을 표현한다.

 

tpwhddktpwhddk
뮤지컬 ‘1446’(사진제공=HJ컬쳐)

 

“하늘과 땅과 사람을 잇는 것, 백성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울음, 탄식, 웃음소리…” “백성의 마음길을 따르소서, 백성의 눈물길을 닦아주소서” 등 언어의 운율을 살린 대사와 가사들은 한글의 말맛을 살리는 동시에 백성에 대한 세종의 마음을 품고 있다.

 

오롯이 세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아버지 태종과 아내 소헌왕후(박소연·김보경), 복수를 도모하는 고려인들의 수장 전해운, 양녕과 천민 장영실(박정원·최성욱·황민수), 세종의 호위무사 운검(이지석·김주왕) 그리고 앙상블들이 표현하는 사대부, 백성들과의 관계 및 이야기까지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극의 만듦새는 물론 캐릭터의 완성도, 그 캐릭터에 온전히 스며든 배우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 초연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장점이 많은 작품이다. 다만 극에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듯한 유일한 가상 인물 전해운은 고려인과 조선 중신, 복수라는 명분과 그를 흔드는세종의 신념 사이에 선 경계인 혹은 이방인을 표현하기 위한 연출인지 모호하다.

 

1446SeJong
뮤지컬 ‘1446’(사진제공=HJ컬쳐)

 

뮤지컬 ‘1446’의 장점들은 아이러니하게 아쉬움이기도 하다. 방대한 이야기와 인물들의 사연 및 감정 등을 제한된 시간에 풀어내다 보니 장면과 장면 사이가 단절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한글의 아름다움과 언어의 운율을 살린 가사와 대사들은 현대어에 익숙한 관객들의 이해를 더디게 혹은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세종의 애민정신은 넘버 곳곳에 주문처럼 따라 붙는 “백성을 위해”라는 가사로 강조되고 또 강조되지만 자칫 ‘억지 교훈’처럼 전달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복수의 칼날을 겨누던 전해운마저 감복시킨, “나는 들판의 이름 없는 꽃들을 부르고자 이 글자를 만든다. 백성이라 불리는 들꽃들을 하나씩 어루만져주고 싶어 글자를 만든다”는 훈민정음 창제 의도와 “오직 그들(백성들)을 염려하는” 세종의 지극한 마음은 현대를 사는 이들에게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한다. 

 

뮤지컬_1446_공연사진 (2)
뮤지컬 ‘1446’(사진제공=HJ컬쳐)

 

“이 땅은 임금의 나라도 아닌, 사대부의 나라도 아닌, 오직 백성이 주인인 나라, 나의 조선이 될 것이요.”

시력을 잃을 정도로 마음을 다 바쳐 창제한 훈민정음을 반포한 세종의 마지막 어명은 2018년, 지금의 대한민국에까지 큰 울림을 전한다. 그 글로 이름을 얻었고 이치를 알았고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우리 모두는 ‘들꽃’이었다. 그렇게 조선은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 들꽃들의 나라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