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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의정서 발효, 제약사 ‘관망’ vs 화장품사 ‘발등에 불’

구체적 시행령·실제 거래사례 없어 … 대비 미흡, 中 사드 보복 우려

입력 2017-09-1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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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의정서 발효 후 생물자원 이익공유 과정(자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ABS산업지원센터)
지난달 17일 국내에서도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돼 해외 생물자원을 주로 이용하는 의약품·화장품 기업의 자원 조달과 연구개발에 대한 시간적·경제적 부담 증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날부터 국내 법인 ‘유전자원 접근 및 이익 공유에 관한 법률’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시행령 제정안이 시행됐지만 기업 등이 이행해야 할 의무사항은 1년간 유예됐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남은 1년간 국가별 대응 전략을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나고야의정서는 특정 국가의 생물유전자원을 상품화하려면 해당 국가에 미리 통보한 뒤 승인받고, 이익의 일부를 공유해야 한다는 국제적 합의다. 이 안건은 2010년 10월 29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제10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됐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ABS(Access and Benefit Sharing, 접근·이익공유)산업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3일 기준 89개국에서 비준됐다.  

지난 3월 국내 기업이 로열티를 가장 많이 지급해야 할 국가로 지목되는 중국이 강력한 조치를 예고해 나고야의정서를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관련 합법적인 보복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업계의 부담이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 피해가 커질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외국 기업이 중국 생물자원을 이용할 때 반드시 자국 기업과 합작하고, 이익공유 로열티 외에 기금 명목으로 연간 이익금의 0.5~10%를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례를 발표했다. 예컨대 중국산 원료로 만든 의약품 또는 화장품으로 10억원을 벌면 추가 수수료로 최대 1억원을 현지 정부에 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5만~20만위안(약 860만~346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한국바이오협회와 국립생물자원관은 의약품·화장품 등 136개 바이오기업을 대상으로 지난해 6월부터 한 달간 설문조사한 결과 해외 생물자원을 이용하고 있는 기업이 54.4%(74개)에 달했으며, 주요 원산지로 중국을 51.4%로 가장 많이 꼽았다. 중국 다음으로 유럽 43.2%, 미국 31.1% 등에서 생물자원을 많이 수입했다. 관련 국가에서 생물유전자원을 조달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는 ‘원료생산비 및 물류비가 저렴하기 때문’(44.6%)이라고 답했다.

해외 원료 수입 비중이 높은 화장품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반면 천연물의약품에 국한돼 피해가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제약업계는 상대적으로 느긋한 모습이다. 나라마다 관련 법령이 다른데 정보가 부족해 업종에 관계 없이 대비가 미흡하므로 정부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화장품업계는 지난달 31일 대한화장품협회를 중심으로 나고야의정서에 대응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이 업계 ‘빅2’로 불리는 아모레피시픽과 LG생활건강은 해외 생물자원을 국내산 원료로 대체하기 위한 연구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동아에스티, 녹십자 등 일부 제약사는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되기 전인 2014년에 내부 전담팀을 꾸려 대응책 마련에 나섰지만 아직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나고야의정서 발효 후 실제로 거래한 사례나 가이드라인이 없어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며 “거래 국가가 세부적인 시행령을 발표하기 전까지 국내외 관련 법규 진행사항을 주시하는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천연물신약으로는 △동아에스티의 위염치료제 ‘스티렌’(성분명 애엽95%에탄올연조엑스) 및 기능성소화불량치료제 ‘모티리톤’(현호색·견우자50%에탄올연조엑스) △녹십자의 관절염치료제 ‘신바로’(자오가·우슬·방풍·두충·구척·흑두건조엑스) △SK케미칼의 관절염치료제 ‘조인스’(위령선·괄루근·하고초30%에탄올엑) △안국약품의 기침·가래치료제(진해거담제) ‘시네츄라시럽’(성분명 황련수포화부탄올건조엑스, 아이비엽30%에탄올건조엑스) 등 8종이 출시돼 있다.
 
천연물의약품의 범주를 생물자원의 여러 성분이 같이 들어 있는 추출복합물에 국한시키지 않고 생물자원에서 특정 화합물 성분만 분리한 천연물 유래 의약품으로 넓히면 업계 부담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천연물 원료를 수입하는 대신 이를 경제적인 핵심성분 합성법으로 전환할 경우 개발 비용이 커질 수 있어서다. 

대표적인 천연물 유래 의약품이 한국로슈의 신종플루치료제 ‘타미플루’(성분명 오셀타미비르인산염, oseltamivir phosphate)다. 김정은 고려대 화학과 석좌교수는 길리어드사이언스 재직 당시 중국의 토착식물인 팔각회향에서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는 단 하나의 화합물(스키믹산, shikimic acid)을 분리한 다음 합성 과정을 거쳐 이 약의 성분인 오셀타미비르를 만들었다. 이후 다른 연구소가 더 효율적인 공정과정을 개발해 팔각회향 없이 간단한 화합물을 시작물질로 오셀타미비르를 합성할 수 있게 됐다.
 
한국무역협회는 7일 발간한 ‘중국의 생물유전자원 주권 강화와 우리 기업의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사용 중인 생물자원의 유래가 불분명하면 위험부담이 발생하므로 이용 중인 생물유전자원을 파악해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게 우선”이라며 “중국은 생물자원을 활용한 발명에 대해 특허를 출원할 때 원재료의 원산지를 밝히지 않으면 특허를 불허하므로 이미 판매하고 있는 제품의 원료 출처를 문제삼아 특허를 무력화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에 유전자원정보관리센터를 두고, 정보 공유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업계가 장기적으로는 국내 생물자원을 발굴해 국내산 원료 비중을 늘리거나 중국 외에 단가가 낮은 다른 국가로 원료 수입처를 변경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선영 기자 sseon0000@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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