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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연극 ‘보도지침’은 변할지 모를 나를 위한 '귀한' 지침, 오세혁 작·연출

[人더컬처]

입력 2017-05-10 07:53 | 신문게재 2017-05-1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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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김에 흔쾌히 쓰겠다고는 했는데…너무 큰 사건이더라고요.”

오세혁 작·연출이 보도지침 사건을 면밀히 조사하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초연 당시 변정주 연출로부터 대본집필 의뢰를 받으면서다. 1986년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가 ‘말’ 9월호에 당시 문화공보부가 시달한 보도지침을 폭로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 ‘보도지침’(6월 11일까지 TOM 2관)이다.


◇‘법정이자 광장이자 극장’에서 말! 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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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의 오세혁 작·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제 나이 4살 때의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김주언 선생님이 보도지침을 공개하셨을 당시 나이가 지금의 저랑 비슷하셨더라고요. 어떤 분은 이 나이에 그런 큰일을 하셨는데 이미 일어난 일을 공연을 만드는 데 고민조차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표현대로 그렇게 “들이대기로 결심하고” 초연의 대본을 썼고 재연은 연출까지 맡게 됐다.

 

연극 ‘보도지침’은 같은 대학 연극동아리 출신의 일간지 사회부 기자 김주혁(김경수·봉태규·이형훈, 이하 가나다 순), 월간 ‘독백’ 편집장 김정배(고상호·기세중·박정원), 변호사 황승욱(박유덕·박정표), 검사 최돈결(남윤호·안재영), 판사 송원달(서현철·윤상화), 남자(김대곤·최연동), 여자(이화정·정인지) 등이 펼치는 법정 드라마에 가깝다. 보도지침이라는 사건의 구체적 묘사 보다 그 사건의 재판과정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보도지침 사건을 이야기 식으로 구성하려고 했죠. 그런데 그 사건의 재판기록을 읽는데 한마디 한마디가 진짜 독백같은 거예요. 최후진술이나 검사는 왜 모르냐, 똑바로 대답하라고 다그치는 말들…너무 연극적이고 재밌었어요. 그래서 처음 쓰기로 한 방향을 완전히 틀었죠. 이분들의 기록된 말을 공연으로 널리 알려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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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 왼쪽부터 정배 역의 기세중, 주혁 봉태규, 승욱 박유덕.(사진제공=인사이트먼트)

 

그렇게 보도지침 재판 당시 법정에서 오간 사건 당사자들의 발언에 꼭 그 시대가 아니더라도 오세혁 작·연출 스스로가 평소 하고 싶었던 시대의 말과 연극에 대한 생각을 보태 연극 ‘보도지침’을 완성했다.

“여긴 법정이자 광장이자 극장이라는 대사를 넣은 게 말을 많이 하고 싶어서예요. ‘모든 말들은, 연극은 독백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죠. 이 작품의 유일한 메소드는 말하기와 듣기예요. 최고의 액션은 말하기고 리액션은 듣기죠. 누군가 긴말을 할 때 가만히 들어주면 어떨까 싶었어요. 좀 이상하더라도 배우들도 관객들도 누군가의 말을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배우들과의 마음 속 목표 ‘1일 1 차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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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사진제공=인사이트먼트)

“오히려 넣은 말들보다 뺀 게 많아요. 작년엔 뜨겁게 외쳐야할 시기라서 온갖 말을 다 넣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희망이라는 게 생겼잖아요. 그래서 뜨겁게 썼던 것들을 뺀 것 같아요. 너무 뜨겁거나 정의로우면 안될 것 같아서.”

최순실 국정 농단사태로 발발한 광화문 촛불집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뜨거운 시기를 보내고 새 시대를 준비하면서 초연의 대본은 대폭 수정됐다.

 

뜨겁게 외치던 극은 각자의 입장을 다소 차갑게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배우들의 말과 몸짓에 집중하고자 조명, 음악 등도 최소화했다.

“어떤 것에 대해 저항, 논쟁을 하면서 너무 감정적이면 그 (외치는) 사람만 옳은 것처럼 보이고 반대편에 있는 편집국장이나 교수님 등은 왠지 옳지 못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게 싫었어요. 다 각자의 입장이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저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그는 차가운 지점으로 주혁 역의 봉태규가 고문을 당하고 있는 편집국장에게 보도지침에 대해 따지는 장면을 예로 들었다.

“왜 모든 신문 1면이 똑같냐, 대답해달라고 할 때 주혁이 뜨겁게 화내면서 할 수도 있는데 봉태규 배우는 되게 차갑게 해요. 너도 날 괴롭히는구나…편집국장 눈에 비친 주혁의 모습인 거죠. 주혁이 뜨겁게 외치는 것도 옳은 방향일 수 있지만 자칫 편집국장의 비겁한 면만 보여줄 수 있거든요. 주혁이 차갑게 가니까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게 있더라고요.”

그렇게 극은 차가워졌고 오세혁 작·연출을 비롯해 혈기왕성한 젊은 배우들은 그 온도를 유지하는 데 무던히도 애를 먹었고 공연 중인 매일매일 애를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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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사진제공=인사이트먼트)

 

“제가 (배우들에게) 유일하게 주문한 게 ‘드라이하게, 차갑게 연기해달라’였어요. 뱃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와도 머리(이성)로 눌러서 명치 위로 안올라왔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쉽지는 않죠. 하다 보면 당연히 외치고 싶고 지르고 싶어지거든요.”

이에 끊임없이 배우들과 대화하고 매일 “차갑게”를 수없이 강조하기도 했다. 아무리 강조해도 머리로 가슴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혈기왕성한 배우들이 외치고 싶은 모든 마음까지는 못말리겠더라고요. 공연을 보면서 저건 어쩔 수 없겠다 싶었어요. 제가 봐도 정말 외치고 싶을 것 같거든요. 그럼에도 다는 안되지만 하루에 한 장면씩만 차가워지자 했어요.”

그렇게 오세혁 작·연출과 배우들이 마음으로 세운 ‘1일 1 차가움’ 목표는 충실하고 진지하게 지켜지고 있다. 이에 배우마다, 회차마다 차가워지는 지점이 달라지면서 극은 매일 매회 색다르게 진화하며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조금씩 깊게, “정의 아닌 나를 움직이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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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의 오세혁 작·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완전 어렵죠. 심지어 제가 쓴 대본 중 제일 어려워요.”

오세혁 작·연출을 비롯해 배우 중 최연장자인 승욱 역의 박정표를 비롯해 막내인 정배 역의 기세중까지 보도지침 사건도, 그 시대도 모르는 세대다. 그런 배우들이 뜨거움과 차가움의 경계를 오가는 감정을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린 기세중이라는 배우는 시대를 모르잖아요. 그런 배우가 그리고 관객들에게 사랑받으며 활발하게 활동 중인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이런 말들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라고 생각해요.”

연극과 뮤지컬에서 자기 몫을 하며 사랑받는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발언한다는 것, 그들이 스스로 사건과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는 것에 대해 오세혁 작·연출은 “귀하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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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 왼쪽부터 돈결 역의 안재영, 원달 윤상화, 승욱 박정표.(사진제공=인사이트먼트)

 

“배우들에게 정의를 위한 작품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는 힘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작품이라고 얘기했어요. 자기 위치가 어디든, 좌든 우든 자기가 선택하면 되는 문제고 각자 위치에서 말하면서 토론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어느 순간 왼쪽에 있지 말고 오른쪽으로 가라고 하고 심지어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기도 하죠. 이 역시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이에 그는 배우들에게도 “설득되지 말고 뭐가 옳다 판단하지도 말고 맡은 배역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했고 “마지막까지 결론이 안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배우들도 저도 매일 조금씩 깊어지면 좋겠어요. 그렇게 깊어지다 보면 막공(마지막 공연) 때는 단어 하나를 말하는 데서도 느낌이 달라질 거라고 믿었거든요. 저에게도 배우들한테도 그게 큰 과제인 것 같아요.”

“보면 볼수록 배우들이 그날그날 조금씩 깊이 들어오는 지점들이 있어서 너무 기분이 좋다”던 그의 믿음은 그렇게 매일 증명되고 있다.


◇주혁의 “몰라서 물어”와 “알면서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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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의 오세혁 작·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극 중 ‘몰라서 물어’의 지점은 점점 변해간다고 생각해요. 초반은 뭔가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고 화가 나지만 어찌할 수 없는 데 대한 ‘몰라서 물어’예요. 한 기자분이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세월 지날수록 ‘알면서 뭘 물어’로 변해간다고.”

극 중에는 여러 사람에 의해 ‘몰라서 묻나?’라는 대사가 던져진다. 그 말은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전엔 어찌 할 수 없음에 대한 화남이었다면 시간이 갈수록 알아서 행동하는 데 대한 말이죠. 그 ‘몰라서 물어’가 어떤 사람한테는 ‘그래도 난 이렇게 할 거야. 나를 알면서 왜 그래’라는 긍정적인 ‘몰라서 물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 바람을 반영한 인물이 주혁이다. 오 연출은 “주혁이 보도지침을 고발한 바탕에는 대학교 연극반 시절 ‘왜 술을 억지로 먹이냐’고 했던 데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도 딱히 내키지 않았는데 교수님이 하지 말라고 하니까 ‘왜 당신이 그걸 해라 말아라 하냐’고 하면서 하게 되거든요. 세상은 이런 사람들 때문에 변한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이게 옳다고 외치는 사람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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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 정배 역의 박정원(왼쪽)과 주혁 이형훈.(사진제공=인사이트먼트)

그 반대편에 있는 인물이 돈결이다. 보도지침 폭로 사건 재판의 검사인 그는 대학 연극반 시절 가장 뜨겁고 진보적이던 인물이다.

“오히려 돈결 같은 사람들이 많이 변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생각이 너무 많아요. 저도 언제 변하지 모르겠고…너무 뜨거운 것도 이제 안믿게 돼요. 계속 뜨거운 이유는 자기 안에 에너지를 내기 위해서인데 그건 마음 속에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무서운 돈결과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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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 돈결 역의 남윤호.(사진제공=인사이트먼트)

 

“돈결은 진보적이고 올바른 사회로 가는 데 가장 큰 라이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유능한 인재고 똑똑하고 운동권이기도 했고 세상에 대해서도 알고 있죠. 한때는 다른 세상을 꿈꿨지만 어떤 계기로 돌아선 어마어마한 젊은 인재이자 유망주요. 우리가 싸워야 한다면 그 상대가 누굴까 생각해보면 돈결 같은 존재인 것 같아요.”

돈결은 자신의 분야에서 제몫을 하고 있는, 극 중 표현대로 ‘엘리트’다. 그 명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뜨거웠던 이들이 변하는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판사) 원달처럼 중간에 있지만 인정을 봐주는 사람들보다 아예 압도적인 자신만의 철학으로 무장하고 모든 것에 준비된 사람들, 심지어 3대1로 싸워도 까딱도 안하는 돈결 같은 사람이 무서운 것 같아요.”

무서웠을 수도 있고 세상을 이미 알아버려서일지도 모른다. 부유하고 보수적인 집안의 뜻을 무시할 없었거나 진짜 설득 당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그들이 변한 이유는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왜 변했는지 알 듯 모를 듯 표현한 이유는 규정하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규정해 버리면 이 역시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변한, 하지만 무서운 사람들이죠. 그래서 진보적인 얘기를 할 때 우리가 가장 갖춰야할 게 자신의 분야에서 인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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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의 오세혁 작·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심지어 돈결은 자신에게 유리한 사안에 대해서는 대답을 끌어내면서도 불리한 것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에 오세혁 작·연출은 돈결의 긴 독백과도 같은 최후진술 대사를 들어내 침묵으로 채웠다. 고민도 많았고 돈결 역의 배우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말보다 더 무서운 게 뭘까 고민하다 보니 침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결은 어떤 말을 해도 이길 수가 없어요. 3대1로 싸우면서 돈결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침묵이라는 걸 이미 알아버린 거죠. 그래서 전 요즘 제일 무서운 게 침묵 같아요. 침묵이라는 무기를 가진 돈결 같은 사람들과 긍정적으로, 좋은 의미로 겨뤄야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공연 중 문득 감지되는 포즈(Pause, 잠시 멈춤)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배우에 따라 그날의 에너지에 따라 포즈 역시 규정되지 않는다.

“배우들에게 공연 중에 생각이 흘러가는 순간이 분명 있을 텐데 그때는 반드시 멈춰서 생각을 하고 가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포즈를 위한 포즈가 아니라 문득 생각이 들어오는 순간이죠. 그걸 관객들도 같이 느낄 것 같아요.”


◇돈결의 정의, 승욱의 방향과 지침, 정배의 독백과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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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 정배 역의 고상호.(사진제공=인사이트먼트)

 

극 중에는 대학 연극반 시절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 연극을 했다는 이유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다 풀려나면서 그리고 극의 마지막 재판이 끝나고 선고가 내려진 후 등장인물들이 찾아가고자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돈결은 한결같이 ‘정의’라고 답한다.

“돈결은 절대적인 걸 원했을 것 같아요. 자신을 이끌어줄 절대적인 철학이나 정신적 지주요. 불안한 시절 대학에서 확고한 선배들의 철학과 사상에 전도됐던 것도 그래서였지 싶어요. 그러다 한번 부딪히고 나서 아예 공고하게 자신이 있던 위치로 돌아간 것 같아요.”

대학시절 승욱은 방향, 정배는 독백을 찾으러 간다고 했고 재판이 끝난 후에는 각각 지침과 숨을 찾아간다고 답했다. 이 대답에 대해 오세혁 작·연출은 “학창시절에 찾는 건 대본대로 하지만 마지막 찾으러 가는 건 배우들이 찾으면 좋겠다고 해서 나온 것들”이라고 전했다.

“승욱이는 답답하니 어떻게 살아야할지 살 방향을 찾아보겠다고 한 건데 하다보니까 그 방향이 나를 이끌어준 지침이라는 걸 깨닫게 돼요. 지침을 찾아가겠다는 건 내가 계속 변호할 사람들을 찾아 가겠다는 의미죠. 정배가 독백을 찾으러 간다고 한 건 자기 독백이 없었으니까 남들의 독백을 실어주는 잡지를 만들었고 같은 측면에서 독백을 찾으러 가는 게 숨을 쉬러 간다는 뜻이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그리고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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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의 오세혁 작·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건강해지려면 어느 분야든 끊임없이 싸워야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극 중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나 100% 지켜지지 않는다”는 대사에 대해 오세혁 작·연출은 이렇게 말했다. 실제 보도지침 사건의 법정 발언 중에 오갔던 이 말에 대해 그는 “너무 이상적일수록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언론의 자유가 100% 지켜진다면 그들이 또 그걸 무기로 어떤 일을 할지 모르는 거잖아요. 통제와 견제를 어떤 식으로 할 거냐의 문제죠.”

그리고 독일 나치 정권의 선전부 장관이자 제3제국 문화원장이었던 괴벨스를 예로 들었다. 라디오와 TV, 언어를 지배하며 유대인 탄압과 언론·출판·방송 등 문화계를 통제했던 인물이다.

“괴벨스의 일기장을 읽어보면 마르크스, 니체, 도스도예프스키, 고흐 등 예술을 엄청 사랑했던 사람이었어요. 너무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니까 그렇게 돼버린 것 같아요. 물론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문제죠. 양쪽이 보란 듯이, 팽팽하게 싸우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극 중 연극은 그 팽팽하게 싸우는 이들을 위한 장치다. 그는 “연극으로 가장 진실된 말이 독백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중요한 건 논리적으로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지금은 이렇게 됐다가 아니라 연극이라는 그 자체였어요. 무대에서 하는 것들 모두가 연극이고 각자의 역할, 발언, 입장도 각자 연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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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 왼쪽부터 연극반 선배 김대곤, 돈결 안재영, 정배 기세중, 승욱 박정표, 주혁 김경수.(사진제공=인사이트먼트)

 

연극반시절의 주혁, 정배, 승욱, 돈결이 독백 경연대회를 여는 장면이 그렇다. “죽느냐 사느냐” 햄릿을 연기하다가 채플린이 나오는가 하면 학생의 유서를 읽기도 한다.

“햄릿도 채플린도 유서도 독백이라고 생각해요. 그 시대에 가장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단순히 성명서로만 볼 것인지…이걸 우리가 하나하나 소리내서 읽어줘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생각한 연극은 독백이고 가장 진실된 말이거든요.”

이에 그는 “극 중 중요한 말이나 대사를 강조하거나 중요하지 않게 쳤으면 좋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래야 관객들이 보고 나서 본인의 삶에 확장시킬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언론 얘기고 30년 전 사건이지만 각자의 직업 따라, 언제 어디나 지침은 있고 (그 지침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하는 주혁·정배·승욱·돈결·판사·교수·편집국장 등 같은) 그런 사람들은 다 있잖아요.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라는 말을 역설적으로 넣어본 것도 있어요.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를 하더라도 지금하고 똑같지는 않아요. 동시대적인 걸 꺼내는 건 관객이라고 생각해요.”


◇변할지도 모를 나를 위한 보험 ‘보도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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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도지침’의 오세혁 작·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저나 배우들이나 ‘내가 과연 여기 나오는 말과 발언들을 할 자격이 있나’라는 의문들이 제일 힘들었어요. 그 시대를 살지 않았고 사람마다 그동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모른다 혹은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열심히 다가가려고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저희에겐 찾아오는 관객들이 있고 그들 앞에서 얘기하고 같이 찾아나가면서 공부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배우들 뿐 아니라 관객들까지 실제사건의 재판기록이나 성명서, 사건기록 등을 찾아보고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귀하다”고 했다.

“저도 배우들도 관객들도 관심을 가지고 같이 공부하기에 좋은 시기인 것 같아요. 공연을 하면서 역사에 대해 공부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이에요.”

전작인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공연 당시 세르게이 라흐마니 노프, 백석의 작품과 생애, 니콜라이 달 박사, 즈베레프, 차이코프스키, 자야와의 이야기, 길상사 등을 찾는 관객들을 보면서 느꼈던 귀한 마음을 ‘보도지침’에서도 깨닫고 있단다.

“저는 이 작품을 보험처럼 썼어요. 대사 중에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고 저도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사람들이 ‘이런 걸 쓴 네가 어떻게 변할 수 있어’라고 할 수 있게 보험을 든 거죠. 변하기 싫어서. 승욱이가 지침들이 늘어난다고 말하는 것처럼 저도 지침을 하나 늘였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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