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문화 > 연극 · 뮤지컬

‘뜨겁게’ 70년! 칠순 맞은 윤호진 연출, ‘극단적인 낙관주의’로 돈키호테처럼 ‘고고80’

입력 2017-06-06 11:3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Untitled-11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등의 윤호진 연출이 칠순을 맞았다.(사진=허미선 기자)

 

“슬퍼하지 마세요. 이제 곧 영원히 쉴 때가 오는데…체홉의 ‘바냐 아저씨’ 마지막 대사처럼 영원히 쉴 때까지 기운차게 달려보려 합니다.”

7일이면 고희를 맞는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등의 윤호진 연출은 결국 울컥 끓어오르는 감정을 내비치며 이 같은 각오를 밝혔다. 5일 저녁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는 윤호진 연출이자 에이콤 대표의 칠순을 축하하는 ‘고고80’이 열렸다. 칠순을 축하하고 새로운 10년, 80세까지 행보를 이어달라는 염원을 담은 행사였다. 

 

Untitled-17
뮤지컬 '찌질의 역사'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윤호진 에이콤 대표.(사진제공=에이콤)

이 자리에는 영국 유학시절 동거동락했던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와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대구문화재단 심채찬 대표,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송승환 PMC프러덕션 회장, 박민선 CJ E&M 공연사업본부장, 장상용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대표 등을 비롯해 배우 정동환, 안재욱, 정성화, 김소현, 강필석 등이 함께 했다. 

 

‘영웅’ ‘명성황후’ 등을 비롯해 최근 제작한 웹툰 뮤지컬 ‘찌질의 역사’(8월 27일까지 수현재씨어터)에 출연하는 앙상블 배우 29명이 뮤지컬 ‘영웅’의 넘버 ‘피의 동맹’을 부르며 축하잔치의 문을 열었다.  

 

이후 강영석·손유동·이휘종·황호진이 ‘찌질의 역사’ 속 네 친구인 서민기·노준석·권기혁·이광재 장면을 시연했고 ‘명성황후’의 김소현, ‘영웅’의 안중근 정성화가 차례로 무대에 올라 ‘내겐 누가 님인가요’ ‘영웅’ 등을 불러 축하를 전했다. 

 

일주일에 4번씩 영화를 보며 영화 학도의 꿈을 키웠던 할리우드키드 윤호진은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홍익대학교 정밀기계과에 입학했다.  

 

“정말 지질했다”고 그 시절을 회상하던 윤호진 연출의 인생을 바꾼 건 누나가 준 연극표였다. 명동극장에서 ‘휘가로의 결혼’을 보고 그의 표현대로 “사람을 직접 만나는, 살아있는 예술에 감동 받은” 윤 연출은 연극에 빠져들었다.  

 

Untitled-4
29명의 앙상블 배우들이 윤호진 연출의 칠순 축하무대를 꾸렸다.(사진=허미선 기자)

  

“망할 게 있어야 망하죠.”

실험극장에 입단하던 1970년 오디션 당시 “망하면 어쩌려고 그러나”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하고 기꺼이 고난을 길의 택했다. 밤이면 햄릿 등 등장인물들의 망토를 두르고 왕이 된 것마냥 추위를 달랬다. 하루 세끼를 먹지 못해도, 주린 위장에 소주를 털어넣으면서도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열심히도 내달렸다.

 

지독히도 배고픈 연극인의 길을 걷다 지칠 대로 지쳐있을 때 문화예술진흥원의 연극연출가 해외연수 대상자로 선정돼 유학을 떠났던 1982년 영국에서 그는 또 한번의 환점을 맞았다. 1981년 전세계 초연된 브로드웨이 뮤지컬 ‘캣츠’였다. 

“완전 신세계였어요. 이거라면 어디 가서 손 벌리지 않고 자립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정부든 민간이든 지원금을 받아야만, 그의 표현을 빌자면 긴 기다림 끝에 돈을 달라고 ‘깡패처럼’ 굴어야 겨우 겨우 무대를 꾸릴 수 있었던 연극 현실 속에서 자립을 목표로 뮤지컬을 시작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뮤지컬 불모지와도 같던 대한민국에서 그의 표현대로 “곧 죽어도 창작뮤지컬을 하겠다”고 뛰어든 그 길이 순탄할 리 만무다. 

 

Untitled-13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등의 윤호진 연출이 칠순을 맞았다.(사진=허미선 기자)

“때로는 번개탄을 사러 가고 싶었고 때론 뉴욕 호텔에서 뛰어내릴까도 생각했죠. 하지만 여기가 바닥인데 더 이상은 안내려가겠지 라는 각오로 빚지고 갚고 또 빚지고를 반복하며 자립 근사치를 왔다 갔다 했어요.”  

 

그렇게 기적처럼 ‘명성황후’와 ‘영웅’이 탄생했고 그는 대한민국 뮤지컬계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고난을 헤치고 칠순을 맞을 수 있었던 데는 영국 유학을 함께 했던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의 증언(?)대로 ‘극단적인 낙관주의’가 있었다. 지난 행보를 회상하며 손진책 연출은 덕담을 전하기도 했다.

 

“대책 없이 간덩이만 부은 윤호진의 극단적인 낙관주의가 연극적 성과를 냈고 ‘명성황후’의 브로드웨이 공연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앞으로도 돈키호테처럼 돌진해주길…한평생 같이 연극의 길을 걸어서 외롭지 않고 행복했습니다.”  


지난해 ‘명성황후’가 20주년을 맞았고 ‘영웅’은 전국투어를 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이를 “기적같은 일”이라고 표현한 윤호진 연출은 “관객이 지루하지 않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물리적인 시간을 상징적인 시간으로 만들면 돼요. 제가 바쁘게 살다보니 시간의 흐름도 못느끼고 지나갔죠. 70 인생 그래도 작품 만드는 재미에 물리적 시간을 잊었구나 싶어요. ‘골골80’이 아닌 ‘고고80’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