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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진료 본격화 … ‘부자 환자’ 전유물 되지 않으려면

심층진찰료 수가 9만3000원, 시범사업 후 인상 가능성 높아 … 경증환자 몰리면 역효과

입력 2017-08-2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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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진료에 책정된 심층진찰료 수가가 9만3000원에서 차후 더 인상되면 돈 있는 사람만 양질의 진료를 받는 의료양극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의료의 고질병이었던 ‘3분 진료’ 극복을 위해 일부 상급종합병원들이 초진 ‘15분 진료’ 카드를 꺼내들자 상당수 의료인들은 ‘의료 양극화를 조장할 수 있다’며 반신반의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진료시간이 늘어난 만큼 대기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오히려 불편함이 가중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저수가 상황에서 병원은 최소 의료인력으로 최대한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수익을 남길 수 있다. ‘30분 대기, 3분 진료’는 이같은 의료환경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났다. 최근 발표된 강중구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외과 교수의 연구결과 국내 종합병원의 초진환자 1인당 평균 진료시간은 6.2분이다. 다만 규모가 큰 상급종합병원일수록 진료시간은 짧아져 대부분 3~4분, 길어야 5분이면 진료가 끝난다. 진료과별로는 상담의 비중이 높은 정신건강의학과가 평균 13.9분으로 가장 길었고, 반대로 정형외과는 가장 짧은 3.7분을 기록했다.


초진 환자는 진료 의사와 처음 만나기 때문에 증상을 가급적 자세히 설명해야 하고, 의사도 정확한 진단을 위해 진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3~5분이라는 시간은 초진 환자를 제대로 진료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강 교수팀의 연구결과 환자들은 진료 시간이 평균 8.9분으로 늘어야 진료 만족도가 충족되고, 이를 위해 6000원가량을 추가 부담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분진료 타파에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서울대병원이다. 2년 전부터 이 병원 임재준 호흡기내과 교수팀은 15분진료를 실험적으로 실시해왔으며, 오는 9월부터는 11개과 초진 환자를 대상으로 확대 적용한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지난 3월부터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뒤 외래진료를 보러 온 환자를 대상으로 15분진료를 적용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15분진료를 도입하면 중증질환자는 충분한 시간동안 의사와 상담 및 진료할 수 있고, 경증질환 환자는 길어진 대기시간을 피해 1·2차의원으로 가도록 유도해 왜곡된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도 지난 3월 심장질환 첫방문클리닉을 열고 초진 환자의 진료시간을 15~20분으로 대폭 늘렸다. 일부 병원은 진료 환자 수를 줄이는 대신 검사 및 입원료 등을 소폭 인상하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이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오는 9월부터 15분진료를 시행하는 상급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심층진찰료’를 지급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지난 18일 열린 제1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선 15분진료에 대한 심층진찰료 수가를 9만3000원, 환자부담금은 30% 수준(약 2만8000원)으로 책정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현재 상급대학병원의 초진 수가는 1만8490원이며 100% 환자부담이다. 여기에 선택진료(특진)비 7400원이 더해지면 2만5890원가량이 진료비로 소요된다.


하지만 중소병원과 의원급에서는 이미 중증질환자를 보고 있는 상급종합병원에게 심층진찰료 명목으로 수가를 제공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상급종합병원에 심층진찰료를 적용하는 것은 가진 자에게 더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진료시간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증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진료 및 치료할 수 있도록 의료전달체계의 허리인 중소병원과 1차의원 대한 지원을 확충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어 “적절한 통제 방안 없이 15분진료 및 심층진찰료 제도를 시행하면 환자쏠림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복지부는 경증 환자까지 대형병원에 몰리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1차 의료기관이 발급한 요양급여의뢰서(진료의료서)에 특이사항이 명시되는 등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 15분진료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시범사업 기간에 한해 심층진찰료의 환자부담금이 최소로 설정된 만큼 차후 환자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진료실에서 충분한 진료시간이 보장되고 환자 경험을 잘 청취하는 문화가 조성되면 환자와 의사의 신뢰도가 높아지고 불필요한 치료·검사와 의료분쟁이 대폭 감소할 것”이라며 “다만 원래부터 예약이 힘들었던 대형 대학병원의 예약이 더 어려워지는 등 대형 의료기관의 배만 불리고 정작 환자는 혜택을 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범사업 심층진료비 수가의 경우 보건당국은 환자부담금이 30%에 불과해 실제 진료비는 전과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차후 시행 의료기관이 늘면 수가가 오를 것이고 이는 환자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며 “결과적으로 돈 있는 사람만 양질의 진료를 받는 의료의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정환 기자 superstar@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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