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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뷰] “아이 엠 그라운드”를 외치는 정교한 고양이들의 시(詩)적인 자기소개…누구든 헤비사이드 레이어로! 뮤지컬 ‘캣츠’

[‘다’리뷰]

입력 2017-08-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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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무] 캣츠 내한공연 (2)
뮤지컬 ‘캣츠’(사진제공=클립서비스)

 

기승전결(起承轉結). 대부분 이야기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기승전결이 존재한다. 노래와 서사를 엮어 극을 완성하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에도 대부분은 기승전결이 배치돼 있다.

하지만 뮤지컬 ‘캣츠’(9월 10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에 그 흔한 서사의 기승전결을 기대했다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틱한 플롯을 바탕으로 하거나 화려하고 친절한 쇼뮤지컬이 취향인 이들에겐 졸지 않으면 다행일지도 모를 작품이다.

매년 천상으로 보내져 새로 태어날 기회를 얻을 고양이를 선택하는 무도회 ‘젤리클 볼’을 위해 모인 각양각색의 고양이들은 현명한 선지자 고양이 올드 듀터러노미(브래드 리틀)를 기다리며 “아이 엠 그라운드 자기 소개하기!” 게임처럼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럼 텀 터거]
뮤지컬 ‘캣츠’ 럼 텀 터거.(사진제공=클립서비스)

 

영국 시인 T.S 엘리어트의 우화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를 바탕으로 ‘오페라의 유령’ ‘에비타’ ‘지저스크라이스트수퍼스타’ ‘스쿨 오브 락’ ‘우먼 인 화이트’ 등의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넘버를 꾸린 작품이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이야기에 맞는 작곡을 하고 가사를 붙이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미 활자화된 우화에 작곡과 사연을 가미하는 역방식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1981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됐고 다음해 브로드웨이에 입성해 세계 각지에서 공연돼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다.

작곡가 웨버를 비롯해 안무가 질리언 린, 오리지널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는 고양이와 생활하며 ‘캣츠’의 개성 넘치는 고양이 캐릭터들과 그 습성들을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자벨라] 메모리
뮤지컬 ‘캣츠’ 그리자벨라의 ‘메모리’.(사진제공=클립서비스)
30여년 동안 웨스트엔드, 브로드웨이, 시드니 등에서 다양하게 변주돼 꾸준히 공연된 ‘캣츠’의 매력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 고양이를 쏙 빼닮은 배우들의 춤사위와 연기다.

화자이자 사회자인 멍거스트랩(애덤 베일리)과 지혜롭고 현명한 올드 듀터러노미를 비롯해 매혹적인 젤리클 고양이였지만 넓은 세상으로 모험을 떠났다 초라하고 늙은 모습으로 돌아와 따돌림을 당하는 처지가 된 그리자벨라(로라 에밋), 강력한 카리스마로 여심을 사로잡는 반항아 럼 텀 터거(윌 리처드슨), 사라진 올드 듀터러노미까지 돌아오게 하는 마법사 미스터 미스토펠리스(크리스토퍼 파발로로)는 ‘캣츠’의 인기 고양이들이다.

럼 텀 터거는 웨스트엔드의 힙합 스타가 아닌 갈기를 휘날리는 브로드웨이의 록커로, 미스터 미스토펠리스는 노래를 강화한 브로드웨이가 아닌 고난이도 안무를 펼치는 오리지널 웨스트엔드 콘셉트로 내한 무대에 오른다. 섹시하던 그리자벨라는 단아하고 아름다워져 더욱 안쓰러운 고양이다.

이들 뿐 아니다. 낮에는 잠만 자지만 밤마다 아기 고양이들을 교육시키는 제니애니닷(매디슨 그린)은 새로 추가된 탭댄스를 선사한다. 배우 출신으로 중풍을 앓고 있는 극장 고양이 거스(이안 존 버그), 고양이들을 괴롭히는 마피아 같은 존재 맥케비티(토마스 인지), 순수하고 순진한 빅토리아(카리나 러셀) 등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을 뽐내는 안무와 넘버로 무장했다.

[군무] 제니애니닷 검비댄스
뮤지컬 ‘캣츠’. 제니애니닷의 확 바뀐 검비댄스.(사진제공=클립서비스)

 

‘캣츠’는 인간들의 쓰레기더미에 은밀하게 숨어 드는 고양이들이 차츰차츰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젤리클 고양이들의 젤리클 노래’(Prologue: Jellicle Songs For Jellicle Cats)로 시작부터 눈길을 잡아 끈다.

콱소(크리스토퍼 파발로로)와 사회자 멍거스트랩의 ‘젤리클 축제에 대한 소개’(The Invitation to the Jellicle Ball)는 뮤지컬 ‘캣츠’의 에센스 넘버들이 녹아든 곡으로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고양이의 움직임을 표현한 안무가 압권이다.

‘캣츠’의 가장 잘 알려진 ‘메모리’(Memory)는 1막 마지막과 2막 후반쯤 두번 불린다. 그리자벨라 혼자 부를 때의 ‘메모리’는 한껏 안쓰럽고 고독한가 하면 회한이 깊게 담겼다. 2막에서는 호기심 많고 순진한 아기 고양이 제마이마(칼리 마일즈)와 쓸쓸하고 지친 그리자벨라의 전혀 다른 보컬로 불리며 극을 클라이맥스로 끌어올린다. 

 

[군무] 젤리클 볼 (2)
뮤지컬 ‘캣츠’의 ‘젤리클 볼’.(사진제공=클립서비스)

 

올드 듀터로너미에 의해 새로운 삶을 맞게 된 그리자벨라를 경축하는 컴퍼니(The Company) 넘버 ‘천상의 세계로의 여행’(The Journey To The Heaviside Layer)은 경건하게 누구나 헤비사이드 레이어(천상)로 갈 수 있다고 위안을 전하는 듯하다.

극적이던 럼 텀 터거의 다소 맥 빠지는 등장, 확 바뀐 몇몇 안무의 어지러움 등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더불어 ‘캣츠’ 자체가 가진 스토리에 대한 호불호는 여전히 극명하게 갈린다. 하지만 고양이 자체인 듯 유연하고 요염하며 활기 넘치는 배우들의 노고와 관객 친화적인 커뮤니케이션 의지, 젤리클 고양이들과의 친근한 눈맞춤, 누구나 헤비사이드 레이어로 갈 수 있다는 속삭임 등만으로도 삶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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